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기 시리즈 9.
2022년 8월, 저는 본격적으로 불면증을 겪고 있거나, 겪어본 경험이 있는, 20대~30대 후반의 성인남녀들을 심층 인터뷰하기 시작했습니다.
각기 너무나 다양한 이유들로, 불면을 겪고 있었지만,
예를 들면,
과거 창업 스터디 모임에서 만나게 됐던 20대 초반의 인터뷰 참여자들의 경우, 그들은 학창 시절 내내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한국 이공계 계열에서 인정하는 유명 대학을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입학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져, 1, 2학년 시기에 대부분의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줄 줄 알았던 전공과목도, 실제 기대했던 것에 비해 특별한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한동안 심한 방황과 우울감에 시달리다, 결국 대안으로 창업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지요.
또 제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연히 알게 되었던 이제 막 20대 후반에서 30대로 넘어간 이들은, 그동안 한 직장에서 안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회사 내부 상황이 급변하면서 기존에 자신이 하던 일 이외에 회사에서 기대하는 새로운 포지션의 과업들이 마구 쏟아졌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근본적의 회의감과, 압박감이 들면서 불면증과 우울감을 겪으며,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었지요.
이외에도, 평생 자신의 곁을 지켜줄 것 같았던 사랑하는 연인 또는 가족과의 갑작스러운 이별로 인해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몇 년째 힘들어하는 경우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진학을 했거나, 조직이나, 가정 내에서 사회적 포지션 변동이 있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과 같이, 생애주기에 따른 환경적 요인이 있기도 했었고,
안정적으로 다니던 직장을 갑자기 이직해야 하거나, 실업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었고,
코로나와 같이 불가항력적인 급격한 환경 변화로 인해, 기존에 익숙했던 공동체나 일하던 방식의 급격한 변화를 겪는 경우에도 과부하 상태가 발생했지요.
이외에도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거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등 급격한 계절 변화가 있을 때도 사람들이 불면이나, 우울감에 시달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들을 세부적으로(년도와 일자, 연령대, 성별, 카테고리별) 분석해 주는 네이버 데이터 랩에서는, 주로 불면증이나, 우울증, 번아웃이라는 키워드가, 연말, 연초에 전 연령대에서 검색량이 급증했고, 특히 10대~20대 사이에서는 신학기나, 방학이 끝난 개강 시즌에 주로 검색량이 증가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급격한 환경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인터뷰 참여자들의 하루일과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반복 패턴들이 있었는데요.
예를 들어보자면, 과도한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퇴근 후 혼술이든, 여러 사람들과 모여 음주하든, 최소 주 2~3회 정도 반복적으로 했던 사람들은, 취침을 하면, 중간에 되려 깨거나, 깊은 숙면에 들지 못하는 경우들이 자주 목격되었고,
꼭 술이 아니더라도, 불안하고, 우울해서 잠이 오지 않을 때, 담배를 피우는 경우나, 스마트폰에 들어가 의미 없는 동영상이나 SNS를 끊임없이 드나들기도 했지요.
뭐 이외에도 하루 중 낮시간대에는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취침 전 취미를 명목으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다던지 하는 행동들도 마저도 되려 과부하 된 몸을 각성시켜, 불면의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공부든, 사업 아이템이든, 운동이 든 간에 하루일과가, 스스로가 설정한 과업을 중심으로 움직이다 보니,
만약 본인이 설정한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 일이 끝날 때까지 잠을 자지 않았고, 나중엔 이게 습관이 되어 불면증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실제로 2020년 코로나가 막 터지던 초반에 10대, 20대 사이에서 [갓생]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요.
이 [갓생]이라는 키워드는 급격한 환경 변화로 인해 느끼는 무기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루에 목표치로 설정한 공부를 완수하거나, 운동한 기록을 공유하는 자기 계발 문화인데요. 제가 추측하기론, 특히 학교라는 관에 속해 있는 학생들, 즉 통제된 안정적인 집단생활을 하던 사람들일수록, 이렇게 불가항력적인 환경 변화로 인해 개인이 고립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심한 무기력, 우울, 번아웃을 겪었을 것으로 예상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네이버 데이터랩에서도 코로나가 막 터졌던, 2020년에 번아웃 키워드 검색량이 10대, 20대 연령대에서 급증했는데요.
동일 기간에 [갓생]이라는 키워드 또한 2020년~2021년은 10대, 20대에서 급증하다가, 점차 30대 40대로 키워드 검색량이 연도 별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지요.
이런 패턴을 통해, 번아웃과 무기력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10대들의 문화가, 이후 30,40대 층에게도 공유가 된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원래도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인데, 코로나가 터진 첫해에, 10대~20대 초반의 자살률이 증가했습니다. 이때 1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남성들의 자살률이 전년도에 비해 증가한 걸 확인할 수 있었어는데요.
처음엔 이런 증가폭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모르겠었습니다.
그런데, 남중, 남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후 30대 초반의 남성들을 인터뷰하면서 알게 된 사실을 통해 유추해 보자면,
우선, 여성에 비해 남성들이 통제된 환경에 상대적으로 더 익숙해하는 경향이 있었는데요.
흔희 아홉수라 불리는, 청소년에서 성인, 또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시기의 생애주기적인 환경 변화와, 코로나라는 불가항력적인 이슈가 함께 겹치면서,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선택을 하게 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정말 심각하게 느낀 문제는, 이런 증상을 겪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저처럼 몸의 기초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 수준, 그러니까 죽기 직전까지의 상황에 다다르지 않으면, 인지조차도 못한다는 겁니다.
