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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GOING HOME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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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Mar 24. 2023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다.

채우기 시리즈 10.

엄청난 용기를 내 시작했던, 불면증과 관련된 프로젝트가, 미궁으로 빠져 골머리를 앓고 있던 무렵,


저는 두 번째 장기 수업 제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번 수업은 기존에 아이들에게 제가 지도하던, 기업가 정신 수업과는 조금 다른 맥락의 수업이었는데요.



왜냐하면,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보다 더 쉽게 지속가능한 경제 활동에 대해 인지 시킬 수 있을까?"를 목표로 하는 수업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흔히들 언급되는 ESG 경영과도 맥락이 맞닿는 수업인데요.


경제활동이, 단순히 소비하고, 생산되는 영역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제품이 노동자의 손에서 생산되어, 소비되고, 폐기되는 전 과정을 아이들에게 인지시키고,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생산과 소비, 노동 폐기의 전 과정을 보다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지를 직접 프로젝트를 통해 구현하는 수업이었지요.


어떻게 보면, 성인들도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못한 생산, 소비, 노동, 폐기의 이 순환 구조를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수업을 너무너무 진행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드디어, 제가 과거 현업에서 일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을 누군가에게 생생하게 전달해 줄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기존에 패션, 그러니까 생산 제조업에서 4년간 일할 당시, 이 이야기를 꺼낼 기회가 아예 없었어요. 좀 더 솔직하게는 퇴사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문제를 인지조차 못했지요.



왜냐하면, 저 또한 그 산업의 하나의 부속품에 불과했거든요.



마치 하나의 기계의 부속품들이, 스스로가 스스로를 부속품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저는 패션 산업 내에서 일어나는 노동, 생산, 소비, 폐기와 관련된 모든 문제들이 마치 원래 그랬던 것 마냥,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 제일 중요했던 건,  “빨리, 빨리” 였어요.



"어떻게 하면, 더 빨리 고객에게 적절한 시기에 내 제품을 전달하고, 홍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단기간에 재고를 더 빨리 소진시키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까?"


와 같이, 오로지 기업의 생존을, 그리고 나 자신의 안위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겉으로 보기엔 허울 좋아 보이는 브랜드도 이 “빨리빨리”라는 시장 흐름에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금방 부도가 났습니다. 개인적으로, 웬만한 생산 제조 분야의 중소기업 규모의 브랜드들 입장에서, 특히 패션은 위험 리스크를 관리하기 쉽지 않은 분야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현업에 종사할 당시, 저는 이 높은 위험 리스크와, “빨리, 빨리”라는 이 흐름에 맞추기 위해 항상 초긴장 상태였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돈 이외에 이 산업을 구성하고 있던 생산 -노동-소비-폐기의 과정에 대해 인지조차 못했지요.



사실 조금 눈치는 채고 있었어도, 살아남기 위해 흐린 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29살이 끝나갈 무렵,



제가 다니던 나름 대외적으로 인지도가 있던 기업이, 위험 리스크 관리에 실패하면서, 희망퇴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냥 말이 희망퇴직이었던 거지, 구조조정을 당한 거지요.


하나의 부속품이었던 제가, 이 일을 계기로 비로소 이 산업의 굴레에서 떨어져 나오게 되자,


비로소 저는 제가 그동안 무슨 짓을 하고 살았는지 그제야 인지하게 됩니다.



제가 그동안 생존이라는 명목하에 했던 일들은, 제품을 생산하는 노동자를,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나 자신을 마치 일회용품을 쓰고 버리듯, 소비하고, 소진시키는 행동이었던 겁니다.



그 굴레 안에는 사람이 없었어요. 환경은 당연히 더더욱 없었지요.


이 사실을 더욱 체화하게 된 건, 제가 2020년 그러니까 번아웃이 걸리기 직전에 진행했던 개인 창작 프로젝트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프로젝트 과정에서, 원단 재직부터, 공장 사장님들과 직접 소통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하던 일이긴 했지만, 제품 기획과 생산 영역이 워낙 대규모 인원으로 움직이는 작업들이다 보니, 제가 직접 생산 관리를 했다기 보단, 중간 관리업체를 끼고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러다 보니, 이 생산작업을 하는 작업자들과 깊게 대화할 일이 전혀 없었던 겁니다. 저에게 그들은 항상, 납기일을 제때제때 못 맞추고, 생산 사고를 치는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존재들이었을 뿐이었어요.



