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기 시리즈 2.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중학교 때부터였던 것 같은데요. 주로 제가 감당하기 힘든 큰 이슈가 있었을 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해가 뜨면 뭔가 이상한 안도감을 느끼며 잠들곤 했었습니다.
또는 잠을 자도 악몽을 꿔서 중간에 깨서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요.
하지만 그 당시에 저는 별로 잠을 못 자는 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불면이 매일 반복되는 게 아니라 불규칙적이었기 때문인데요. 굳이 패턴을 따지자면, 겨울에서 봄이 시작되기 직전인 12월~2월 사이에 좀 더 심했던 것 같습니다.
굉장히 오래전부터 수면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제 주변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다들 크고 작은 수면장애를 가지고 살다 보니 별로 큰 문제로 인식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20년 12월부터 2021년 거의 3월 직전까지 정말 매일 밤 불면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냥 잠만 안 왔으면 모르겠는데, 눈을 감아도 머릿속에서는 온갖 잡생각과 불안 걱정이 가득했기에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이 머릿속 잡생각을 전환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만지며 온갖 불필요한 동영상이나 남들 사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다가 해가 뜨는 것이 비로소 보이면 마음이 안정되어 그제야 잠을 잤습니다.
처음엔 스마트폰을 붙잡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제 머릿속 소음을 끄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일시적이었고, 나중엔 그냥 어두운 방 안에 혼자 있는 게 너무 무서워서 방에 불을 밤새 켜 두곤 했습니다.
이런 생활이 매일 몇 개월간 지속되다 보니, 낮에 깨어서도 정신이 맑지 않았습니다. 또한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감 때문에 방 밖으로 나가질 않고 최대한 웅크리고 침대와 한 몸처럼 누워 있었는데요. 그때 당시 저는 잠을 잔 게 아니라 끊임없는 잡생각에 시달렸고, 주로 했던 생각들은 크게 아래와 같습니다.
거의 뫼비우스 띠처럼 자기 자책과 세상에 대한 원망이 제 머릿속에서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때 당시에 제가 스마트폰을 붙들고 하루에도 몇십 번씩 들락날락하면 검색하던 콘텐츠는 주로 사주와 타로였는데요.
거의 뭐 연간 운세, 월간 운세, 주간 운세, 오늘의 운세 등등 다양한 콘텐츠를 봤고, 심지어 같은 주제더라도 다양한 역술인 및 타로 마스터들의 채널에 들어가 여러 가지 해석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당시에만 사주 & 타로 콘텐츠를 보았던 건 아니고, 과거에도 이런 콘텐츠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처음으로 타로나 사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약간 저의 TMI를 풀어보자면, 저는 집안이 가톨릭이고, 성당은 안 나가지만 모태 신앙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는 어렸을 적부터 주변에 워낙 다양한 믿음을 가진 분들( 무당, 민속학자, 가톨릭을 제외한 다양한 종교들)이 많았는데요.
이렇게 다양한 믿음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본 저에 대해 흘러가듯이 이야기한 적은 있었지만 한 번도 그들의 말에 마음이 흔들린 적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이 엄청나게 강하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걸 감당하겠다는 태도가 있었기에 그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첫 직장생활의 과정 중에 저 자신에게 큰 리스크를 입힌 사건을 겪게 됩니다. 이 사건은 굉장히 오랫동안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고, 동시에 저의 선택에 대한 결괏값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큰 공포감을 느끼게 했는데요. 이를 계기로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믿음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이때 의지할 곳이 없을 때 우연히 접하게 된 타로가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부모님 몰래 타로도 전문적으로 잠깐 배우기도 했었는데요. 20대 중 후반 내내 자신을 믿지 못하는 불안한 마음을 타로에 많이 의존하고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금에서야 삶에서 20대 때 일어났던 일들이 결국엔 제가 무언갈 배워가고 자격을 갖추는 과정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지만, 그 상황을 겪고 있던 과거에 저에겐 직장생활이 거의 도박 같았습니다.
