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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Oct 29. 2020

당신의 이웃

김고래가 만난 이웃들의 이야기



1. 빌라와 아파트에서 살았던 경험 

층간 소음을 받아들이는 방식


오늘은 지난 회차에서 질문드린 "현재 거주하는 지역을 어떻게 설명하고 싶나요?"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서울시 **구에서 26년을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중 이사 경험은 딱 한 번으로 19년을 빌라에서 살다가 7년 전에 현재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로 옮겨왔지요.


처음 살 게 된 곳은 단독 주택과 빌라가 섞인 좁은 골목이었습니다. 빌라에 살 당시에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만나는 이웃들에게 항상 인사도 하고, 짧은 근황 알리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웠는데요. 이로 인해 맨 꼭대기 층부터 지하까지 어떤 이웃이 살고 있고 근황이 어떠한지 알기 쉬웠습니다. 


이 당시에는 이웃 간에 층간 소음을 단순히 집에서 개인의 온전한 시간을 방해받는 불편하고 짜증 나는 요소로 치부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웃들의 근황을 얻는 정보로써 인식하고 웬만하면 서로 참고 배려해 주었는데요. 추측하건대 특별히 빌라 관리인이 없던 곳에서 아버지가 빌라의 소소한 문제들을 점검하고 관리하시면서 이웃들 간의 의견을 잘 조율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지의 직업은 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장입니다. 직업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웃에게 관심이 많은 편이신데요. 이런 성향으로 인해 같은 빌라에 사는 이웃을 구조한 경험도 있습니다. 그 당시 빌라 1층에는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주 집 문을 열고 쑥뜸을 뜨시기도 하고, 가끔은 선물 받은 곶감을 저에게 주셨었는데요. 어느 날은 식사하면서 아버지께서 1층 할아버지가 어느 순간부터 모습이 안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단순하게 어디 여행을 가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를 아버지는 심각하게 고민하시더니, 결국 119를 불러 할아버지 집 창문을 뜯고 들어가셨죠. 실제로 할아버지가 욕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갈비뼈가 부러져 3일 이상 욕실 바닥에 누워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발견하고 급하게 병원으로 옮겼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지요.


이 외에도 이웃 간의 관심과 애정이 있었던 빌라 골목에서 성장하면서 저 또한 많은 배려를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러던 중 빌라 골목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진 언덕 위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사는 아파트는 확실히 빌라보다 몇 층의 누가 사는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 이사 온 지 3년 정도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웃이라고 생각되어 누구에게나 먼저 인사를 했습니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 반응은 흠칫 놀라거나 당황해하는 경우가 많아 인사를 하고 혼자 멋쩍은 적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같은 동에 누가 사는지는 전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종종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거나 뛰는 소리로 몇 층에 어린아이들이 사는지 추측만 할 뿐이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녁 9시~9시 반 사이에 삼십 분 정도 피아노 소리가 꾸준히 들렸습니다. 굉장히 엉망인 피아노 소리가 거슬리긴 했는데 이전에 살던 곳에서의 서로를 배려하던 경험이 기억나서, 몇 달간 가만히 피아노 소리를 감상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엉망이던 피아노가 몇 달 후에는 일취월장해서 훌륭하게 한 곡을 완주하게 되었는데요. 저는 이때 제 방에서 작게 손뼉을 쳤지요.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지개와 벚꽃이 아름다운 **장애인 복지관



2. 이웃을 받아들이는 태도 

혐오 시설을 구분 짓는 경계


현재 사는 아파트를 얻을 당시 부동산 중개인 아주머니께서 '혐오 시설'이 밀집된 곳이라고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알고 보니 아파트 양옆으로 **병원과 ** 장애인 복지관이 있기 때문인데요. **병원은 50년대에 국가에서 지정한 수도권에 유일한 결핵 환자 전문 병원이었습니다.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서 다양한 병을 진료하는 기관으로 전환되었지요. 이로 인해 과거에는 전국의 치료를 해야 하는 가난한 결핵 환자들이 병원 주변(현재 거주하는 아파트 부근)으로 임시 거처를 짓고 모여 살 게 되었는데요.


현재는 이 주거촌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3분 거리에서 7년을 거주하는 동안 결핵이 옮았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데요. 그런데도 아직도 혐오 시설로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반면 ** 장애인 복지관은 지적 장애인들을 위한 교육기관과 기타 시설이 함께 연결된 곳인데요. 아마도 이런 시설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혐오 시설로 비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언덕 아래서 산 시간이 훨씬 길긴 하지만 중학교가 ** 장애인 복지관과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이 당시에 지적 장애인 친구들과 합반 수업을 했었고, 길을 오고 갈 때 워낙 낙 흔하게 마주쳤지요. 이들은 그냥 저의 평범한 이웃이고, 저한테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풍경입니다. 


예전에 어떤 분이 지적 장애가 있는 동생을 데리고 커피숍에 갔다가 같은 층에 있는 손님들의 컴플레인을 받고 카페에서 쫓겨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동생이 너무 시끄러워서 다른 손님들과 같이 있을 수 없다는 이유였는데요. 


물론 사람에 따라서 경우가 달라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7년 동안 2분 거리에 장애인 시설 근처에서 살면서 인근 장애인 시설에서 시끄러웠던 경우보다, 아파트 거주민들이 술 먹고 시끄러웠던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오히려 장애인 분들이 내는 소리는 아주 일시적이었지요. 


조심스럽게 추측하건대 지적 장애인들과 어우러져 살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낯섦을 불편함으로만 인지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구에서 제가 사는 동네에서는 이 지역(동) 자체를 혐오 시설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적 장애인이 낯설지도 않지요. 그러나 저도 작년에 일시적으로 시각장애인 활동 보조인 일을 하면서 이들과 함께 생활해본 경험이 적어 당황하고 불편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또한 동행인을 보조하는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이 시각장애인에게 대하는 행동과 불편한 시선들을 기억하고 있지요. 


만약 서로 다른 삶 간에 더 많은 마주침과 작은 대화의 기회가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개인의 삶을 단순히 아파트 부동산값이나 장애의 유무로 판단하지 않고 이웃으로서 인정하게 되는 시작이 되지 않을까 싶었지요.


이런 의미에서 이번 메일에서 함께 나누고픈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번 주는 토요일 정도에 생활공간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가 올라올 예정입니다. 답변을 보내주고 싶으신 분들은 SNS 또는 이메일을 통해 보내주세요.


그럼 다들 무탈하고 평온한 한주 되시길 바랍니다. 


김고래 드림.


*이 이야기는 제가 운영 중인 PROJECT_ON_ZONE의 지난 이메일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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