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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GOING HOME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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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Feb 25. 2023

첫 번째 실마리를 발견하다.

채우기 시리즈 6.


작년 2022년 상반기, 그러니까 제가 막 강사일을 시작하던 초반에 반복적으로 꾸는 꿈이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상황은 조금씩 달랐지만, 저는 항상 집에서 엄마랑 싸우고 있었어요. 


꿈에서 엄마가 저에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이러면서, 제 일에 자꾸 간섭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에게 크게 소리치고 화내며, 집을 박차고 나왔는데요. 


그리곤, 무작정 버스도 타고, 전철도 타고, 기차도 타면서 목적지는 불분명하지만, 끊임없이 어디론가 이동을 했습니다. 


이동하는 와중에도 속으로 분을 삭이지 못하고 혼자 씩씩거리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정신을 차리고 밖을 내다보면, 저는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정신이 팔려, 어느샌가 화가 났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했지요. 


실제 현실에서도 저는, 제가 태어나고, 30년간 익숙했던 서울을 벗어나, 전국에 있는 다양한 학교의 아이들을 만나러 가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설렘과 기쁨도 있었지만, 동시에 저는 이 시기에 심경이 너무 복잡했었요. 




2021년 11월에 퇴사를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내 일을 할 거야!”라고, 정말 밑도 끝도 없는 근자감으로 말을 일단 내뱉기는 했지만,



솔직히 이 당시에 저는 "스스로의 일을 한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창업을 할 것이냐, 취직을 할 것이냐”와 같이 고용인과 피고용인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갇혀 있었지요. 


그러다 보니 누군가 밑에 고용되어 일을 하는 건, 주체적으로 스스로의 일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을 했고, 당연히 내 일을 하려면, 창업해 반드시 대표가 되어야만 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이지요. 



시간이 좀 지나서, 아이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기 위해 공부를 하고, 함께 창업 관련 교육들을 들으면서, 자신의 삶에 주체성을 가지고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져야 하는 필수 3가지 조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조건들은 첫 번째 내가 좋아하는 일 (과정을 즐기는 일), 두 번째 잘하는 일, 세 번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인데요.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사업가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주체성을 가지고, 사회에 이로운 일들을 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3가지 조건이 필수라고 배웠습니다. 


어느 하나만 없어도 사회 속에서 주체적으로 자신의 일을 지속할 수 없다고 하는데요. 


다만 이 순서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이  가장 먼저라고 강조를 했지요. 


저는 이 “좋아하는 일”이라는 말을,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삶 자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이 워낙 많다 보니, 이 파도를 타는 것 같은 인생의 굴곡에서 이런 성공과 실패에 집착해 일희 일비하면,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지쳐서 그 일을 애초에 지속할 수가 없는 겁니다. 


특히 이 가장 마지막 세 번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에  너무 과하게 집착하게 되면, 결국 무언가 끊임없이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다리는 삶이 되거나, 이리저리 사회적 평가에 휘둘리는 눈치 보는 삶이 된다고 합니다. 


제가 번아웃으로 강제 휴식기를 가지기 직전까지만 해도, 제가 하는 일에는 이 첫 번째(과정을 즐기는 일) 조건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조건이었던, 잘하고, 세상이 원하는 일은 찾았지만, 


이 첫 번째가 없었기 때문에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에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버티지 못하고, 결국 하던 일을 지속할 수 없었던 겁니다. 


이 3가지 조건들을 해외에서는 “다르마” , 한국어로는 “소명”이라는 단어로도 그 의미를 사용하더라고요. 여기서 소명이라는 말의 어원은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다”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저는 아직은 사업계획서를 쓰기 위한 어떠한 주제에도, 내 안의 깊은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가 만들어둔 이분법적인 세계에 갇혀, 2022년 9월이 다 될 때까지 창업을 해야만 한다고, 나 자신을 몰아붙이며, 사업계획서를 쓰기 위해 정말 애를 썼습니다. 


정말 몇 개월간 막연하고, 두루뭉술한 이야기밖에 안 써졌던 사업계획서를 붙들고, 저는 또다시 끊임없이 자기 자책과 비난에 굴레에 빠져 있었지요. 



그러다, 5월 정도가 되자, 첫 장기 수업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저보다 경력이 훨씬 높은 선배 강사님들의 안내하에 특정 학교에 함께 출강해 수업을 하다가, 첫 장기 수업을 저 혼자만, 한 학교의 한 반에 나가게 된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학교 측과 의사소통하고, 몇 개월간 출강한다는 사실에 수업을 나가기 전부터 엄청나게 긴장 상태였지만,


제가 담당하는 친구들이 중학교 1학년이다 보니, 이제 막 초등학교에서 벗어난 작고 귀여운 아이들에게 수업을 할 생각에 설레었습니다. 



