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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아라 Oct 10. 2021

2010

10월 10일 작성

입지 않는 옷이 많아진 것 같아 오랜만에 서랍장을 모두 털었다. 새 옷도 헌 옷도 구김이 좀 있지만 다 컨디션이 괜찮아 버리지 말고, 사지 말고 부지런히 입어야겠다 다짐한다. 안이 보이지 않는 서랍을 정리했는데도 공기가 다르다. 청소의 기쁨 중 가장 큰 기쁨. 개운함에 빠져 계속 분류하고 틀어놓은 드라마를 보며 열심히 보풀을 제거하고 접는다. 요리는 이런 단순한 일이 다양한 종류로 한 번에 일어나고, 어느샌가, (적어도 하루 안에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거기다 따끈하고 새콤하고 구수하고 향긋한 먹을 수 있는 무언가다.

글감을 생각하다 보니 맛 좋은 와인이 필요해 아껴둔 병을 땄는데, 2010년 빈티지, ‘그때 난 뭘 했나.’, ‘몇 살이었나.’가 절로 생각난다.

뭔지 모르겠어서 퇴근 후 수영을 하고, 그도 모자라 스쿼시를 쳤고, 잘 모르겠을 야근을 연일 하는 가운데, 친구들을 만나고 잡글을 쓰고, 괜한 억하심정으로 인신공격도 하고 트위터에 빠져 헛소리를 하고 수영도 모자라 광화문에서 동대문구 끝자락 집까지 걸어서 퇴근하며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바보 청춘이었다. 겨우 10년이 지났는데, 그때와 달라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미치광이처럼 이것저것을 경험했고, 불안함에 억눌려 죽지 않고 살아 곱씹어 배워온 것이니, 앞으로의 10년은 또 어찌 변할지 사뭇 궁금하다.(허허 정말인가) 30대 역시 성급하긴 마찬가지다. 가끔 내가 너무 짧은 시간 안에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묻는다. 너무 빨리 가고 있는 건 아닌가. 일부러 잠시 멈춘 사람의 머릿속은 왜 이리 바쁜가.


이런 속 시끄러운 사람의 속도를 늦춰줄 수 있는 것도 요리이고, 그다음은 등산, 운동인 것 같다. 참으로 건강하고나. 허허허.


그런데, 나만 건강하면 뭘 하나. 재미없다. 그래서 상을 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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