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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아라 Mar 28. 2022

시급한 봄나물

여름이 오기 전에 잘 챙겨 먹을 새순

안녕하세요. 홈그라운드의 안아라입니다.

그간 모두 무탈히 지내셨나요?

"무탈하다"라는 인사로 시작한 지도 2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델리숍을 곶감말이 사전예약 제작 업무만 남겨놓고 축소 운영하고 있는 요즘, 3월 반짝 식당도 거르고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신 분이 있을까요?

코로나로 거의 정지가 되다시피 했던 문화예술행사들이 이제는 조금씩 코로나 이후의 스텝을 생각하고 있는 듯하여요. 몇 가지 의뢰가 들어와 안아라로서 할 수 있는 일과 홈그라운드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가르고 계획 중에 있습니다. 여름 즈음 소식 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는 좀 나을까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앞으로를 예측하기보다 매일을 충실히 살며 생활을 다지는 것이 여러모로 나은 것 같습니다. 델리숍 업무를 축소하고 나서 홈그라운드 스튜디오를 여는 날 또한 줄어 아쉬워하시는 분들이 간간이 소식을 전하고, 매일 아침 베 부장(베라)과 산책하며 따뜻한 봄볕을 먹고 자라는 먹을 수 있는 새싹(나물)을 보면, 부지런히 만들고 나누고 먹던 델리숍의 지난봄이 생각납니다.

산책길에 만난 쑥과 원추리, 아침 저녁으로 볼 때마다 쑥쑥 자라있습니다.

섬초, 냉이, 미나리, 쑥, 취나물, 세발나물, 머위, 두릅 등 이제는 매 계절 볼 수 있는 나물도 있지만, 봄에 맛보는 나물의 향과 맛은 확실히 다른 것 같습니다. 슬쩍 나른해진 몸과 마음을 기분 좋게 깨우기도 하고, 할머니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저와 친구들로 퍼진 나물과 이어진 기억에 빠지게도 합니다. 봄 안에 있을 때는 봄이 얼마나 순간인지 모르지만, 내리쬐는 볕이 후끈하게 콧바람에서 느껴질 때, 여름의 기척이 들릴 때, 푸릇 파릇한 기운으로 자란 조금 억센 풀을 씹을 때면 '아, 그때 부지런히 먹어둘걸.' 하며, 아쉬운 마음에 지난봄 조금 저장해두었던 두릅 피클을 꺼냅니다.


나물 다듬기만큼 묵은 생각을 정리할 때, 적절한 것이 없습니다. (기분이 좀 쳐질 때는 감귤류를 손질하면 좋습니다.) 사이사이 낀 흙과 잔뿌리를 털고 다듬고 너무 질긴 섬유질은 벗겨내며 반짝반짝 가지런히 풀을 정리할 때면 이런저런 시답지 않은 생각에 풋풋하고 싸한 풀내음이 금세 묻고, 풀맛이 궁금해져 툭툭 털어내 고운 연두색을 입에 한번 물어봅니다. 보기보다 씁쓸하고 고소한 물 맛이 나는 이것을 어떻게 요리할까 궁리하다보면, 무슨 묵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잠시 잊어버리게 되지요.

두릅 튀김을 만드려고, 에이코 상이 깨끗하게 손질한 두릅입니다. 아름답죠.

새로운 식음 공간들도 재난의 시대에 사람과 환경에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보는 듯합니다. 얼마 전 새로운 공간을 위한 메뉴 개발의 사전 조사로 울산에 다녀왔습니다. 청도 미나리가 유명한 것처럼 울주 미나리도 맛이 좋았습니다. 산과 물, 비옥한 흙이 넉넉한 지역의 산물이 맛이 없을 수가 없죠. 울산 농협에서 들고 온 바다 방풍과 울주 미나리가 시들시들해지기 전에 어떻게 먹어야 할지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푸른 잎이란 시들기 마련이고, 에너지를 잃기 전에 어서 수확한 것을 뱃속에 잘 넣어야 예의니까요. 사실 나물로는 페스토라는 것을 잘 만들지 않았습니다. 서양식 페스토를 만드는 방식 그대로 나물로 페스토를 만들다가는 자칫 소여물을 씹는 기분이 들 수 있거든요. 달고 향긋한 뿌리지만 갈면 섬유질이 도드라져 나물이 가진 풍미를 방해할 뿐이죠.


