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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아라 Mar 03. 2022

#BOSSMEAL

냉털 요리들

안녕하세요. 홈그라운드의 안아라입니다.

지난 2월, 홈그라운드 반짝식당을 운영하고 또 정신없이 시간이 지났습니다.

한 달의 사이클을 보면 둘, 셋, 넷째 주 정신없이 일하고, 첫째 주 정도에 다시 여유가 돌아와 #홈그라운드생활 뉴스레터를 쓰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코로나 상황은 늘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으로 변해있습니다.ㅠㅠ) 이미 걸려서 나으신 분도, 집에서, 병원에서 치료와 회복을 하시는 분도, 저처럼 주위의 확진 소식으로 매일 자가검사 키트를 사용하시는 분도 있겠죠. 오미크론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어떻게 다룰지, 피할지(도시에선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만) 고민하며 조심스레 매일을 이어가고 있을 것 같습니다. 가급적 걸리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걸리더라도 부디 무탈히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4월은 좀 다를까요?)


그래서 3월 셋째 주 반짝식당 오픈을 놓고 형태를 조금 고민해보고 있습니다.

지난 반짝 식당에서는 진행하다 보면, 어쩌면 영향을 받을 수 있겠다는 예상도 했지만, 오랜만이든 처음이든 뵙는 얼굴들의 생기와 기분 좋음이 그런 걱정을 잠시 잊게 했답니다. 다행히 무탈히 마쳤고요. 3월은 "도시락 메뉴 테스트"라는 과제가 오랜만에 홈그라운드에 주어져, 들고 가까운 한강에 나가실 수 있게끔 해볼까도 싶어요. 3월 중순이면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하고, 먼지가 많아지겠네요. 매사 성급한 인간의 삶이 공기로, 기후로 돌아오는 것을 체감할 때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진지하게 궁리해보게 됩니다. 그러다 허무주의로 빠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만큼 냉장고에 남은 재료를 놓고 어떻게 끼니를 때울까 하는 고민을  드러낸 제목 있을까 싶어요. 예능 요소가 더해져 몹시 화려해졌지만, 매일 하는 끼니 고민만큼은 여실히 담고 있어 오래남는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냉장고와 찬장의 식료품을 털어 만드는 생활력 만랩의 요리들이 #냉털, #냉부 라는 해시태그를 단 콘텐츠로 피드에 올라오곤 하는데, 짧고 재밌게 만든 클립들은 쉽게 따라    있을 것만 같은! 자극을 주지요. 냉장고에 재료가  있다면 바로 해볼 수 있지만, 재료를 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면 귀찮음에 쉽게 지기 때문에, 냉털 요리의 재미는 계획성보다는 즉흥성에 있는  같습니다. 냉장고를 딱 열어 남은 재료를 파악하고 계산하는 일은 수학 문제를 푸는  같기도 하고, 미술 숙제를 하는 것도 같아요. 냉털에 꼭 필요한 것은 필수 조미료(소금, 설탕, 간장, 기름)와 베이스가 되는 채소(, 마늘, 양파, 당근?) 정도인  같습니다. 그리고 쌀과 면이 있다면, 여간해선 모두 쌀요리, 면요리, 특히  그릇 음식으로 만들어낼  죠. 


사업장의 직원식이란 대부분 남은 재료로 빨리 만들어 호로록 먹어야 하기 때문에 한 그릇 음식으로 만들곤 합니다. 스텝밀이란 말 대신, '밥 차리는 자'가 '보스'라는 생각에서 #bossmeal 해시태그를 만들고 간간히 만들어 먹는 음식들을 기록해두었습니다. 몇 가지 골라 소개해볼게요.


1. 가지와 파프리카 토마토가 잔뜩 남아 만든 가지 로메스코 소스로 만든 냉털 파스타엔 깻잎과 구운 아몬드를 곁들였습니다.

2. 반짝식당을 위한 메뉴, 보경님의 만두를 전수받아 빚고 구워 먹었습니다.

3. 다진 파와 다진 마늘, 참기름,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식초를 넣고 비빔장을 만들고 거창한 국수에서 보내주신 메밀면을 비비고, 다진 마늘과 건새우를 넣어 볶은 애호박나물, 완숙 계란을 곁들였습니다. 방아와 애호박이 많아 모두 채쳐서 부침가루에 가볍게 무쳐 지졌습니다.

4. 야끼소바 소스와 면이 남아있어, 남은 당근, 팽이버섯, 파프리카, 새우, 양파를 채 썰어 볶고, 면을 같이 볶다 야끼소바 소스에 비벼 감태 가루를 뿌려 먹었습니다.

5. 양배추가 많아 두부와 된장을 넣어 만든 볶음 된장에 반찬가게에서 사 온 나물과 양념 고추, 계란찜, 오이 반찬 등을 곁들여 싸 먹었습니다. 매우 좋아하는 시골밥상입니다.  

6. 촬영 일이  다음 날은 재료가 풍부해서 며칠 요리해 먹는데, 각종 버섯, 아스파라거스, 콜리플라워를  볶다 전분물을 부어 밥에 곁들여먹는 덮밥 소스로 만들었습니다. 바다포도도 있어서 가니쉬로 사용했어요.