항상 하이리스크 하이 리턴인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종사하던 업종 자체가 워낙 오가는 액수 단위가 크고, 주변 환경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아 급변하는 것에 비해 제가 소속된 회사와 제 포지션이 항상 불안정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저 자신의 성과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나와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도 영향이 큰 선택의 순간에 놓일 때가 많았는데요.
이러한 환경적인 조건 때문에 처음엔 타로를 통해 사업 운이나 프로젝트 성공운에 대해서 주로 질문을 했습니다. 다행히도 제가 이런 쪽 리딩을 잘하는 편이라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타로는 질문자의 질문 이외의 상황은 알 수 없는 매체적 특성들에 대해 그 당시엔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 노력이나 성패와는 무관한 감히 상상도 못 하는 변수들로 인해 회사가 망하거나, 제가 맡은 일에서 손을 떼야하는 상황들이 반복적으로 20대 내내 일어났습니다.
아직 세상을 여유를 가지고 볼 시야가 부족했던 저에겐 그 불확실한 상황에 영향을 받는 것이 너무나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저 자신을 운이 없는 사람이라 여기며, 점점 자신감이 없어져 위축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사업 운만 물어보다가, 점차 제가 정말 일상에 소소한 것들 뭐 코트를 남색을 살까 브라운을 살까도 타로에 물어보는 집착의 수준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다행히도 29살이 끝나가던 해에 정신을 차려 가지고 있던 타로들을 모두 찢어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저 자신이 이 매체를 다루기엔 삶에 대한 연륜과 여유가 부족해서 집착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오랜 습관은 다시 삶이 안 풀리기 시작하자 또 2020년부터 튀어나오게 됩니다. 제가 가진 타로를 모두 찢어버리다 보니 볼 수 있는 게 없어서 남의 채널에 들어가 여러 가지 내용을 기웃거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냥 그 말이 맞고 안 맞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드러내지 못한 불안한 마음에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한마디라도 듣고자 들락날락했던 것입니다.
불안에서 기인한 제 습관을 매일 밤잠이 안 올 때마다 반복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떤 사주 어플에서 앞으로의 저의 삶이 더 하락세이고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제 인생에서 가장 상승세였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주 리딩을 듣게 됩니다.
그때 저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버립니다.
앞날이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으로 살던 사람한테, 앞으로 더 앞날이 험할 거라는 말 자체가 너무나 큰 막말로 느껴졌고, 동시에 앞날이 더 나을 게 아니면 그냥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 말이 충격이었는지 몸이 정말 죽을 것같이 아팠는데요.
한동안 실의에 빠져 무기력하게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순간 마음속에서 분노가 울컥하면서 튀어나오면서, 머릿속에서 문득 생각이 스쳐 갑니다.
실제로 남이 운영하는 타로 채널에 들어가도 어느 정도는 저도 지식이 있기 때문에 남의 리딩을 다 받아들인 게 아니라, 제 식으로 걸러서 들었었는데요. 그런데 사주는 제가 아예 읽을 줄을 모르다 보니 내 인생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말만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맞는지 아닌지 낱낱이 반박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사주를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굉장히 긴 시간 동안 두려움에 떨며, 제대로 앞으로 보지 못하다가 비로소 자신의 힘으로 제 인생을 읽어보기로 결심한 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뒤에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글을 읽는 당신이 지칠까 봐 오늘은 여기까지 끊고 싶네요!
아! 그리고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댓글이나, 아래 메일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rallabiz@gmail.com
저는 당신이 하는 이야기가 정말 소중하고, 저와 같은 고민이나 상황을 겪고 계신 거라면 이 어두운 시기를 당신이 혼자 외롭게 겪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주에 뒷이야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무탈하시고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김고래 드림.
* 이 이야기는 영상 에세이 형태로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긴긴밤 잠이 안 올 때 제 글이 생각나신다면, 언제든 편하게 찾아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