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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GOING HOME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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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Oct 14. 2022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질문하다.

비우기 시리즈 1.


혹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영화 보셨나요?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70999


이름만 들어 보셨을 수 도 있고, 이 영화의 원작인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 에세이 《글리》를 통해 접하신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야기 초반에 주인공인 리즈 [줄리아 로버츠]가 보이지 않는 신에게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그녀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31살의 저널리스트이자, 맨해튼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고, 번듯하고 다정해 보이는 남편과 살고 있었는데요. 남들이 보기엔 부러워할 법한 안정적인 조건을 갖춘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남편과 함께 잠든 침실에서 혼자 걸어 나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보이지 않는 신에게 묻습니다. 


자신의 삶이 전혀 행복하지가 않다. 어떻게 하면 좋냐?라고 말이죠. 


그때 신기하게도 그녀의 목소리로 신은 응답 합니다. 


침대로 돌아가 리즈


그 대답에 따라 침대로 돌아가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하면서, 기존과는 다른 그녀의 삶이 여정이 시작됩니다. 



이 영화를 빗대어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불과 1년 전 번아웃에서 공황장애 전 단계로 넘어가기 직전의 저의 상황과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번아웃이 오기 직전인 2021년 1월에 저는 특정 소속이 아닌 독립된 개인 작가로서 시작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프로젝트 온존]이라는 장기 작업을 막 끝마친 상황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2020년에 시작해 거의 1년 가까이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의 응원과 지지, 그리고 도움을 받았는데요. 



지금에서야 이렇게 많은 응원과 지지를 받았다고 느끼는 거지, 그 당시의 저의 상태는 굉장히 불만족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원하는 만큼에 성과가 안 나온 실패한 프로젝트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1차는 크라우드 펀딩, 2차는 전시로 진행이 되었는데요. 일단 저는 작가로 활동 전 대략 4년간 수치에 굉장히 민감한 직종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보니, 수치=성과라는 개념이 굉장히 강했고, 개인으로 독립해서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저를 알리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세상에 저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정말 강했고, 잘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 예상과 달리 일단 1차는 기대했던 만큼보다 저조했고, 2차는 그 당시 코로나가 막 터져서 관공서들이 강제 셧다운을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하필 관공서에서 진행을 하던 제 전시는 저의 부모님도 모시지 못하고 종료되어 버렸습니다. 



또한 제가 열심히 진행한 첫 프로젝트가 예술 문화재 단측에서 공식적인 예술인 활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면서 예술인 보증제도 안에 들지 못하게 됩니다. 



이때 저는 제가 열심히 한 결과물 자체가 세상에 제대로 빛도 못 보고 종료됐다고 생각해서 억울했고, 꽤 오랜 기간 심사를 기다린 재단 측의 불합격 통보를 받으면서 작가로서의 제 존재가 부정당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만회하고자 더 열심히 더 노력해서 세상에 제 가치를 입증받고 싶은 열의가 가득한 상태였는데요. 그래서 책도 더 많이 읽고, 세상 돌아가는 트렌드도 열심히 쫒으면서 다른 문화재단 공모 사업에 도전해하기 위해 제안서도 열심히 썼습니다. 



그런데 몸은 제 마음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은 2020년 11월부터 제 몸의 이상한 변화를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 일이 많고, 바쁜 사람이기 때문에 이 변화를 애써 무시했었습니다. 



그 결과 2021년이 시작하자마자 일상의 기초적인 생활들이 하나씩 불가능해졌습니다.



뭐 예를 들자면, 우선 밤마다 왼쪽 다리부터 시작해서 머리까지 한쪽만 열이 너무 나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너무 더운가 싶어서 보일러도 한겨울에 끄고 잤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이 되면 다리부터 왼쪽 얼굴이 열감이 느껴지고, 시간이 지나니 왼쪽 얼굴 껍데기가 벗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외에도 평소 자전거를 18킬로를 한 번에 타던 제가 반절도 못 타기 시작하고 갑자기 길바닥에서 토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기초 체온이 조절이 안되거나, 심장이 갑자기 하루 종일 너무 뛰어서 계속 흥분 상태로 있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어야 하는 그런 생활들이 지속되었습니다. 



이때 당시를 회상해 보면, 제 몸과 마음이 거의 3월이 될 때까지 큰 싸움을 하며 저항을 하다가 결국 더 열심히 해야 하고, 성과를 내야 한다고 조급해하는 제 마음이 졌습니다. 몸의 기본 생활이 거의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맡았는데, 제가 가진 증상들이 외과적인 문제는 (여성 호르몬 이상 및 기타 이상 증상) 있으나 이 근본 원인이 검사를 담당한 자신들의 과에는 없다는 의사들의 진단을 받게 됩니다. 이때 저는 몇 주간 병원의 다양한 과에서 이리 굴려지고 저리 굴려지고 결국엔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뭐 이런 진단만 받고 집에 돌아오게 되는데요. 



