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 작성
안녕하세요. 홈그라운드의 안아라입니다.
가을비가 가시니, 여름인지 가을인지 몰랐을 습도와 온도가 부쩍 건조해지고 내려가 가을인지 겨울인지 모를 날씨로 바뀌어버렸네요.
지난 8월부터 아침 일찍 (5시 30분~6시 30분 기상) 일어나고, 가급적 밤 12시 전에는 잠들려는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했어요. 처음엔 일어나는 시간에 집착하고 대낮에 너무나 졸리더니 한 달 정도 지속하자 다행히 몸 시계에 맞춰져 몇 시에 자든 일찍 눈이 떠지는 아침 새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 일어난 변화를 죽 개인 계정에 #araxjiyeon_routine 이란 해시태그를 달아 기록했었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오늘 할 일은 내일 새벽으로 미루자"의 습관으로 이른 아침에 조용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해가 뜨는 시간도 금세 늦어졌고, 5시는 여전히 깜깜한 밤입니다.
집 밖의 소리를 들으면, 매일 어김없이 5시 30분에 출근하는 분, 새벽 배송 택배 문자, 일어나서 어김없이 들여다보는 핸드폰 화면엔 2-3시간 전에 좋아요를 클릭한 친구... 도시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바깥바람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니 가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고, 겨울이 오겠죠. 보름 정도 뒤가 11월이라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수면 양말을 꺼내 신고, 두툼한 로브를 걸치고 고구마에 커피를 마시며 <카레와 커리>에 대해 풀어내 보겠습니다.
카레에 대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어릴 적 먹은 엄마의 오뚜기 카레 가루를 풀어 만든 카레입니다. 그 뒤로 "강황이 듬뿍", "인도", "태국" 등의 수식어를 달고 다양한 종류의 카레 가루와 고형 카레들이 나왔는데, 오뚜기 카레 가루의 맛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카레가 실은 커리에서 나온 단어다.'라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실지 인도식 커리를 먹어본 것은 인도 커리 식당을 통해서 인 것 같습니다. ^^; 인도 여행이 한참 유행하고, 조금 꺾였을 무렵이었죠. 광활한 아시아를 여행하고 온 여행자들이 그때 먹은 음식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때를 그리워하고 기억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죠? 다녀온 친구들의 생생한 증언들, 식당을 채운 이국의 장식품, 생소한 향, 거대한 티브이 모니터에서 나오는 흥이 넘치는 뮤직비디오 화면을 보고 들으며 엄마 카레와 완전히 다른 커리를 난에 얹어 손으로 집어 입에 넣고 오물거리니,
'내가 모르는 세계는 너무나 많고, 할 수 없는 것이 많은 나는 그저 작고 작은 존재구나.' 생각했습니다. 어릴 때는 정주형 인간의 성향을 지닌 제가 여행을 즐기는 친구들에 비해 용기가 없는 어린애 같았거든요. 다행히, 맛보기에 있어서는 조금 용감한 편인 것 같습니다.
향신료의 아주 진한 맛을 담고 있었던 인도식, 네팔식, 파키스탄식 커리는 그 진한 풍경의 식당과 함께 큰 인상으로 남아 기운이 없을 때, 우울할 때, 힘내기 혹은 정신 차리기용 음식 중 하나로 자리했습니다.
카레 혹은 커리는 4계절에 다 어울리는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봄, 크림과 봄 풀을 넣고 부드럽게 끓인 카레는, 춘곤증이 몰려올 때 떠먹으면 눈을 번쩍 뜨게 하고,
여름에는 아주 화끈하고 되직하게 끓이면, 더위로 기력이 떨어졌을 때, 후끈하게 공간을 채우는 커리 향신료의 향이 찬 음식을 많이 먹은 몸을 편안하게 데워줍니다.
가을에 다양한 뿌리채소들을 넣고 살짝 묽게 스튜처럼 끓인 카레는, 으슬으슬하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 스산해지는 마음에 위로를 건네는 것 같고,
어떤 것도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겨울엔 커리는 추위로 꽁꽁 언 몸에 피를 돌게 합니다.
기운이나 온기를 북돋는 데에 향신 음식만 한 게 있나 싶은데, 실은 김치찌개도 커리 같은 한국의 향신 음식이죠. 다만, 커리는 마늘 고추 간장 베이스의 향신 음식과는 또 다른 성격이 있는 것 같아요.
