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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Nov 01. 2020

이웃이 되는 과정

김고래의 이웃들

김고래의 단골 카페


제 취미는 동네 마실입니다. 산책하면서 주기적으로 동네에 어떤 가게가 사라지고 새로 문을 열었는지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유독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공간은 카페와 펍입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있어서 커피는 물이고, 맥주는 요구르트 스무디이기 때문이지요. 특히 커피의 경우 원두를 대량으로 구매하지 않고 신선한 원두를 1주일 단위로 구매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를 발견하면 꼭 아메리카노를 마셔보려고 하는 편이고, 한 카페만 가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는 것 좋아합니다. 


이런 루틴으로 인해 제 동네 이웃들은 주로 카페를 운영하시는 사장님입니다. 제가 이들과 단순히 무언갈 구매하러 가는 손님이 아니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얼굴을 비추는 이웃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요. 


가장 큰 요인은 규칙적이고 충분한 대화 시간인 것 같습니다. 저와 이웃이 된 카페 사장님들은 공통으로 최소 3년 정도의 시간을 나눈 사이입니다. 그리고 이들과 음료 주문 이외에 사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는 데 걸린 시간을 되짚어 보면 대략 1년 이상이 걸렸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넉살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특정 목적이 있는 게 아니면, 사장님들께 먼저 말을 걸지 않습니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러 가면 커피만 정확하게 마시고, 나오는데요. (심지어 저는 물 종류를 빨리 마십니다.) 


가게가 중간에 사라지거나, 커피 맛이 바뀌지 않는 이상은 규칙적으로 이런 행동을 1년 이상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항상 커피를 다 마시면, 커피를 맛있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한다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갑니다. 이 과정이 충분히 이루어졌을 때, 상대방 측에서 먼저 저에게 사적인 대화를 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제가 긴 시간 동안 상대방의 공간을 드나들면서 낯선 이에서 익숙한 사람으로 전환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오랫동안 매장을 방문했다고 해서, 상대방과 저의 관계가 이웃이 되는 건 아녔습니다. 


표면적인 짧은 대화를 지속해서 유지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대화 코드가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사적인 대화로 넘어갈 수 있었지요. 그리고 정말 이웃이 되면, 오랜만에 방문해도 어제 만난 사이처럼 안부를 묻고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거나, 전화해도 긴장하거나 어색하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와 올해로 알고 지낸 지 4년 정도 되는 동네 카페 사장님과의 관계를 예로 들 수 있는데요. 


서로의 관계는 처음엔 손님으로 방문을 했다가, 우연한 기회에 사장님이 제 작업의 모델이 되어주셨습니다.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카페는 실제 집에서 멀지는 않지만, 중간에 엄청 높은 언덕이 있어 자주 방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점이 많았던 제 작업에 함께 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이웃으로서의 안부를 묻고자, 매년 명절이나 신년에는 꼭 찾아뵙고 덕담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자주 찾아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제가 했던 사소한 이야기들을 잊지 않고 되물어 봐주는 대화에서 항상 따뜻함과 감사함을 느끼곤 하지요. 


또한 이번 PROJECT_ON_ZONE에서 나올 작업 중에 은평구라는 지역과 제 작업을 향으로 함께 연상시킬 수 있는 커피 드립백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이 드립백은 저의 오랜 이웃인 카페 사장님께서 함께 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단골을 만들고자 하는 사장님들의 노력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들과 나눴던 수많은 대화와 시간은 저에게 있어서는 일상이자, 은평구를 떠나게 되었을 때도 이 지역을 기억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7월 초부터 보내드린 '생활공간 시리즈'의 메일들의 주 내용은  '지역성은 무엇이며, 한국이라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 간의 연결 지점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풀어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메일 초반에 굉장히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관점에서 '지역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는데요. 비로소 오늘로 총 5번의 메일을 보내드리면서 이 부분에 대해 정리가 되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서로 다른 삶을 연결하는 것은 '지역, 지역성'과 같은 정리되기 어려운 말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가고자 하는 '대화'에서 출발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이후에 은평구를 벗어나게 되더라도 은평구를 기억하게 되는 연결 지점은 이웃과 나눴던 '대화'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이런 의미에서 오늘의 질문은 "당신은 낯선 이와의 첫 대화를 어떻게 시작하나요?"입니다.     



오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생활공간 시리즈"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올해 3/20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담은 작업을 11/4 오후 2시 텀블벅을 통해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펀딩을 통해 공개되는 작업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올라올 예정이고, 아래 링크로 들어가시면 펀딩 사전 알람 신청이 가능합니다. 


https://stib.ee/oJc2



7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비하인드 스토리로 찾아뵐게요! 



김고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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