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 황금가지
상류층 가정에는 세 등급의 여자가 한 집에 산다. 집안의 안주인인 아내, 가사를 돌보는 하녀, 그리고 시녀다. 시녀는 혼자 마음대로 외출할 수 없으며, 빨간 옷을 늘 입고 다녀야 한다. 그리고 아내의 몸종이 아니라 대신 아이를 출산하는 역할을 맡는다. 환경오염과 자기 결정권이라는 ‘불경한’ 생각으로 낮아진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국가적 재원이다. 임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특수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자신의 소임을 다함으로써 과거에 저질렀던 자신의 잘못을 속죄해야 한다. <증언들>의 전작 <시녀 이야기>에 등장하는 나라, 길리어드의 이야기다.
길리어드는 철저한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신정국가다. ‘야곱의 아들들’이라는 원리주의 조직이 쿠데타를 통해 미 합중국을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다. 성경 말씀에 따르지 않은 모든 것은 죄악이다. 여자들은 정숙하고 고결해야 한다. 머리카락을 포함한 신체 부위의 노출은 남자의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불행한 상황을 방지하는 것은 여자의 몫이라고 배운다. 상류층 여자아이들은 별도의 교육기관에서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여자들은 아내, 하녀, 시녀, 이코노 등 계급에 따라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져 있다.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증언들>의 배경 역시 길리어드다. 전작과 30년이 넘는 시간차를 두고 나온 이 책에서는 여러 세력의 결탁을 통해 운영되던 한 전체주의 사회가 어떻게 흔들리고 붕괴해가는지 보여준다. 세 여자의 증언이 이야기를 직조한다. 법, 유니폼, 슬로건, 찬송가 등을 하나하나 만들며 지금의 길리어드를 있게 한 1등 공신, 길리어드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결혼의 의무를 거부하는 여자, 그리고 체제를 부술 수 있는 폭발력을 지닌 여자가 등장한다.
체제에 익숙해진 사람은 그가 속한 사회가 흔들리는 이유가 타락이나 방종 때문이라고 여긴다. 정화하려는 노력을 통해 사회의 기틀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가능성을 알지도, 꿈꿔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제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 그 속에 깊숙이 발을 담그면서 자신이 만들어낸 것의 실체를 또렷이 알고 있는 사람은 다르다. 그는 쌓아올린 것을 무너뜨릴 결심을 한다. 그리고 묵직한 한 방, 복수의 일격을 준비한다. 그 계획이 결말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는 쾌감이 꽤 크다.
<시녀 이야기>처럼 두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두 번 정도 휴게소에 들르면서 서울에서 대구까지, 혹은 부산까지 멀쩡히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것처럼, 이 책 역시 화장실만 다녀오면서 쭉 읽어갈 수 있다. <시녀 이야기>를 읽으며 시녀 오브프레드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던 사람은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볼 것이다. 이 책부터 읽은 사람은 전작까지 읽게 될 것이다. 1, 2편 중 무엇을 먼저 읽든 두 권다 읽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미드까지 챙겨보지 못하는 자신의 게으름을 나처럼 탓할지도 모르겠다.
참, 오브프레드에서 오브는 영어에서 소유를 나타내는 ‘of’다. 그 뒤에는 집주인인 남자의 이름이 들어간다. 있음 직하지 않은, 말도 안 되는 디스토피아인 것 같다. 하지만 소설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실현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마거릿 애트우드가 <시녀 이야기>를 집필하며 세운 원칙은, 인간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사건은 소설에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