카레 혹은 커리라는 음식의 성격은 같은 단어 안에서 무궁무진합니다.
처분해야 하는 갖은 야채를 잔뜩 넣고 야채의 식감이 살아있게 끓인 엄마의 돼지고기 카레부터
이국의 말린 향신료로 향신 기름을 만들고 거기에 채소나 고기를 볶아 만드는 커리까지 맛의 범위가 넓어도 너무 넓은데 같은 단어로 묶이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카레, 커리, 카리라는 단어는 향신료의 이동과 엮여있는데, 그래서 이번 주제는 몇 회에 나눠 적어볼까 합니다.
여기까지 읽어보시고, 눈치 채신 분들이 있을까요.
일본식 커리루나 믹스 파우더 베이스로 끓인 것은 "카레"로, 인도와 주위 지역의 향신료를 템퍼링 하고 갈아 만든 향신료 믹스에 다양한 채소와 고기를 넣고 만드는 것은 "커리"로 말하는 편입니다. 사실, '커리'라는 단어는 커리잎(curry leaf)이라는 향신료와도 이름이 동일한데, 인도에서는 카레에 상응하는 이 음식을 "카리(Kari)"라고 한다고 합니다. 영어 "커리 (curry)"는 인도를 식민 지배한 영국 사람에 의해 불리기 시작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인 것도 같습니다. 알다시피 카레-라고 부르는 지역은 일본과 한국뿐인 듯한데, 카레 조미료가 일본에서 개발되어 한국으로 넘어와서 그런 것은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처음 카레 가루의 존재를 깨운 엄마의 카레가 있다면, 다 커서 일본식 고형 카레루를 살펴보게 한 것은 "장진우의 시금치 커리"입니다. 2012년도 정도부터 알게 된 장진우 사장의 시금치 커리는 소수의 사람들만 맛 본,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시금치 커리였습니다. 시금치 커리라고 해서 초록색일 줄 알았는데, 장진우의 시금치 커리는 아주 되직한 황토색 카레로 푹 익어 시래기 같이 변한 시금치와 방울토마토가 들어가고, 다진 오징어도 들어가 있습니다. 한번 맛보면 주위에서 계속 만들어 달라고 하는 마성의 커리였기에 장진우 식당 운영자는 반드시 그 카레를 만들 수 있어야 했죠. 네, 저도 너무나 많이 만들어봐서 이제는 감으로 시금치 커리하면 계량이 필요 없이 혀로 같은 맛이 나게 만들 수 있었고, 횟수를 반복하고 시간이 갈수록 제 입맛에 맞게, (원래의 장진우 커리보다 조금 더 가볍고 향신료 향이 나는 버전) 변형해 장진우 커리의 안아라 커리 버전을 만들었습니다. 사실 이 카레는 처음부터 일본식 고형 카레루를 쓴 것은 아닙니다. 어느 식품회사에서 만든 인도 커리 페이스트를 사용하였는데, 장진우 식당만 즐겨 쓴 것인지 2012, 13년도 어느 순간부터 그 제품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어 일본 고형 카레 루 중에서 가장 오뚜기 카레 맛이 안나는 종류의 루를 여러 개 사서 써보고 거기에 파프리카 파우더, 시나몬 파우더, 터머릭 파우더 등을 가미해서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있을 때 일어난 일이라 생생히 기억이 나네요.)
손이 크고, 거칠게 많은 것을 넣어 복합적인 맛이 나게 하는 진우 사장의 음식은 카레에서도 같았습니다. 당연히 계량을 정확히 하지 않고 눈 계량 감 계량으로 만드는데, 늘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는 것은 감과 혀의 예민함도 있지만 고형루와 유제품의 확실한 감칠맛 때문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그래도 맨 처음 만들 때보다 훨씬 더 원하는 방향으로 맛을 쌓는 방법으로 발전시켰어요. 그래서 그런지 당시 장진우 식당에서 일했던 요리사라면 이 카레를 다들 끓일 수 있었고 손님상에도 곧잘 내었는데, 만드는 요리사마다 비슷한 듯 다 달랐습니다. 깔끔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들어가는 요거트의 종류, 생크림의 양을 줄이거나 하는 식으로, "시금치 커리"라는 이름을 달고 각자의 카레를 끓였습니다. (저의 "시금치 커리" 변주는 뒤에 적을게요)
가물가물하지만, 최초의 시작은
"아라~ 오늘은 시금치 커리를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 줄게에~"
였던 것 같아요.
