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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락 Nov 20. 2021

번개 회식에 끝까지 있고 싶었다


"한 시간만 있다가 가."


갑자기 잡힌 번개 회식에 '오늘은 선약(요가 수업이다)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니 돌아오는 답변이었다. 물론 나는 지금 팀장/팀원을 만난 운이 억수로 좋아서 저 말에는 어떠한 악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그래도 오늘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음에 미리 말씀해주시면 꼭 참석할게요!'라고 대답했다면 '그래~ 아쉽지만 다음에 같이 가자!'라는 대답이 돌아왔을 것이다. '그런 회사 분위기라면 뭘 고민해. 맘 편하게 요가 갈 수 있겠구먼'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좋은 팀장과 팀원을 만나 칼퇴와 개인생활이 존중되는 회사 분위기는 아마 정기적으로 요가 수련을 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아쉬웠다는 데 있었다. 일 년에 많아야 두 번 있는 번개 회식에, 그것도 오늘은 올해 첫 번개 회식이었는데 그 한 번의 친목도모를 거절하기가 내가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칼퇴를 우선시하는 팀의 특성상, 근무시간인 8시간은 쉴 틈이 없었다. 팀원들과 이야기 할때는 업무 진행사항 확인 혹은 미팅이 목적이었다. 잡담을 하게 되더라도 정신차리고 '우리가 이렇게 한가하게 수다떨 때가 아니다. 오늘 근무시간이 얼마 안남았어' 라는 인식이 전반에 깔려있다. 칼퇴가 우선시 되는 팀 분위기가 형성된 건 모두 팀장 덕이었다. 사원때부터 칼퇴하기로 유명해서 부장님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던 그 사원이 시간이 흘러 우리팀 팀장이 되었다. '저녁시간이 반드시 확보되어야 지속가능하다' 는 팀장의 철칙을 팀원도 목숨처럼 소중히 하고 싶었다. 이런 팀장을 둔 게 얼마나 운이 좋은지 너무 잘 아니까! 같은 층에서도 우리팀만 팀장님을 선두로 줄줄이 칼퇴하니까. 그러면서도 퍼포먼스는 잘 내고 있으니까! 팀원들은 퇴근 후 정기적인 일정들을 소화하고 있었다. 나는 주 3회 요가, 다른 팀원은 주 3회 퇴근 후 독서실에서 독서, 다른 분은 주 4일 헬스. 다른 분은 주5일 가족과의 저녁식사. 이것은 신념과도 같았다. 회사 생활이 아무리 바빠도 저녁의 루틴은 사수하겠다는 신념. 일에게 내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다짐. 그런데 올해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이 될 번개 회식이 하필 내가 요가 가는 날로 잡히다니!


미리 예약해둔 오프라인 수련을 온라인으로 바꾸면서 조금 확보한 시간적 여유에 치맥 집에 따라가 치킨  조각을 쥐꼬리만큼씩 뜯어먹고 맥주를 사이다로 대체해 마시면서도 계속 고민이 됐다. 응당 직장인이라면 회식에 성실히 참여해야 한다는 구시대적 의무감이 오히려 회식을 너무  하는 팀에 있으니 떨치기 어려웠다. '내가 너무 배가 불러 최소한의 개인시간도 팀에 할애하기 어려운 것인가'. 그렇지만 요가 가는 날은 점심부터 먹는 것을 신경 써야 했다. 점심으로 엽떡을 과식하고 저녁 수련에 살람바 사르반가 아사나 (어깨서기)   얼마나 괴로웠던가.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잔뜩 고구마를 집어먹고 가서  우스트라아사나 (낙타자세) 배에 가스가 차서 얼마나 곤욕스러웠던가. 수련 있는  3회는 과식하지 않기, 매운  먹지 않기, 빈속에 커피 때려붓지 않기, 가스차는 너무  음식이나 단백질 많지 먹지 않기  수련에 최대한의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 신경을 써야 했다. ( 과민성 대장군! 유당불내증!) 그런데 오늘 갑자기 번개회식이라니.


만약 오늘 개인 일정을 취소할  없어 불참한 1명의 팀원이 없었더라면, 팀장이  먹는 것도 번개도 싫어해서 으쌰 으쌰 과반수에 의해 만들어진  자리를 그다지 즐기고 있지 다는  몰랐더라면, 분명 수련을 취소하고 바삭한 치킨과 신선한 맥주를 들이켰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결국 "저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끝까지 못있어서 아쉬워요. 재미있게 노시고 내일 뵐게요!" 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올바른 결정을 내리면 몸이 안다고 했던가. 왁자지껄한 그들을 뒤에 두고 밖으로 나오는 문을 짤랑, 여는 순간 후련함이 몰려왔다. 마스크  입술은 이미 씰룩이고 있었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오늘도 많은 유혹을 이겨냈구나.
자, 이제 수련을 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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