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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락 Aug 19. 2020

[이번 주 요가] 코로나 시대의 요가

26주 차



 직장인으로서 8시간 하루 근무를 마치고 나면 기진맥진해 저녁을 먹기도 귀찮을 때가 있다. 원초적으로 즐거운 먹는 행위마저 번거로울 정도로 지쳐 있을 때는 집이 아닌 곳을 향해서 곳에서 옷을 갈아입고 운동을 한다는 행위가 자기 파괴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의사가 운동을 하지 말라고 권하는 날이 아니고서야 늘 마음을 고쳐먹고 요가원으로 향한다. 집에 가서 누워있는 안락함보다 요가 중에 오는 무념무상요가복이 흠뻑 땀에 쩌는 쾌감집에 가는 길의 가뿐함이 더 크다는 걸 몇 번의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특히 요가를 모두 마치고 집에 갈 때, 몸은 시원한데 정신은 노곤 노곤하여 마치 현실과 꿈의 경계에 있는 것처럼 머리가 텅 빌 때. 그 순간을 가장 사랑한다. 


요가를 2020년 1월 1일에 시작했지만 코로나의 영향으로 요가원을 자주 가지 못했다. 코로나가 닥치지 않았던 시절의 요가원을 잘 모른다. 입장 전 체온 체크하고 손과 발을 깨끗이 씻고 들어가는, 마스크를 잘 보관시켜놓고 요가 매트 위로 조심스레 향하는 모습이 아닌 요가원을 상상하기 어렵다. 


요가는 코로나 시대에 비교적 안전한 운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본인 전용 매트를 사용하며 매번 잘 청소하여 보관하고, 남의 매트는 절대 사용하거나 만지지 않는다. 펼쳐져 있는 남의 요가 매트는 귀퉁이라도 밟는 일이 없기에 요가 매트 위 공간은 오롯이 개개인만의 것이 된다. 내가 다니는 요가원에서는 수련시간 약 90분뿐만 아니라 시작 전 30분 동안 몸을 풀거나 휴식을 취하는 기간에도 어느 누구도 말을 하지 않는다. 물건이 내는 소리만 공명한다. 회사에서 직장 선후배들과 듣고 떠들다가 약 2시간 동안 말소리가 없는 공간에서 숨쉬기와 움직임에 집중할 때, 그 공간이 주는 평온과 위로는 중독적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의 심각성으로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는 때에는 요가원 조차 갈 수가 없어 집에서 주로 수련을 한다. 김경리 작가가 쓴 <요가의 언어> 에는 아직 이름을 외우지 못한 동작들에 친절한 설명이 되어 있어서 '맞아. 이 자세를 할 때 선생님이 우파비스타 코나 아사나 (박쥐 자세)라고 하셨지' 하면서 홀로 복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우파비스타 코나 아사나 /  <요가의 언어> 김경리 작가



현재 하고 있는 하타요가는 동작들을 진행할 때 유연성과 힘 중 어느 하나가 무너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호흡도 너무 가빠서도 느려서도 안 되는 밸런스가 중요한 수련이다. 유연성과 힘, 호흡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기까지 어떤 자세는 2~3년의 수련기간이 필요하다. 아직 초보자인 나에게는 '도대체 저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건지' 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감을 잡을 수 없는 자세들이다. 


동작에 따라 한 자세를 1분 혹은 15분 동안 유지할 때 온갖 상념이 떠오른다. '왼쪽으로 너무 기울어지지는 않았나. 밥은 적당한 양으로 먹어서 호흡이 불편하지는 않은가' 생각한다던가 '오늘 종일 긴장을 너무 했나 어깨에 자꾸 힘이 들어가네. 오늘 유독 오른 다리의 유연성이 떨어지네 다리를 많이 꼬았나' 등 오늘 하루 동안 몸에게 가한 불균형을 해소하고 원상태로 되돌려 놓으려고 땀을 흘린다. 책상에만 앉아서는 오른 어깨로 더 많은 일을 하고, 일어서서는 오른 다리에 더 큰 체중을 싣고, 불편한 신발로 허리에 무리를 주는 등 하루의 습관이 고스란히 몸에 남는다. 요가를 통해 알아채는 시간이 없었다면 몸에 남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요가원에서의 90분은 마치 30분처럼 빨리 지나가는데 집에서 하는 요가도 마찬가지다. 오른 다리를 이제 좀 풀었나 싶으면 30분이 훌쩍 지나가 있다. 혼자서 후굴을 하는 건 위험하기 때문에 전굴 및 골반 이완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요가는 매트 하나만 있으면 되는 운동이어서 코로나 시대에 집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운동이다. 하지만 모두가 모여 저마다의 매트 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1초만 더, 1 걸음만 더, 하면서 각개전투하고 있는 요가원의 현장에,  '그래 저 사람도 다 아프고 힘들 텐데 딱 1cm만 더 가보려고 하는구나' 옆 자리 수련생의 <1의 전쟁>을 목격하며 나 역시 어제의 나보다  발만 더 나아가 보자고 다짐하고 도전하는 집단 운동의 현장에 가고 싶다. 따로 또 같이 있는 그곳에서 무언의 동료애를 느끼며 땀을 흠뻑 흘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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