그런데 그들과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오랜 시간에 걸쳐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된 겁니다.


그동안 그들이 도대체 왜, 항상 빈번히 생산 사고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는지를 말이지요.



굉장히 단순하고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충분한 시간을 주고, 그에 합당한 보수를 주면, 사실 생산 사고는 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전쟁과 같은 국제 정세나, 코로나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환경 이슈들도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워낙 한국의 생산 작업자 분들의 기술력이 상향 평준화 되어 있다 보니, 너무나 단순하고 이 기본적인 조건을 맞춰만 준다면, 누구나 고퀄리티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 단순하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그때 당시에 나는 왜 몰랐을까?"라고 되짚어보면,


저는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시간당 계산되는 돈으로만 봤던 거지요.


이런 인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냥 그 산업 내의 생산 작업자를 대하는 태도와 그 처우가 열악한 분위이었어요.


흔히들 하는 말이 뭐였냐면, 작업자는 부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 대표들도, 제 선배들도 하나같이 작업자는 부려야 한다고 했어요.


말이 이상하지 않나요? 무슨 노예도 아니고,


하지만 한국 패션 산업 내, 사실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패션 산업 내 생산제조 노동자들을 대하는 처우는 비슷했습니다.


웃기게도, 이런 말을 뱉는 사람들 특히 겉보기엔 화려해 보이는 패션 산업 종사자들도, 특별히 더 나은 대우를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전에 제가 대학 졸업 직전에 저에게 교수님이 하신 말이 있었습니다.



패션 영역은 모두가 자기 별인 줄 알고 들어오지만, 사실은 불을 보고 뛰어드는 불나방이라고. 자신의 몸이 타들어가는 지도 모르고 사람들이 뛰어든다고.



그리고 심지어 자신의 신념, 정체성, 이런 걸 가지고 그 산업 내에 들어오려면 살아남기가 어렵다고,


이건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하나의 기계 마냥, 실제로 고강고 노동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임금과 작업자에 대한 처우를 가지고 있는 한국 패션 산업의 환경으로 인해, 수많은 장인이라 불릴 만한 수준의 생산 작업자와 디자이너들이 그 일을 포기하거나, 좀 더 나은 대우를 해주는 해외로 인력이 유출되었지요.


오로지 이 “빨리빨리”라는 흐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소진시키고 소모품화 하는 문화가 이 산업 내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 보니, 이 안에 속해 있을 당시엔 제가 하는 행동 자체를 객관화해서 보기 어려웠어요.


그러다, 산업의 굴레에서 벗어나, 그렇게 이해할 수 없었던 작업자들과 제가 구현하고 싶어 하는 작업을 함께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이렇게 소모되면서 살아도 되는 거냐고."



우리는 사람이었지만, 상호 간의 대화가 부족했어요.


그리고 더 나아가 스스로와의 대화가 부족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너무나 스스로를 깊게 반성했고, 이 일을 하는 노동자, 아니 제 옷을 만들어주시고, 원단을 재직해 주신 장인 분들께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스스로 깨닫고 나자, 저 자신이 너무나 창피해졌습니다.


물론, 작업자들을 존중하고 대우하며 브랜드를 운영하는 분들도 많지만, 일단 저는 제가 기존해 해 왔던 그 태도가 스스로 너무나 부끄러워서, 더 이상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다만, 저는 과거 이 무지했던 과정들을 언젠간 꼭 한번 제대로 정리해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우연한 기회로, 내가 정말 체화해서 알아차린 과정들을, 아이들에게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저에겐 너무나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리가 멀고, 심지어 제가 담당해야 하는 아이들이 수능이 100일 조금 더 남은 고3임에도 불구하고, 조건 따윈 신경도 안 쓰고, 그 수업 제안을 수락해 버립니다. 그리곤 신이 나서 수업 교안에 제 경험들을 열심히 업데이트하기 시작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항상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 한 주도 무탈하고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김고래 드림.



지금 발행하고 있는 채우기 시리즈의 앞전 이야기인 "비우기 시리즈"를 최근부터 영상 에세이 형태로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혹시 긴긴밤 제 이야기가 생각나신다면, 언제든 편하게 들러주세요.



https://youtu.be/fAGf7TOxMAU



혹시 오늘의 이야기에 언급된 저의 지난 프로젝트가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https://url.kr/l8yh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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