(변주가 많은 메뉴라 이번엔 번호를 달지 않고 흐르는 글로 카레를 만들어볼게요)
크게 한 솥(8~10인분 정도. 3.5~5L 용량의 바닥이 두꺼운 냄비) 끓이려면, 큰 백 양파를 2~2.5개 정도 썼습니다.
"네가 썰 수 있는 것 중 가장 얇게 썰어봐"
얇게 썬 꽤나 많은 양의 양파를 캐러멜색이 날 때까지 버터에 약한 불로 천천히 볶았습니다.
저는 버터를 잘 태워 버터 100g에 동량의 포도씨유를 넣어 약불에서 버터가 녹을 때까지 잘 섞었어요.
버터만 사용하여도 됩니다. 그럴 경우, 무염 버터 150g~200g 정도를 넣었습니다.
바닥이 두꺼운 주물냄비가 가장 적당해요.
최소 30분은 걸립니다. 양파 수프를 만드는 가장 첫 단계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일본식 카레를 만드는 방법에 관한 여러 가지 책을 읽고 찾아보았는데, 꽤 많은 종류의 일본식 카레가 이렇게 캐러멜라이즈드 양파를 베이스로 만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양 요리책을 보면 흔히 나오는 스튜를 만드는 방식과도 꽤 닮아있어, 이국의 음식이 요리사들의 손과 머리를 통해 여러 방면으로 접목되어 계속 진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양파가 숨이 푹 죽어 갈색이 되어 단맛이 돌면,
뿌리와 잎 사이사이의 흙을 잘 제거해 깨끗이 씻은 시금치 두 단을 조금씩 냄비에 나눠 넣는데, 캐러멜라이즈드 양파와 잘 섞어가며, 같이 볶습니다. 시금치의 숨이 죽으면, 더 넣고 더 넣고 하는 방식으로 2단을 모두 숨을 죽여가며 볶습니다. 한 번에 넣으면 솥에 가득 찰 정도의 시금치 양이예요. 시금치가 너무 길면 먹을 때 미역 같아서 길이를 반절 정도를 잘라서 넣으세요.
2단의 시금치가 솥에 다 들어가면, 솥이 절반 이하로 찰 겁니다. 이때, 그릭 요거트나 사우어 크림 300g, 생크림 350mL를 넣고, 우유는 500mL 정도 넣어 숨이 죽은 양파, 시금치와 고루 섞습니다. 잘 볶인 양파 덕에 브라운 크림 스튜인가 싶을 정도로 갈색을 띱니다. 요거트나 사우어 크림을 오래 끓이고 두면 신 맛이 점점 강해지니 너무 많이 넣지 않도록 유의하세요.
고형 커리 매운맛 1팩을 (125g씩 2 블록으로 소분된 형태이고, 고형 커리 1팩은 총 250g이어요) 위의 양파 시금치 크림 스튜에서 잘 녹도록 가능한 칼로 잘게 쪼개 넣으세요. 고형 커리 안에 들어있는 전분질로 커리가 아주 걸쭉해져요. 이때 우유를 원하는 농도로 더 넣고, 약불에서 잘 저어주며 고루 섞이게 합니다. 잠시 간을 보는데, 적당하면 두고, 싱겁다는 생각이 들면 고형 커리 50~100그람 정도를 다져 더 넣어가며 간을 맞춥니다.
방울토마토를 10~15알 정도 반으로 가르거나 손으로 슬쩍 터트려서 넣고, 토마토의 껍질이 조글 거리며 익을 때까지 약불에서 나무나 실리콘 주걱으로 저어가며 끓입니다. 되직한 커리가 바닥에 잘 눌어붙으니 유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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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 사장님은 방울토마토를 넣기 전에 오징어 1마리를 잘게 다져 넣거나, 탈피 칵테일 새우를 통 채 넣어 감칠맛을 배가했습니다. 넣고, 안 넣고에 따라 다르긴 다릅니다. 전혀 비리지 않고 더 고소하고 오묘해집니다.