그러나, 첫 수업을 하러 반에 들어서자 저는 다시 엄청나게 긴장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일단 아이들이 제 생각보다, 엄청 컸어요. 



제 키가 168cm이고, 약간 굽이 있는 운동화를 자주 신는 편인데요. 그런데 그 반 아이들이 제 키를 훨씬 웃도는 친구들이 많았고, 아이들이 키만 컸던 게 아니라, 제가 예상했던 중학교 1학년들의 어휘력 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구사하는 굉장히 똑똑한 친구들이 몰려 있는 반이었습니다. 


심지어 수업을 할 때 항상 저랑 눈이 자주 마주치는 자리에 담임 선생님까지 함께 수업에 참관을 하시다 보니, 초반에 엄청 긴장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된 건, 장기 수업을 나가는 수많은 학교들이 보통 강사들에게 수업만 맡기고 자기 볼일을 보러 가는 선생님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첫 장기 수업을 나간 학교 선생님은 혹시나 아이들이 제 말을 안 들을까 봐, 저를 도와주시고자, 수업에 들어와 계셨던 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초보 강사라 그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선생님과 아이들의 포스에 눌려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지요. 


그래서 거의 수업 초반까지는 아이들이 항상 저에게 와서 먼저 인사하고 애정을 먼저 표현해 주는걸 제가 너무 과긴장 상태라 제대로 받아 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제 마음속에는 사업계획서 하나도 못 쓰고 있는 내가 이 수업을 할 자격이 있을까? 라며 자기 의심까지도 올라와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지요. 



그러다 초반에 이론 수업이 끝나가면서,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선택하는 실행의 단계로 수업이 넘어가게 되는데요. 



관심사를 기준으로, 아이들이 조를 구성하게 지도했고, 총 4개의 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스스로가 주변 일상에서 자주 겪는 문제점들을 찾게 시간을 주고, 이 문제점들 중에서 우리 조가 정말 이번 수업을 통해 꼭 해결해 보고 싶은 주제 하나를 정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4개 조중 2개 조가, 청소년 우울증과 불면증에 대해 선택을 합니다. 



우선 청소년 불면증을 프로젝트 주제로 선정한 조의 경우, 학업 성취도가 굉장히 높은 친구들끼리 모여 있는 조였는데요. 


이 조에는 수의사가 꿈인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수의대를 가기 위해 중학교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하교 후에 학원에 가서 거의 11시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그래서 집에 도착해서 씻고 나면 이미 하루가 끝나, 애초에 취침 시간이 늦어졌고, 이로 인해 학교에 오면 수면 부족으로 졸거나,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매일 이런 문제를 겪는 친구를 보고, 같은 조 아이들은 청소년 불면증의 원인이 과도한 학구열에 있다고 생각을 해, 그래서 이런 인식을 개선하는 캠페인 또는 제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반면, 청소년 우울증을 선택한 조의 경우, 이미 그 조에 매일 불면증과 알 수 없는 불안감 우울감을 느끼는 친구들이 많아서, 이 문제에 깊게 공감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인들과 같이  불면과 우울감에 시달리는 중학생들을 위한 심신 안정 음악을 만들어 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고 저에게 이야기해 주었지요. 



저는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한 프로젝트 주제를 보며, 깊은 내면에서 문득 의문이 올라왔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어린아이부터, 나이가 먹은 성인, 심지어 60세가 넘어가는 우리 부모님까지도 평생을 불면과 우울감에 시달려야 하지?"


“도대체 언제쯤 우리는 이 불안과 불면으로부터 편안해질 수 있을까?”



이 아이들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이 불면과 우울감이 성인이 되면서 생긴다고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 보다 더 개인이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일들이 많다 보니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는 질환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죠. 


그리고, 솔직히 질환이라는 인식 자체도 못했습니다. 


제 부모님, 언니 친구들 모두 가벼운 불면과 우울증을 가지고 살고 있었으니까요. 


나만 그런 게 아니었고, 다들 그렇게 사니까요. 



그런데, 저와 18살 차이가 나는 너무나 어린아이들이 나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일부가 아니라 꽤 다수가 그렇다는 사실에 너무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이후에도 다른 장기 수업을 나가는 다양학 학교의 여러 학년에서도 꼭 한 팀정도는 [불면과 우울, 번아웃]과 관련된 주제를 언급하는 걸 발견하게 되면서, 이건 단순히 이 학교 이 반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제 안의 깊은 곳에서 내가 이 불면증과 관련된 문제를 심도 있게 관찰하고 탐구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오게 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그럼 다음 시간에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무탈하고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김고래 드림. 




지금 발행하고 있는 채우기 시리즈의 앞전 이야기인 "비우기 시리즈"를 최근부터 영상 에세이 형태로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혹시 긴긴밤 제 이야기가 생각나신다면, 언제든 편하게 들러주세요.


https://youtu.be/6NCfFZ5QqK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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