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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ki May 24. 2018

‘나무요일엔 숲으로!’

느린 템포로 세상을 더듬어가는 시간.

나무요일엔 숲으로..!



일상에서 잠시 빠져나와
느린 템포로 세상을 더듬어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회사를 나온 이유와 목적이 구체적이진 않았다. 다만, 때가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프리가 된 이후에도 전과 다름없이 9시 일을 시작하고 이따금 야근을 해야 했고, 늘 그랬듯이 분주하게 마감을 치렀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무(목)요일엔 숲으로 간다.’는 것. 특별한 건 없었고,그저 한 달에 두어번쯤 숲 속으로 들어가 흙길을 밟으며 자유롭게 열어둔 감각에 한나절의 시간을 맡겨보는 게 전부다.


숲에 가려고 한 이유를 생각해봤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업으로 살다보니 늘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생활과 그런 시대의 요구에 좀 지친다는 느낌, 감각이 지치는 느낌이랄까. 그러한 일상에서 잠시 빠져나와 느린 템포로 세상을 더듬어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 단순한 나무요일의 의식이
내게 작은 변화들을 가져오고 있다.


바삭바삭 말라가는 감각과 모니터를 째려보느라 지친 안구에
생명수를 끼얹은듯 다시 꿈틀대는 무언가를 느낀다.


숲은 언제나그 자리에 머무른다. 그자리에서 그저 계절에 맞는 옷으로 바꿔 입으며 세상과 마주 선다. 캐리어를 끌고 먼 곳까지 떠나기도 버거울때, 내게 숲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시공간으로 다가왔다.숲으로 향하는 날은 온라인 세상과도 ‘로그아웃’ 한채, 숲속의 작은 움직임과 소리에 잠든 모든 감각을 깨워보려한다. 이  단순한 나무요일의 의식이 내게 작은 변화들을 가져오고 있다. 바삭바삭 말라가는 감각과 모니터를 째려보느라 지친 안구에 생명수를 끼얹은듯 다시 꿈틀대는 무언가를 느낀다. 나는 이러한 나의 경험들을  ‘숲 처방전’이라고 이름 붙이고 본격적으로 기록해 본다.





한라산을 내게 '처방'하기로 했다.

프리랜서 생활의 만만치 않은 복병은 매달 같은날에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과  A부터 Z까지의 업무를 스스로 책임져야한다는 것인데, 그게 은근히 불안감을 자극하고 피로하게 한다. 그런 긴장상태를 전환하고 불안감마저 압도시킬 ‘강력처방’이 필요했다.

고민끝에 한라산을 오르기로 했다. 사실, 2년전 성판악 코스로 정상에 올랐다가 정말 다리가 끊어질것만 같아 거의 울면서 다리를 질질 끌다시피 하산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극약처방'이 필요했고, 아픈 기억 또한 새로이 갱신해보겠다는 의지로 한라산 등반을 결정!  여전히 멋지지만 두려운 곳, 제주도의 지붕이자, 어쩌면 제주도 그 자체인 ‘한라산’을 내게 처방하기로 했다.


집앞에서 늘 한라산을 바라볼 수 있지만, 1950m 높이의 산을 오르는 데는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했다. 포털에서 몇가지 정보를 찾아보니, 산의 정산인 백록담은 “남북길이 약 500m, 동서길이 600m, 둘레 약 3km의 타원형 화구로 거의 사시사철 물이 괴어 있고, 그 이름은 옛날 선인들이 이곳에서 백록(흰사슴)으로 담근 술을 마셨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제주 관광공사 발췌) 사슴으로 술을 담궜다는 내용이 좀 엽기적이지만 흰사슴이 노니는 백록담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아름답다. 게다가 백록담까지 오르는 동안 난대식물들부터 고산대식물들까지 다양한 풍경의 대자연이 눈앞에 펼쳐진다고 하니, 한라산을 등반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지쳐가는 심신에 풍부한 생기를 불어넣어줄 ‘초강력 숲 처방’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백록담 코앞까지 갈 수 있는 코스는 현재 관음사코스와 성판악코스 두 개뿐이다. 나는 그 중에서도 얼마 전에 임시 폐쇄되었다가 다시 개방된 관음사코스를 통해 정상까지 올라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왕복 표준 소요 시간이 9시간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코스였다.

전날밤, 등산복과 간단한 도시락을 준비한 뒤 아침 6시에 알람을 맞췄다. ‘기대감 반, 두려움 반’ 오랜만에 설레이는 마음이 밀려왔다.. 늘 책상앞 생활을 하다 산에 오를 생각을 하니 부담이 밀려오기도하고, 다리에 심하게 쥐라도 나서 헬기에 실려내려오는건 아닌지, 이게 과연 내게 효과적인 처방일까?....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 내려진 처방을 따라보지 않는다면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조차 없으니 의심의 물음표를 접어두고 다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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