오징어와 새우가 알맞게 익으면, 카레를 접시나 볼에 담고 빵을 꽂거나, 밥에 얹어 노른자가 살아있는 써니사이드 업 계란 후라이나 구운 새우를 얹어 내었습니다.
저는 이 버전의 시금치 새우 커리는 아주 고소하고 두터운 맛이라 밥보다는 바게트 같은 식사용 빵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안아라의 순식물성 시금치 커리
위에 소개한 시금치 커리를 순식물성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포도씨유나 현미유로 양파를 볶고, 생크림과 사우어 크림, 우유 대신 두유(1L 정도)에 캐슈넛 한주먹을 잘 불려두었다 두유와 함께 곱게 갈아 넣었습니다.
고형 카레 중 S&B 브랜드에는 식물성 재료만 들어가 S&B 고형 카레 매운맛을 사용하였고, 여분의 향신료를 그날의 기분에 따라 넣는데, 주로 파프리카 파우더, 시나몬 파우더, 터머릭 파우더, 소량의 고수 파우더, 크러쉬드 레드 페퍼, 큐민 파우더 혹은 가람마살라(커리 파우더 믹스쳐)를 넣는 편입니다.
방울토마토는 10~15알 갈라 넣고 잠시 익을 때까지 함께 끓이다 불을 끄고, 핸드블랜더로 모두 곱게 갈았습니다. 다 간 카레의 간을 보고 부족하면 소금으로 간을 맞춥니다. 익은 방울토마토에서 나오는 과즙과 산미가 기름진 이 카레에 감칠맛을 줍니다. 저는 기름진 맛과 신맛의 조화를 정말 좋아합니다. 지난 식물성 마요에서 말한 바 있지요. 건더기가 없는 누르 붉으스름한 이 커리에 깨끗이 씻은 시금치를 잔뜩 넣고 숨이 죽을 때까지 약불에서 저어가며 끓여줍니다. 이 커리는 식혔다가 두유를 조금 더 부어 끓여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어제의 커리라는 표현 아시죠?!)
순 식물성 버전의 시금치 커리는 TWL 팝업 때 만들어 판매했는데, 제가 느끼는 맛도 손님이 느끼는 맛도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남은 것은 냉동시키거나 냉장으로 보관하며 3~5일 이내에 드세요. 요거트가 들어가는 원래의 시금치 커리도, 캐슈넛이 들어가는 식물성 시금치 커리도 모두 20도 이상의 상온에서 쉽게 맛이 변하는 편이에요. 특히 요거트를 넣은 것은 잘못 보관하면 금새 시큼해집니다. 그래서 1~2일 내로 다 먹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꽤 긴 이야기를 며칠 동안 가지를 쳐가며 쓰는 중입니다. 읽고, '오늘은 카레를 끓여봐야겠어!'라고 생각한다면 좋겠어요. 쌀쌀해진 바람에 매콤한 맛이 당기니 크러쉬드 레드 페퍼나 페퍼론치노를 넣어서요.
카레 얘기만 연일 하면 지루해질 테니, <카레와 커리 (2) 커리> 이슈를 바로 보낼지, 중간에 입가심 메뉴 얘기를 할지 조금 고민해 보다 다시 편지할게요. "커리"하면 당연 스파이스의 재미에 눈 뜨게 해 준 몬순잇츠의 김송수 요리사 님이 첫 번째로 떠오릅니다.
그럼, 감기와 코로나 조심하시고,
곧 다시 뵈어요!
홈그라운드에서 안아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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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는 발송하면 수정의 여지가 없어,
뉴스레터의 내용을 브런치에 함께 올리며 계속 글을 손보고 있답니다.
지난 뉴스레터의 내용들과 저의 잡글들을 브런치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brunch.co.kr/@arahome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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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홈그라운드가 오랜만에 외부 행사를 해요. 10월 17일 일요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인천 가좌 완충녹지공원에서 "가좌 플레이그라운드" 프로그램으로 소풍 바구니를 꾸미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누구나 무료로 신청이 가능하며, 신청 링크 아래에 남깁니다. 다른 재미있는 프로그램도 확인해보셔요.
그럼, 가을의 공원에서 만나요. :-)
아시는 분은 아시는 홈그라운드 워크숍의 모토는 #아낌없이드리리
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595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