홈그라운드에서 만들었던 나물 페스토는 이름은 페스토지만, 아주 잘게 다져 볶음 된장처럼 만든 것이 많았습니다. 냉이, 가죽나물, 능개승마 같은 나물은 기름과 열을 가하면 고소한 풍미가 올라와 감칠맛이 배가되어 볶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건나물은 잘 불려 뭉근히 오래 삶고 물기를 꽉 짜내고, 마늘 기름을 끼얹어 어울리는 견과를 선택해 함께 가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여린 잎을 가진 나물 중 곱게 갈아도 풋내가 나지 않는 것은 서양식 페스토를 만들듯이해도 괜찮았습니다. 그중 미나리! 지금 나오는 미나리가 아주 여리고 맛있습니다. 조금 지나면 밑동은 억새서 잘라내고 사용하는데, 지금은 밑동도 아삭아삭해 거의 전체를 먹을 수 있습니다. 조금 억새진 미나리는 전골 위에 잔뜩 얹어 익혀먹으면 맛있습니다. 고향이 전라도 광주인 제게 미나리는 무쳐 먹는 나물보다는 들깨가 많이 들어가 구수하고 묵직한 오리탕 국물 위에 산더미처럼 미나리를 얹어 익히고, 들깨 오리 국물과 함께 떠 그 위에 초장을 조금 얹어 잔뜩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하튼 지금 맛있는 미나리를 다듬어 오랜만에 미나리 페스토를 만들었습니다. 물가에서 자라는 수초 성질을 지닌 미나리는 갈면 풋내가 살짝 나, 식초를 조금 넣어 보완했습니다. 예전에 영국 요리사가 만든 요리책에서 워터크래스(서양 미나리)로 페스토를 만드는 방식을 보고 한국 워터크래스, 미나리로 페스토를 만들어 성공했습니다. 당시의 요리법에서는 견과류로 잣을 사용 했는데, 여린 미나리가 가진 맛과 향이 기름진 잣보다 가벼운 아몬드나 피스타치오와 더 잘 맞겠다 싶어, 껍질을 벗겨낸 아몬드와 피스타치오를 잘 볶아 넣었습니다. 껍질을 벗기면 까끌까끌한 맛이 없어지고, 아몬드는 갈면 갈수록 크리미한 맛이 좋습니다. 재료만 준비되면, 블랜더 안에서 순식간에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는 풍미 넘치는 미나리 페스토가 됩니다. 다만, 재료를 넣는 순서는 조금 유의하면 좋습니다. 식초, 소금이 미나리와 바로 만나면 색과 맛이 금세 시드는 것 같습니다.

완성한 나물 파스타


좋은 올리브유와 미나리는 아주 잘 어울려요. 갈면 이렇게 고운 색을 볼 수 있습니다.
울산에서 처음 본 바다 방풍입니다. 흔히 보는 방풍나물보다 작은 잎에 줄기가 붉고 질기지 않습니다. 독특한 향과 식감이 가열해도 여전합니다. 마늘 기름에 두부와 함께 볶습니다.

미나리 페스토 (순식물성)


거친 밑동을 다듬은 미나리 160g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120g

생들기름 10g

탈피 아몬드 20g

피스타치오 10g

화이트 와인식초 10g

소금 2g

기구: 핸드블랜더 또는 진공 블랜더


1. 미나리의 밑동 쪽을 꺾어 먹어보고 잘 씹히지 않고 섬유질이 굵으면 그만큼만 자르세요. 미나리를 깨끗이 씻고 시든 잎을 정리한 후, 키친타월 위에서 물기를 닦습니다.

2. 탈피 아몬드 슬라이스와 피스타치오를 13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15분~30분 천천히 갈색 빛을 띨 때까지 굽습니다. 오븐이 없는 경우, 약불로 달군 프라이팬 위에서 노릇해질 때까지 볶습니다. 잘 타므로 깨 볶듯이 뒤적이며 천천히 골고루 볶습니다.

3. 구워서 식힌 아몬드 슬라이스와 피스타치오를 진공 블랜더 통의 아래쪽에 넣습니다. 그래야 골고루 잘 갈립니다.