주변에 부모님 친구, 동료, 상사들 모두 대부분이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불면증을 달고 살고 있고, 다들 한 번쯤은 정신과나 심리 상담을 받아본 경험들이 있다 보니, 잠에 들지 못하고, 우울해하고, 번아웃에 한 번쯤을 걸려보는 이 상황 자체가 한국에서는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던 겁니다.
되려 이런 문제들에 대해 도움을 청하거나,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나약한 사람 취급을 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보니, 가까운이 들에게 조차도 자신의 어려움을 꺼내기 어려워하는 모습들을 보게 되었지요.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 닥친 이런 급격한 환경 변화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스스로의 삶에서 통제할 수 있는 영역들을 다들 넓히고자 애쓰고 있었던 겁니다.
저와는 정말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었지만, 저는 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는 돈이 있으면, 안정적인 직장이 있으면, 성공하면 삶이 안정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 참여자들 중에는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안정적인 직장이나, 한국에서 인정하는 높은 학위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고,
심지어, 지금 당장 돈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금전적으로도 누가 봐도 여유로운 상황에 있던 사람들 마저도 똑같이 끊임없이 삶의 안정감을 갈구했지요.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물질적인 요소를 배제할 수는 없는 건 맞지만, 그게 개인의 삶에 안정감을 되찾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는 걸 자각하게 됩니다.
마치 번아웃 직전의 저의 모습을 보는 듯한, 그들의 상황에 너무나 공감했지만, 동시에 깊은 무기력감에 빠졌습니다.
사회 제도를 바꿔야 하나? 사람들에게 마음 챙김 요가나 명상 클래스를 공유해야 하나? 등등 생각만 많아졌고, 나중엔 제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문제를 건드린 게 아닌가 싶어 고민만 깊어졌지요.
심지어 인터뷰를 진행하던 동안에도, 저조차도 스스로의 삶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인해 몇 번이고, 새벽에 깨어나곤 했는데, 과연 누가 누굴 돕는가 싶어서 한동안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꿈속에서 외출을 나갔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제가 살던 빌라 위층에 큰 불이 난 겁니다.
우리 집은 다행히 안 탔지만, 이로 인해 건물 외벽 한쪽 측면의 뼈대가 다 드러날 정도로 심하게 손상되어, 이미 그 집은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어버렸지요.
저는 다 타버린 집을 뒤로 한채, 무작정 길을 떠납니다.
한참을 걷던 중 어떤 숲 앞에 다다르게 되는데요.
그 숲은 다 타버린 우리 집 마냥, 숲 전체가 재로 둘러싸여 있었고, 어떠한 생명체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어두운 숲길이 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엄청나게 거대한 생명체가 제 앞을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겁니다.
마치 외국 판타지 영화에 나올법한, 어두운 잿빛에 붉은 눈을 한 용이었는데, 그 크고 무서운 용은 다행히 저를 못 보고 순식간에 지나가버렸습니다.
순간 놀라긴 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기에 그저 다시 앞으로 나아갔지요.
잿빛의 숲을 지나 겨우 겨우 어떤 마을에 다다르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마을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저에게 몰려들어, 도대체 그 숲을 어떻게 지나왔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알고 보니, 그 숲은 무서운 붉은 눈을 한 용이 살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생명체도 살아서 그 숲을 나온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 길을 아무렇지 않게 걸어 나오니, 사람들이 그 비법을 묻고자 몰려들었던 겁니다.
저는 정말 아무것도 한 게 없었어요. 그저 앞으로 보고 걸었을 뿐이었고, 그리고 저는 이런 일로 주목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 마을에 있는 성당에서 그 숲을 지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저를 성인으로 추앙하기 시작합니다.
이로 인해 제가 마을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다녔는데요. 그래서 밥도 편히 먹지 못하게 되어 버립니다. 저는 이 상황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결국, 마을 외곽,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어느 외딴 작은 학교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취직해, 숨어 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수업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자, 복도에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작은 물고기들이 바닥에 패대기 쳐져 있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그 작은 존재들을 주워 들어, 얼른 물가로 보내주려고 했는데요.
마침 학교 안에 작은 인공연못이 있어 그 안에 물고기를 풀어주자마자, 갑자기 어디선가 낯선이 가 튀어나와 이렇게 묻는 겁니다.
저는 꿈에서 깨어서도 어안이 벙벙했어요.
일단,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는 사람이 저에게 난 물고기도 아닌데, “왜 작은 물안에 갇혀 있냐고”라고 물은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갔지요.
가뜩이나, 마음이 심란해서 잠이 안 오는데, 꿈까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소리를 하니 혼란스러워서, 한동한 멍하니 그저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불면증을 겪는 사람들을 돕고자 인터뷰를 시작했지만, 정작 나 자신도 불면증을 겪고 있는 그 아이러니하고 혼란스러운 여름이 끝나갈 무렵, 저는 두 번째 장기 수업을 나가게 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항상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 한 주도 무탈하고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김고래 드림.
지금 발행하고 있는 채우기 시리즈의 앞전 이야기인 "비우기 시리즈"를 최근부터 영상 에세이 형태로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혹시 긴긴밤 제 이야기가 생각나신다면, 언제든 편하게 들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