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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Dec 06. 2020

읽그 47. <내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집입니다>

박윤선 지음 / 빌리버튼


어디서 나도 꿇리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사를 다닌 횟수로는 말이다. 20대에 한정해 대학교 신입생때부터 지금까지 총 8번의 이사를 했다. 지금 사는 집이 9번째 집이다. 이 책의 저자는 책을 낸 시점에서 32살이 될 때까지 15번의 이사를 했다. 유년시절의 이사까지 끌어오면 나도 숫자 10을 넘길 수 있긴 하지만 그의 이사 횟수에는 못 미친다.


숫자는 일치하지 않더라도, 고향을 떠난 청춘들의 삶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시작은 내가 매일 돌아가는 집이 내 집이 아니라는 아이러니다. 계약 만료가 다가오면 아무 일 없다는 듯 공부하고 일하지만 늘 마음 한편에 해결되지 않은 숙제가 있는 느낌이다. 적당한 집을 계약할 때까지는 해결할 수 없는 감정이다. 괜찮은 위치와 가격의 매물을 직방이나 부동산에서 발견하더라도 좋아하기는 이르다.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부동산 중개인을 포함해 다양한 군상의 인간들을 만나고, 지금 보고 나온 집을 전에 본 다른 집과 저울질하면서 어느 곳이 더 나은지 생각해보고, 딱 마음에 드는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에 실망하면서도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이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삶이 싫지만은 않았다. 스트레스를 받는 때도 물론 있긴 했다. 3년 동안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던 집에서 하루아침에 집주인의 통보로 새 집을 알아보게 되었을 때다. 우리 집 놀러 갈래, 난 집 먼저 가 볼게, 이런 식으로 거리낌 없이 우리 집이라고 불렀던 곳이 내 집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흘러가듯 살아가던 사람도 내 집 마련의 꿈에 불타오르게 하는. 하지만 막막함과 중압감의 유효시간은 그날 밤까지였다.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거짓말처럼 기분이 나아졌다. 그치, 이곳에서도 오래 살았지. 모든 게 다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잖아? 요 옆 건물이 조금 더 넓은 거 같던데, 이참에 부동산 가보지 뭐.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빨리 받아들이는 게 낫다. 새로운 집을 스스로 찾고 계약하면서 조금 더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거의 모든 이사는 늘 경험치가 상승했다는 만족감과 새로운 장소를 구했다는 안도감으로 끝났다. 아, 이사를 위해 짐을 싸고 푸는 일과 이삿날은 제외다. 평소에는 나한테 없는 것만 눈에 들어오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정리하고 버릴 물건들이 많은지. 가져갈 것과 버릴 것을 고르는 그 과정은 또 어떻고. 순도 100퍼센트의 스트레스다.


살면서 인생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의도치 않게, 이사는 그런 희귀한 시간을 선물해준다. 땀을 흘리며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떨쳐내야 할 것들을 떨쳐내고 새로운 자리를 만들게 된다. (p.59)


이런 문장을 읽으면 이삿날에서 얻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 피로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나도 한 번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럴 수도 있겠군, 이라고. 내가 이사를 통해 새로운 동네와 사람을 만나는 과정을 성장이라고 받아들인 것처럼, 누군가에게 이사는 불필요한 것을 비우는 본질의 시간일 것이다. 이렇게 이사 선배이자 인생 선배인 저자가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에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동의하게 됐다.


자꾸 문장들이 눈에 밟혔다. 책이 세입자의 고난을 푸념처럼 늘어놓는 대신 집과 이사에 대한 생각을 덤덤히 풀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을 꾸리기 위해 자신의 몫을 다해온 사람의 힘이 문장을 통해 전해졌다.


아무리 욕심 내봤자 결국, 내가 짊어질 수 있는 것만이 내 삶이라는 사실을. (p.50)


이런 대목에서는 깨달음과 별도로 이삿날의 괴로움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지만. 역시 몸으로 배운 기억이 오래간다.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내 방의 모습은 조금 새롭지만, 언제나 그렇듯 결국엔 안도감을 준다. 나의 작은 기행은 '여긴 내 공간'이라고 선언하고 확인하는, 일종의 영역 표시인 셈이다. (p.268)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다른 책이 바로 떠올랐다.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가 쓴 책 <내 방 여행하는 법>을 마침 같이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금지된 결투로 42일간의 가택 연금을 선고받고, 그림, 책상, 의자, 기르는 강아지 등 눈에 들어오는 것을 소재로 여행기를 썼다. 방구석 탐험의 공식 창시자나 마찬가지다. 200년도 더 전에 내 방 여행을 예찬한 사람과 정신건강에 좋다며 방 이곳저곳에 누워 다른 각도로 방을 볼 것을 추천하는 사람과 강제로 집콕을 하는 지금의 내 상황. 우리의 만남을 생각하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나는 지금 9번째 집에서 거의 머무르지 않는 편이다. 코로나 이후로 본가에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덕분에 늘 본가에 두는 게 아까웠던 책상을 마음껏 쓰고 있다. 중고등학생 때는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대학 이후에는 아예 도시를 떠났으니 이 책상을 제대로 쓴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이곳에서 오히려 세입자의 기분을 느꼈던 시간이 지났고, 드디어 공간을 조금 더 마음에 들게 꾸미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책상 위에 있는 서류를 다른 곳으로 다 치우고 최소한의 물건만 남겼다. 필기도구통, 화병, 핸드크림, 디퓨저. 올해 출간 20주년을 맞아 리에디션이 나온 최애책의 일러스트를 벽에 붙이고, 작은 동백나무를 들였다. 이렇게 유지하려고 해도 방심하면 A4용지가 구석에 쌓인다. 어쨌든 지금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지금 있는 곳의 풍경을 가장 사랑하고 싶다. 집은 사는 것이며 사는 곳이라는 두 가지 사실 사이에서 답을 찾기 위해 나또한 늘 고군분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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