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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락 Aug 13. 2020

[이번 주 요가] 엽떡은 안된다

25주 차




몸이 허락하지 않으면 요가를 할 수 없다. 몸이 너무 피곤해도 너무 에너지가 넘쳐도 요가를 그르치기 쉽다. 특히 식사량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데 수련 전 공복 2~3시간을 유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8시간 직장인으로 일하고 나서 저녁을 부실히 먹고 운동을 가는 것은 왠지 억울하다. 하루는 퇴근 후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수련 2시간 전에 쌀국수를 한 그릇 싹싹 비워 먹고 갔다. 수련 내내 후굴과 전굴을 할 때마다 배에 힘을 줄 수도 뺄 수도 없어 '다시는 저녁을 과하게 먹지 않으리'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런데 얄궂게도 밥심도 없이 부실하게 먹으면 또 힘이 나질 않아 자세를 유지하기 어렵다. ‘나는 왜 밥도 제대로 안 먹고 여기 와서 이러고 있는가' 라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의 레퍼토리를 반복한다.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몸이 허락해주어야 가능한 것들이 있다. 체력 싸움인 인생에서 마음은 굴뚝같아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진리다. 요가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몸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어떤 음식을 얼마만큼으로 먹느냐에 따라 오늘과 어제의 나의 몸 컨디션은 확확 달라진다. 이렇게 몸처럼 정직한 것들도 없을 텐데 나는 늘 몸을 이기려도 든다. 배가 부른데도 불구하고 더 먹고, 배가 고픈데도 음식을 공급해 주지 않는다.


저녁을 많이 먹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통해 배가 고프다면 점심을 든든히 먹기로 했다. 힘들었던 하루를 저녁식사로 보상해 주지말고 점심식사로 보상해주자! 그래서 어제는 점심에 친구들과 엽떡을 먹었다. 매운 걸 주기적으로 먹어줬으니 이제 때가 왔고, 요가를 위해 점심에 먹자. 이 얼마나 합리적인 사고과정이란 말인가. 역시 엽떡은 너무 즐겁고 맛있었다. 첫 입에 온몸에 퍼지는 나트륨과 매운맛에 전율했다. 그날따라 유독 짜고 자극적인 것 같았지만 젓가락질을 반복할수록 혀가 무뎌져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당연히 저녁은 간단히 먹었다. 김밥 반줄과 삶은 달걀 1개를 먹었다. 그렇게 뿌듯하게 준비를 마쳤고 의기양양하게 요가원으로 향했다.


전굴은 순탄했다. 저녁도 간단히 먹은 덕분에 속 부대낌도 없었다. 한참 몸에 열을 낸 후 아도무카 스바나 아사나를 하는데, 신물이 올라왔다. 어라? 점심을 너무 많이 먹었나. 우드르바 다누라 아사나를 하는데 어라, 위가 쓰리기 시작하더니 목까지 따끔따끔했다. 하이라이트는 살람바 사르반가 아사나를 할 때였다. 위가 쓰리니 복부를 제대로 잡을 수 없었고 목이 따끔따끔해 숨을 쉴 때마다 불편했다. 게다가 경미한 위경련 증세가 생겼다. 엽떡의 잔해가 몸에 남아 장기를 거꾸로 할 때마다 다시 되살아나 몸속을 자극한 것이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자극적인 음식을 혀가 원한다는 이유로 잔뜩 먹은 나의 어리석음이 부끄러웠다. 지속되는 복통과 함께 집에 돌아와 따뜻한 우유를 한잔 마시고 얼른 잠자리에 누웠다.


이렇게 평온했어야 했는데.



누워서 찜질팩을 끌어안고 언제 요가가 잘 되지 않았는지를 떠올렸다. 오늘처럼 매운 식사를 한 날, 과식을 한 날, 생리 중인 날, 머리가 복잡한 날. 모두 공통적으로는 몸이 앞으로 굽거나 안으로 수축될 때였다. 매운 식사를 해서 쓰린 속을 움켜잡기 위해 몸을 앞으로 움츠리거나, 과식을 해서 허리를 곧게 펼 수 없게 되거나, 생리통에 몸을 움츠리거나, 머리가 복잡해 어깨가 안으로 말려들어갈 때.


몸을 수축/긴장하게 한 날은 그게 수련 몇 시간 전이라고 해도 영향을 미친다. 식사의 관점에서는 점심이든 저녁이든 관계가 없다. 요가 같은 삶이라는 말은 분명, 수련 외의 시간에도 요가하듯이 몸을 잘 다스리고 살펴야 함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는 것을, 엽떡을 먹은 날 깨달았다.


몸은 정직하고
그 몸이 마음 같지 않을 때는
주로 내가 되지도 않는 떼를 쓰는 중이라는 것


요가는 몸은 정직하고 그 몸이 마음 같지 않을 때는 주로 내가 되지도 않는 떼를 쓰는 중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몸이 원하는 대로 해줬다면, 충분히 쉬고 적절히 단련하고 소화시키기 좋고 건강한 것들을 먹여주었더라면 반드시 몸은 보답한다는 것. 대부분 같은 동작들이 반복되는 수련임에도 매일 매일 체감이 달라지는 것을 통해 ‘오늘 먹은 것들이 나를 이루고 있다'는 말의 투명함을 다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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