정말 내가 아프다는데 원인은 자기네 담당이 아니라고 하니 제 입장에서는 진이 빠지고 절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20대 내내 근육통이나 신경통이 평소 많았던 제가 애용하던 한의원에 가게 됩니다. 이때 더 큰 다른 대학병원으로 가지고 않고, 한의원에 갔던 이유는 그곳에 일단 가면 외과적인 증상은 어떻게 못해도 제가 아프다는 말에 대해 무책임하게 저를 내쫓지는 않기 때문이었는데요. 일종의 마음의 위로라도 받고 침이나 한번 맞을까 해서 가게 됩니다. 


우선 원장님은 제가 평소 과호흡이 있긴 했는데,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공황장애 전 단계인 상태라고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긴 기간 동안 제 몸을 돌봐주시면서 발견하게 된 공통 패턴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바로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으면 몸이 전체적으로 오른쪽으로 다 틀어지는 증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게 하도 몇 년째 반복되다 보니 문득 드신 생각이 왜 문제아들이 세상이 마음에 안 들어서 불만을 삐뚤어진 방향으로 표출하듯이 제 몸도 세상에 대한 불만을 삐뚤어져가면서 표출하는 것 같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처음엔 그 말이 좀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그다음 원장님의 대답에 조금 벙 쪘습니다.

 


이렇게 몸이 반복적인 신호를 긴 기간 동안 보낼 때는 외적인 부분이 아니라 내적인 부분, 즉 내 깊은 무의식 안에 무언가가 반복적인 행동을 하게 만드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평소엔 침과 한약에 대해서만 말씀하시던 분이 갑자기 저에게 이런 질문들을 쏟아내셨는데요.




** 파란색이 한의원 원장님 질문, 검은색이 제 답변입니다. 


"최근 가장 두려운 게 뭔가요?"


"음... 제가 금전적으로 안정된 상태가 아니라서 부모님을 부양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요."


"근데 부모님 어디 아프시거나 빚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저희 부모님은 건강하고 빚이 없으십니다.


"그러면 적어도 고래님 보다는 더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황인 건데 왜 아프지도 않은 부모님을 걱정하나요?"


"그러게요. 왜 걱정을 하게 된 건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언제부터 이런 걱정과 불안이 엄습했나요? 계기가 있나요?"


"외할머니가 긴 투병생활을 하고 돌아가시게 된 1년 전부터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부모님이 건강할 때 내가 더 사회에 인정받고 자리를 잡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기도 했고, 부모님이 아플 때 외할머니에게 한 것처럼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풍족하게 대해드리고 싶었던 거 같아요."


"근데 그 두려움이 정말 가족들이 원인이었을까요?" 


"그냥 듣기엔 솔직하게 나 명예 좋아하고 사회에서 인정받고 돈 많이 벌고 싶다고 말할 수 도 있는 건데, 지금 고래님 말에는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하네요."


"이럴 경우 스스로의 무의식 안을 더 깊게 들여다보세요. 제가 침을 놓고 약을 짓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대략 이런 대화를 한의원 종료될 때까지 한 시간 넘게 하고 저는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한의원에서 이런 대화를 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요. 그날 저는 31살 먹고 난생처음으로 제 자신에게 질문을 하게 됩니다. 



"고래야, 무엇이 그렇게 화가 났어? 무슨 이유 때문에 이렇게 몸이 틀어질 때까지 화를 내고 있는 거야?" 



저는 기존엔 남이 하는 질문에 답변을 한 적이 있어도 제가 제 자신에게 질문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개념 자체를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을 할 때도 뭔 기대를 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누군지는 몰라도 정확히 제 목소리로 답변을 듣게 됩니다. 



"네가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보호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이 답변을 듣고 굉장히 당황했던 것보다, 갑자기 엄청난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습니다. 내가 그동안 내 몸이 그렇게 화가 나서 틀어지고, 결국엔 일상생활도 못했던 이유가 31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제 자신을 외부 상황으로부터 보호해야 하거나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니... 


정확히 어떤 감정이 그날 들었는지는 너무 복잡해서 지금도 글로 정리할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 자신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는 사실에 너무 미안했습니다. 



이게 30년 동안 외부에 초점을 맞춰 방황하던 제 자신이 비로소 처음으로 내면으로 시선을 맞춘 첫 순간이었습니다. 




***혹시 긴긴밤, 잠 못 드실 때 제 이야기가 생각나 신다면, 아래 영상 에세이 버전도 준비되어 있으니, 언제든 편하게 들어주세요. 항상 무탈하고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https://youtu.be/vsAMhfdmx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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