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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GOING HOME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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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Feb 17. 2023

낯선 길로 들어서다.

채우기 시리즈 5.

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교육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가끔씩 주변에서, 제가 일단 말을 시작하면, 끊기지 않고 자신감 있게 술술 말하는 편이다 보니,


내용이 맞든 틀리든 간에 뭔가 전문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경향이 있다고, 그 모습이 꼭 선생님 같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를 떠나서, 저는 제 자신이 누군갈 가르칠 수준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나 자체도 아직 인간이 덜된 미숙한 존재인데, 누가 누굴 가르치나 싶었던 거지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큰 계기는, 우연한 기회로 서울에서 공동육아로 역사가 깊은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1년간 보조 교사로 활동하면서부터였습니다.


그때 당시에 저는 이제 막 대학교를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20대 초반이었고, 이 일을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초등학교 아이들 정도는 거뜬히 케어할 수 있을 거라는 근자감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러나 그로부터 1년 뒤에 저는 깨닫게 됩니다.



사실 나는 성인이 아니라, 그냥 덩치가 큰 아이였다는 걸 말이지요.



워낙 연륜이 깊은 선생님들 사이에서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육이라는 일 자체에 그 책임과 무게감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면서, 사람이 굉장히 겸손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도 교육일을 감히 해야겠다고 생각도 못했었지요.




그런데, 정말 인생은 알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나 자신에게 무엇을 할 때 가장 기쁨과 환희를 느끼냐고 질문한 그 순간부터, 그리고 누구와 이 기쁨과 환희를 나누었을 때 함께 즐거울 수 있을 것 같냐고  스스로에게 질문한 순간부터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이, 아이들에게 그동안 현장에서 온몸으로 체화해서 습득한 노하우를 공유하는 교육일이 될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 했지요.



그리고 이런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교육 과정이 있는지는 더더욱 몰랐습니다.



제가 진행하는 수업의 공식 명칭은 “기업가 정신”이라는 과목입니다. 이 수업은 이름만 들으면 모두가 마치 기업인이 되어야 할 것 같고, 창업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오해를 많이 사곤 하는데요. 저도 처음에 그렇게 느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이들이 일상 속에서 겪는 문제들을 주체성을 가지고 다양한 방법들을 적용해 보며 해결해 나가게 돕는 수업입니다.


이 수업은 미국 명문 대학들이 대학교 1학년에게 필수 이수 과목으로 가르치기도 하고, 한국에서도 현재 몇몇 대학의 경영학과 과정 중에 창업 교육의 형태로 포함이 되어 있는 과정인데요.



그런데 이제 이 대학 과정에 있던 이 과목들이 점점 더 어린 중고등학교 친구들에게 까지 확장되는 이유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견해는 더 이상 어느 누구도,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확실한 전망을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너무나 사회가 급변하기도 했고, 특히 코로나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이슈들을 겪으면서, 기존에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일자리, 또는 직업적 안정성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확답을 해 줄 수가 없었던 거지요.



어떻게 보면 점점 답이 불명확한 사회로 넘어가고 있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교육 제도권 안에서 저는 이 수업이, 대안 교육의 형태로 느껴졌습니다.


정답을 맞히는 걸 중시했던, 기존 교육 과정과는 달리, 이 기업가 정신은 아이들에게 정답은 없으며, 답을 맞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현재 시점에 대한 명확한 문제 정의와, 그에 따른 질문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상황이 급변하면, 답 또한 함께 계속 계속 바뀔 거니, 그 안에서 스스로가 그 문제를 명확하게 직시하고, 어떻게 해야 현실적으로 주어진 자원을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스스로 던질 수 있게 돕는 훈련을 시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교육과정에서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포인트가 아이들에게 많이 실패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는 점입니다.



제가 초, 중, 고, 대 심지어 직장생활을 4년을 하면서도 한 번도 누군가에게 "실패해도 괜찮다. 실수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실수하지 마. 실패하지 마.”


“언제까지 다음에 더 잘한다는 말을 할 건데?”


“결과로 증명해! “


라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자랐다 보니, 기본 마인드가 어느샌가 저도 모르게 완변주의가 되어버렸지요.


애초에 완벽할 수 없는 제 삶을 완벽하려고 그렇게 애를 그렇게 썼으니, 저는 항상 과긴장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 수업은 실수는 데이터를 쌓는 과정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으니 실패를 통해서 끊임없이 데이터를 축척하고 상황적 변화에 발 빠르게 맞춰 그에 맞는 솔루션을 그때그때 찾아내야 한다고 가르치지요.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기발한 아이디어는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막연해 보이고, 불확실해 보이는 문제 상황을 명확하게 직시하고, 두려움을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 과정 자체를 굉장히 중요하게 보는 수업인데요.


정말 수업 이름처럼,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적인 태도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업을 통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존재를 양성하는 게 우선이 아니라, [삶의 불확실성에 자신을 내맡기고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는 삶의 태도를 가르치는 수업]이라고, 개인적으로 정의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비록 저는 이때 당시까지만 해도 한 번도 누구 앞에서 뭘 제대로 가르쳐 본 경험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이 교육과정을 잘 해낼 내적 자신감이 충만했습니다.



저의 그동안 과정 자체가 정말 이 기업가 정신이 없었으면, 지속될 수 없었던 상황들에 연속이었기 때문이지요.


모든 게 불확실하고 불안정했지만, 그 안에서 문제를 명확하게 바라보고 나아갔던 이 과정들을 아이들에게 정말 나누고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수업을 나가기 전부터도 이미 설레는 상태였지요. 현재까지도 수업을 가는 일은 제 삶에서 정말 가슴 뛰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되려 제가 무언갈 가르쳤다기보다, 아이들에게 더 귀한 배움과 조건 없는 사랑을 정말 많이 받게 되었지요. 진심으로 감사한 과정이었습니다.



다만,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당시에만 해도, 이걸 전업으로 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이 일을 함으로 인해 내 안에서 느껴지는 기쁨과 환희, 설렘이라는 감정이 너무 낯설었고,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동안의 제 삶은 항상 완벽하려고 애쓰느라 긴장과 불안에 더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당시엔 제가 창업을 해서 투자를 많이 받고, 성공한 사업체를 운영해야, 비로소 사회에서 말하는 독립된 존재로 비추어질 거라 착각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야 삶이 안정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면접을 볼때도, 이 수업을 연계해 주는 강의 에이젼시 측에 저는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이고, 그 과정에서 내가 가진 노하우를 공유할 뿐이니, 다른 수업은 하지 않겠다고 못 박아 두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아직은 뭔가 내 안의 아주 솔직한 목소리를 다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저는 설레면서도 반신반의 한 마음으로 첫 수업을 나가게 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그럼 다음 시간에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무탈하고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김고래 드림. 




지금 발행하고 있는 채우기 시리즈의 앞전 이야기인 "비우기 시리즈"를 최근부터 영상 에세이 형태로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혹시 긴긴밤 제 이야기가 생각나신다면, 언제든 편하게 들러주세요.


https://youtu.be/4M1QSETE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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