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락 Nov 16. 2021

계단식 성장이라는 환상


요가를 하다 보면 이젠 한계라고 느껴지는 때가 있다. 이 자세를 단 1초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고개를 뒤로 젖히는 자세를 유지하다 목구멍에 간당간당하게 침이 넘어가려고 숨이 엉킬 때는 머리에 이런 곡소리가 절로 울린다.


아이고 죽겠다 그만하자.

어차피 다음에도 또 요가를 할 거고, 앞으로도 몇 년을 계속할 건데 힘든 날은 대충 살살해.


하지만 이내 번뜩, 지난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떠오른다. 유연하게 타고난 몸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드롭백을 갑자기 성공한 날,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 자세에서 '내일 그냥 좀 걸을 때 힘들지 뭐' 하면서 끝까지 버티던 날, 여름에도 땀을 안 흘리는 체질인데 땀에 흠뻑 젖은 요가복에 갑자기 불어온 시원한 바람을 맞던 날 그 소름 끼치던 희열을 생각한다. 업무시간 내내 의자에 앉아 거북이가 장래희망인 것처럼 목과 어깨, 허리와 손목을 혹사하던 직장인의 몸을 앞으로 꺾고 뒤로 꺾고 근육이 터질 듯이 버티다가 모든 걸 내려놓고 이완할 때,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전율이 돋으며 살아있음을 느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어쩔 수 없다. 딱 1초만 더 버텨보자. 지금 힘들수록 끝에 오는 전율이 거대하리라!


가만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는 날은 아주 간헐적이지만 반드시 찾아왔다. 몇 달 내내 무수히 퇴보만 했다고 슬퍼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그 자세를 가뿐히 성공하던 날. 그렇다면 지지부진했던 날들이 미래의 성공에 분명 기여한 바가 있을 거라는 얘기이다. 실패의 기억이든 성공의 감이든 오늘 무언가를 쌓았겠지. 그렇다면 내 몸뚱이가 버둥거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1초를 더 힘내보는 수밖에 없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컨디션이 안 좋을지도 모른다. 오늘 3번째 시도까지는 실패했지만 4번째 시도에서 갑자기 성공할지도 모른다. 만약 4번째 시도에서 성공하면 3번째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스타와 유튜브에선 5년을 수련한 사람이 수월하게 드롭백 컴업을 하고 10년을 수련한 사람은 인체의 몸으로 가능한 줄도 몰랐던 자세를 시연한다. 나는 이제 겨우 1년 8개월째 수련을 이어가고 있는 초짜 요기이다. 요가를 시작한 첫 몇 달간은 그런 숙련자의 모습을 보면 '아무리 계속해도 저 자세를 성공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 몸이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더 유연해질 수 있고, 더 단단해질 수 있고,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걸 믿는다. 어느 수련 날 1cm 앞으로 갔다가 다음날 뒤로 2cm 가더라도 5cm를 움직일 수 있는 그날이 반드시 온다는 걸 안다. 5년, 10년 수련한 사람들을 보면 절로 마음이 겸허해지는 것도 그들도 처음부터 요가에 적합한 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몸이 유연한 사람은 분명 있지만 아사나를 지탱해주는 힘 없이 유연함은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 힘은 세지만 유연하지 못한 사람도 지속된 수련 없이는 그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지금 저 멋진 모습이 되기까지의 수련 동안 '딱 한 발만 더 가보자'라고 마음먹었지만 좌절되었을 그들의 무수한 날들을 생각한다. 그런 걸 보면 계단식 성장이라는 것도 환상에 가까운 것 같다. 계속 노력해도 어떤 일정한 단계가 계속 유지되는 게 아니라, 뒤로 가는 것 같은 날이 더 많다는 것. 그러다 갑자기 보석처럼 급격한 성장이 찾아오지만 그 이후에도 그 단계가 유지되는 게 아니라 무수한 퇴보가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보면 조금씩 조금씩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에 우리는 계단식 성장이 아니라 마치 은하계에 흩뿌려진 별 같은 성장을 믿어야 할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요가를 통해 경험한 성장이란 계단식은 아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