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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GOING HOME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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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Mar 03. 2023

자기 의심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다.

채우기 시리즈 7.

중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기업가 정신 수업을 첫 장기 프로젝트의 형태로 두 달간 지도하게 되면서,



저는 아이들이 스스로 주변 친구들의 어려움을 돕고자 선택했던 [청소년 불면증과 우울증]이라는 주제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게 됩니다.



아이들의 열정에 저 또한 자극을 받아, 이 주제를 개인 사업의 첫 탐구 과제로 삼고 싶다는 욕구가 내면 깊숙한 곳에서 끊임없이 올라왔었지요.



하지만, 이런 마음과 동시에 “과연 내가 이 주제를 다룰 자격이 있는가?”라는 자기 의심이 함께 올라왔는데요.



왜냐하면 그 당시 저는 "전문가 병"에 걸려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병은 이름 그대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애쓰는 병입니다.



20대의 저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우물만 깊게 파야 그 분야에서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고, 그 일을 다룰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직장 생활을 할 당시에는, 한 분야에 특정 포지션에 오래 있어야, 전문가라고 인정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주를 이루었는데요.



그래서 저도 이 사회가 인정하는 전문가라는 틀 안에 들어가고자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실제 제 직장 생활은 사회에서 인정하는 전문가라는 틀에는 전혀 부합하지 않았어요.



일단 이직이 굉장히 잦았습니다.



여러 외부적인 조건 때문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 제 삶에서 주어졌던 문제들에 보다 더 나은 해결 방안을 찾고자, 스스로 이직을 선택했었던 것도 있었습니다.  


사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정 포지션이나, 한 분야에만 국한된 관점이 아니라, 다양한 위치에서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문제를 바라보아야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데요.


이 사실을 그 당시에 저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포지션 이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다만, 사회에서 바라보는 전문가라는 틀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성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해왔던 문제 해결 과정들이 인정받지 못하는 경험을 반복해서 겪게 되는데요.


어느 순간부터는 저도 모르게 한 우물을 깊게 파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자격 지심이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심지어 직군이 아예 달라진 30대가 되어서도, 이 병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요.



그러다 보니, 기존에 해오던 분야와 너무나 갭이 큰 신경 정신분야에서 주로 다룰법한, [불면증과 우울]이라는 주제를 스스로 다룰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의심이 올라왔던 겁니다.



이런 저와는 달리, 아이들은 저보다 경험과 지식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래 친구들이 겪는 어려움을 돕고자, 자신들의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굉장히 다양한 해결책들을 끊임없이 실행해 보고, 수정하기를 무한 반복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제 안에도 희미하지만, 점차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아이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수업을 앞둔, 전날 밤.




저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 생생한 꿈을 꾸게 됩니다.




꿈에서는 이미 1년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이모부 할아버지가 등장하셨습니다.



살아계셨을 당시, 무당이나, 스님은 아니지만, 외가 쪽에서는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깊으셨던 이모부 할아버지께서 외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거라는 예언을 하십니다.



이 말을 듣고, 저를 포함한 일가친척들은 애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다 같이 엉엉 울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집안의 큰 어르신이었던 이모부 할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모두 외할머니의 장례를 준비하기 시작하는데요.



그런데 특이하게도 영정사진을 찍는데, 친척들이 외할머니의 얼굴을 고운 새 신부 마냥 화장을 해주고, 실제 옷도 한복이 아니라  웨딩드레스를 입히는 겁니다.



모든 준비를 갖춘 외할머니가, 비로소 영정 사진을 찍자, 그 준비를 함께 도운 저와 친인척들을 정말 그 모습을 보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지요.



처음엔 슬퍼서 울었는데, 나중엔 제 내면 깊은 곳에서 시원함이 느껴질 정도로 소리 내어 펑펑 울게 되었습니다.



저는 현실에서도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는데요.



그런데 꿈에서 이렇게 속이 뻥 뚫릴 때까지, 그러니까 마치 아주 오래된 무언가가 빠져나가 시원해 짐을 느낄 때까지 엉엉 울다 보니, 꿈에서 깨고 나서도 이 느낌을 한동안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저는 이 낯설고 생소한 감정이 순간 무서워서, 불안해졌습니다. 처음엔 악몽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이 불안하고 낯선 감정을 외면하고자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에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제가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자마자 첫 번째로 본 게시글은



“용기를 내”라는 문구였습니다.



그 문구 아래는 이런 설명이 함께 덧 붙어 있었지요.



용기는 실컷 울고,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이만하면 됐다"라고 말할 때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출처: 숨 앤 품 심리통합상담센터 "몸의 기도" 중 일부]



저는 이 꿈이 준 메시지가 이제는 나 자신을 옭아매던 전문가 병에서 벗어나, 용기를 가지고 새롭게 도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어요.



그렇게 저는 기존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가슴 어딘가가 시원하게 뻥 뚫린 느낌을 가지고, 아이들의 마지막 수업을 하러 가게 됩니다.