7.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홍게 맛간장을 발견! 장진우 사장이 오래전에 여행하다 발견해 알게 된 간장이고, 우리끼리 애칭으로 ‘해장 파스타’라 말하는 파스타를 만드는 장입니다. 마늘과 고춧가루, 홍게장으로만 간을 맞춘 국물이 자작한 파스타이고, 새우장 파스타라 이름 붙였었습니다. 이 게장이 떨어지고 나서는 도통 해먹질 못하다가 오랜만에 발견하듯 사와 만들어먹었습니다. 숏파스타보다 링귀니나 스파게티니 같은 긴 면이 잘 어울리지요.

8. 각종 채소가 너무 많다 싶으면 거의 정답처럼 채소 카레를 끓이는데, 냉동고에 얼려둔 문어가 있어, 새우와 문어를 다져 넣어 만들었습니다. 한번 만들면 양이 꽤 많아 주위로 나눠먹거나 냉동고에 소분해 굳혀두고 카레 생각이 날 때마다 꺼내서 먹습니다.

9. 한식을 전공한 혜진 요리사님이 만든 계란찜은 대파의 흰 부분만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 오랜만에 만난 정갈한 계란찜이었어요. 계란찜을 해 본 사람들은 적절한 익힘과 수분을 간직한 보드라운 계란찜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지요.  

10. 지어놓은 밥이 많아 다시 홍게장의 힘을 빌어 죽과 리소토 사이 어드매인 것 같은 촉촉밥을 만들었고, 어머니가 해오신 감태 반찬을 얹어 간단히 끼니를 해결했습니다.

11. 테스트하던 델리숍 샐러드와 함께 드라이 카레가 먹고 싶다는 직원이 토마토와 카레 향신료로 드라이 카레를 만들어 수란까지 완벽하게 얹어 먹었습니다.

12. 델리숍 운영할 때 판매하고 남은 고춧잎 페스토와 열무가 많아 고춧잎 페스토 열무 파스타를 만들고 시소 잎을 얹어 먹었습니다. 


보스밀은 이렇게 해치워야 하는 재료 과잉의 메뉴가 자주 등장합니다. 방법은 대부분 다 때려 넣고 볶거나 끓이는 방식이죠. 그렇게 만들어먹다가 발견하게 되는 조합도 있고, 새로 만들게 되는 메뉴도 생깁니다.


오늘 먹은 오징어 제육 토마토 파스타는 전날 한식을 시켜먹고 남은 양이  많아 며칠 전부터 토마토 파스타가 먹고 싶어 사둔 호울 토마토를  요량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오징어 제육은 이미 완성된 형태의 음식이고 갖은 양념이 배어 있으니, 새콤하고 살짝 매운 토마토소스가  어울릴 법했습니다. 예를 들면 토마토 김치찌개, 갈비 부르기뇽과 같은 조화죠. 다른  아주 비슷한 성격의 맛을 지닌 음식을 매칭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양식인  한식인  어느 나라인지 모를, 혹은 어느 나라든 생각나는 음식 만들기가 홈그라운드가  쓰는 요리법인  같습니다.


제육 양념은 집집마다 비법이 있으니, 잘 찾아보시고, 혹시 먹고 남은 제육볶음이 있다면 시도해보셔요. 비건인 경우, 제육 양념에 다진 표고버섯이나 새송이를 재워 볶아 토마토소스와 함께 섞어볼 것을 권해요. 그것대로 참 맛있답니다.   


토마토 제육 파스타 3인분


-먹고 남은 오징어 제육볶음 1~1.5인분

-호울 토마토 캔 1개 400g

-다진 마늘 1작은술(없으면 마늘 2알 슬라이스나 다진 것)

-큰 양파 1/2개

-진간장 1큰술

-겨자씨 1작은술 (생략 가능)

-오레가노 1작은술

-링귀니나 스파게티 면 250~300그람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20~25mL


1. 양파 반개를 다진다.

2. 오목한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다진 양파와 마늘을 넣고, 기름에 겨자씨를 넣습니다. 양파 위에 오레가노를 뿌립니다.

(사진에는 겨자씨와 함께 고수 씨도 넣었는데, 만들어 먹다 보니 고수 씨 향이 조금 따로 놀아 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3. 중불에 올리고 양파가 투명할 때까지 볶습니다.

4. 호울 토마토 캔을 따 볶인 양파에 쏟고, 토마토 과육을 잘 으깨줍니다.

5. 약불에서 뭉근하게 졸입니다.

6. 제육볶음을 칼로 모두 잘게 다집니다.

7. 제육볶음 정도로 졸여진 토마토소스에 다진 제육볶음을 섞습니다. 약불에서 튀지 않게 잘 섞어 졸이며 맛이 어우러지게 합니다. 라구 소스의 질감이 나면 진간장 1큰술을 넣고 간을 맞춥니다. 제육 볶음의 짠 정도에 따라 간장이나 소금 간은 조절합니다.

8. 소금물에 80% 정도 삶아진 면을 건져 (익힘은 면을 한줄기 꺼내 씹으면, 안의 하얀 심지가 가늘게 살아있는 정도로 확인합니다), 토마토 제육 소스에 삶은 면을 넣고, 골고루 섞어주면서 맛이 배게 합니다. 소스가 조금 뻑뻑하면 소스에 면수를 가미해서 조금 졸아들게 하세요.

9. 소스가 면에 달라붙는 정도로 맛이 배며 익으면 따뜻하게 데운 접시에 파스타를 올리고 남은 소스도 얹어 줍니다.

10. 생양파가 달아서 얇게 썰어 얹었고, 만들어 둔 방아 가루가 있어 뿌렸습니다. 오레가노나 파슬리, 바질분 같은 것으로 대체해도 됩니다.


버리는 것 없이 아낌없이 잘 먹고 살아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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