4. 미나리를 손으로 움켜쥐고, 여린 잎부터 끝의 줄기까지 2~3cm 간격으로 가위로 잘라 블랜더 통에 넣습니다.

5.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넣습니다.

6. 곱게 갑니다. 핸드블랜더로 갈 경우에 견과류의 입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 곱게 갑니다.

7. 소금을 넣고, 한번 더 갈아 섞어줍니다.

8. 화이트 와인식초를 넣고 갈아 섞습니다.

9. 생들기름을 넣어 고루 섞고, 간을 봅니다. 들기름을 넣으면, 뾰족한 맛들이 부드러워집니다.

(들기름은 생략해도 괜찮습니다)

10. 저장용기에 담아 밀봉한 후, 냉장고 안쪽에 보관합니다.


*냉장보관으로 하루 지나면 맛이 더 안정되고 맛있어집니다. 1주일 정도 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불에 가열할  경우, 상큼한 맛과 풍미가 쉬이 날아가므로 미나리 페스토는 가열하는 요리에 넣을 경우, 불에서 내려 따뜻할 때 넣어 섞어 주세요. 완성된 요리에 추가로 더 얹어 먹기에도 좋고, 해산물 요리의 소스, 샌드위치 스프레드,  튀김 요리나 크래커의 딥으로 활용하기에도 좋습니다.

*마늘 기름에 볶은 야채와 파스타를 비벼 먹을 요량으로 만든 페스토여서 페스토에 마늘을 넣지 않았습니다.

*산미와 염도는 각자 취향에 맞춰 식초와 소금을 가감하세요.

*신선하고 맛이 좋은 오일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에서 피쿠알 품종을 사용하여 쌉싸름한 맛도 가미했습니다. 조금 부드러운 풍미를 더하고 싶어 생들기름을 마무리 기름으로 사용했습니다. 올리브유 특유의 쌉싸름한 맛이 좋지 않으면, 올리브유 대신 현미유를 사용하세요.


나물과 미나리 페스토 파스타 (3인분)


바다 방풍 한 줌(잎이 도톰한 다른 나물로도 가능합니다)

글루텐프리 렌틸 펜넬 면 250그람 (다른 면으로도 가능합니다)

마늘 1알

두부 1/4모 아주 작게 깍둑썰기한 것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1. 마늘 1알을 다집니다.

2. 두부는 5~10mm로 깍둑썰기합니다.

3. 팬에 올리브유를 바닥이 자작해질 정도 두르고 다진 마늘을 넣고, 가스레인지의 불을 약불로 올립니다.

4. 마늘향이 올라오면 방풍 잎을 크게 듬성듬성 썬 것을 넣고, 살짝 숨이 죽을 정도로 볶습니다.

5. 두부를 숨이 죽은 방풍 마늘 볶음에 넣고 버무리듯이 살짝 볶습니다. 센 불에서 볶을 경우, 타고 눌어붙습니다. 약불에서 맛을 입히듯이 섞어줍니다.

6. 냄비에 넣은 바닷물 정도로 짠 소금물이 끓으면, 파스타면을 넣고 90프로 정도까지 익힙니다. 면을 씹어 가운데를 보면 하얀 심지가 아주 희미하게 남아있는 정도입니다.

7. 면이 익으면, 채로 건져서 물기를 털고 두부 방풍잎 마늘 볶음에 넣고, 면수도 2~3 수저 정도 넣어 수분을 가미합니다. 면수가 너무 짜면 끓인 맹물을 조금 넣어주세요. 서로 잘 섞이게 조금만 볶다가 불을 끄고, 미나리 페스토를 크게 2 수저 넣고 고루 잘 섞습니다.

8. 따뜻한 접시에 파스타를 담고, 여분의 페스토를 올립니다. 생미나리 잎을 고명으로 올려도 좋습니다.

후추는 취향껏. 파스타를 먹다가 레몬즙을 조금 뿌려 먹어도 맛있습니다.




오랜만에 먹는 맛있는 페스토 파스타였습니다. 신선하고 여린 나물이 나오는 짧은 봄 충분히 즐기고 보내요.

한시가 급한 봄나물이니, 새 봄나물을 가지고 다음 뉴스레터로 금세 돌아오겠습니다.

모두 건강히 또. :-)


홈그라운드에서 아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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