기업가 정신 수업을 진행하던 초반에 담임 선생님께서는 굉장히 걱정하셨습니다.


중학교 1학년이다 보니, 이 수업 내용이 어려워서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 좀 수업 난이도를 낮춰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요.



하지만 이런 어른들의 우려와 달리, 아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자원 내에서 친구들을 도울 수 있는 현실적인 해결책들을 발표했습니다.



청소년 불면증을 다루던 친구들은 처음엔 중학교 1학년에게도 의대를 가야 한다며 과도한 입시열을 부추기는 교육제도와 학부모들을 상대로 캠페인을 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할 수 록 자신들의 목소리가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거라는 현실을 자각하게 되는데요.



그러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불면증과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친구들의 심층 인터뷰 진행하게 됩니다.



사실 이 과정에서 인터뷰에 응했던 친구들은, 부모님이 자신들을 학원에 덜 보낼 거라는 기대 자체를 아예 하지도 않았고 합니다.



대신 그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건, 그냥 하루에 단 한 시간이라도, 온전히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라는 거였지요. 또한 학원을 굳이 안 간다고 해도, 다른 일로도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소중한 시간을 방해받지 않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친구들의 말에 힌트를 얻어, 프로젝트의 방향을 단 한 시간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는 키트를 만들게 됩니다. 이 키트에는, 자신의 방 앞에 자신만의 시간을 방해하지 말라는 팻말과 동시에, 집중을 도와주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향이 담긴 스프레이형 퍼퓸 또는 인센스틱을 구성했지요.



또한 청소년 우울증이라는 주제를 다뤘던 친구들은, 원래는 우울감이 깊은 상황에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음악을 작곡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작곡이 너무 어려워서 대신 이미 있는 곡들을 모아 유튜브 플레이 리스트로 만들어 채널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지요.



저는 막연한 이상과, 거대 담론을 쫒느라 돈과 시간을 허비하는 어른들보다, 이렇게 현실적으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통해 친구들을 돕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엄청난 감명을 받게 되었어요.



그리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한조 한조마다 공개적으로 그 친구들이 잘한 점을 칭찬해 주고 인정해 주었지요.



이렇게 두 달간 지속된 장기 수업을 마무리하고, 교실을 나서는데, 한 친구가 저를 따라 나왔습니다.



이 친구는 처음 수업을 시작할 당시, 제 예상보다 훨씬 키가 크고 똑똑해서, 저도 모르게 이 아이 앞에만 서면 과하게 긴장을 했었는데요.



이 친구가 자신의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건데, 자신도 저와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정말 감사했다고.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저는 순간 눈물이 울컥했어요.


하지만 아이 앞에서 울 수가 없어서 꾹 참고,



나도 너의 그 용기 있게 도전하고 실행하는 모습을 통해 큰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아이들이 보여준 용기 덕분에, 저 또한 스스로를 의심하고 자기 검열하는 마음들이 어느새 녹아내리고 있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리곤 내가 좀 부족하더라도 세상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해볼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는 용기가, 깊은 내면에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사실 저는 이 글을 쓰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대체 언제부터 스스로가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도대체 누가 이런 신념을 저에게 자연스럽게 주입했는지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다, 철학 인문학 분야에서 통찰력 있는 글을 쓰는 걸로 유명한 "채사장"이라는 작가님이 쓰신 [열한 계단]이라는 책에서 이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그 내용을 아래와 같이 공유해 드립니다.



그 이유는 현대 자본주의 특성, 즉 산업화에서 찾을 수 있다. 산업화의 본질은 기계화와 분업이다. 특히 분업은 노동의 형태를 변화시켰다.

산업화 이전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전체적으로 조합한다. 농사를 짓거나 구두를 만들거나 베를 짜서 웃을 만들었다. 노동에 결과품은 노동의 주체를 소외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산업화된 환경에서 노동의 결과물은 노동자를 소외시킨다. 현대사회의 노동자는 일의 전체적인 전망을 가질 필요가 없다. 대신 세분화된 특정 분야에 숙달되어 있으면 충분하다.

효율성 때문이다. 노동의 주체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한 분야에 특화된 '전문가'가 필요한 이유는 생산량의 극대화 때문이다. 각 분야의 노동자가 자신의 업무를 전문적으로 반복할 때, 사회의 전체 이익은 증대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명의 개인에게 전문성을 요구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영혼을 고려해서가 아니다. 효율성과 전체 생산량 증대. 이것 때문이다.

-채사장저 [열한 계단 "다섯 번째 계단 과학" 중 일부]





항상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 한 주도 무탈하고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김고래 드림.



지금 발행하고 있는 채우기 시리즈의 앞전 이야기인 "비우기 시리즈"를 최근부터 영상 에세이 형태로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혹시 긴긴밤 제 이야기가 생각나신다면, 언제든 편하게 들러주세요.



https://youtu.be/Xzx36eZQWDc





이야기 마무리에 언급된 채사장님의 열한 계단이라는 책이 더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http://www.yes24.com/Product/Goods/3351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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