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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GOING HOME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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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Feb 10. 2023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일을 선택하다.

채우기 시리즈 4.

저는 2022년 4월부터 현재까지 전국에 있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관찰하고,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가게 돕는 프리랜서 강사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패션 잡화 분야에서 제품 기획과 브랜드 관련 일을 하던 제가, 갑자기 뜬금없이 이 일을 선택하게 된 건, 이제는 더 이상 과정이 즐겁지 않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내 안의 깊은 무의식에서 더 이상 과정을 즐길 수 없는 일을 거부했어요. 




예전에 누군가 저에게 해주었던 " 즐기면서 하는 사람이 진정한 일류!"라는 말을 저는 기억합니다. 



지금에 와서 이 말의 의미가, 결과를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그 행위 자체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기쁨과 환희를 의미한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 이 말을 들었을 땐, 즐기면서 한다는 말 자체가 굉장히 이기적인 행동으로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뭔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기 싫은걸 안 하는 약간 무책임하고 신뢰가 안 가는 행동으로 비쳤기 때문입니다. 




저는 번아웃에 걸리기 직전까지만 해도, 모든 건,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결과가 먼저 있어야,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그 이후에 그걸 통해서 즐거움과 뿌듯함이 함께 따라온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좋은 결과, 그러니까 대외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정도의 성취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저는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어요.



특히, 과거 제가 일한 분야에서 만들어내야 하는 매출액 단위가 커지면, 커질수록 일을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압박감이 정말 심했던 거 같습니다. 이걸 내가 잘못 기획하면, 피해를 보는 액수와 그로 인해 주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두려움이 상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저는 일을 할 때는 초긴장 상태였어요. 여유라는 걸 찾아볼 수가 없었지요.



애초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싹을 잘라버리고, 조율하는데 너무 심혈을 기울이다 보니, 항상 저의 직장 생활은 과한 긴장과 애씀의 연속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보고 과거 직장 상사가, 저를 완벽주의라고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뜻을 이해를 잘 못했어요.



“왜? 내가 완벽하지 않은데, 부족한 게 이렇게 많은데, 나에게 완벽주의라는 말을 하지?”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저 자신의 그동안의 과정들을 회고하다가, 이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었지요. 




완벽주의는 완벽한 사람한테 완벽주의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은 부족하니, 완벽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사람들한테 쓰는 표현이었던 겁니다. 




나중엔 이런 태도가 점점 심해져서, 일하는 과정에서 저 자신을 가스라이팅까지 했었습니다.




작은 실수도, 팀으로 움직이는 어떤 일의 결과도, 모두 제가 부족해서 그렇게 됐다는 죄책감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심으면서 스스로를 통제하려고 압박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저 자신을 몰아붙이고, 압박하는 과정에서 대외적인 성과도 내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그때 당시엔 굉장히 뿌듯한 일이라고 착각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이게 더 큰 불행의 씨앗이었던 것 같습니다. 



애초에 이런 대외적인 성과 자체도 없었어야, 사람이 "아! 이 방법은 아닌가 보다" 하고 돌아갈 텐데,



우연히 얻게 된 성과로 인해, 저를 쥐어짜듯이 압박하고 애를 써야, 이렇게 대외적인 성과가 나온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중요한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몸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알게 된 사실은,



결과라는 게,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안 좋은 것도, 그렇다고 열심히 했다고 해서 좋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제가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는데, 그 당시엔 제가 노력하고, 애쓰면 결과를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과도한 긴장과 자책, 완벽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일했던 과정에서는 절대로 즐거움을 경험할 수가 없었던 거죠. 



그러다, 작년 연초에 제가 퇴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진정으로 남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일을 해보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



단지 익숙하고, 돈 버는 방법을 안다는 이유만으로, 과정이 불행했던 일로 사업을 하겠다고 하니,



너무나 당연하게도 제 몸과 마음이 이걸 기억하고,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크게 저항하며,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막았던 겁니다. 




이때 당시엔  제가 저 자신과 대화하는 방법을 잘 몰랐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런 몸적인 변화나, 내적인 갈등에 대해서 그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해, 속이 터지게 답답했었습니다. 



처음엔 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원인을 사업 자금이 없어서 그런 줄 착각했습니다. 



그런데 금세 이것도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다시 되물어 봅니다. 



그럼 얼마를 투자받으면 이 일을 할 거냐고.


10억? 20억? 30억?



그랬더니, 저는 이 답변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한테 갑자기 누가 100억을 투자해 준다고 해도, 저는 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이 방식으로는 절대로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제야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저 자신이 이 일을 떠나서, 그럼 그동안의 직장 생활을 하면서 무엇이 나를 가장 불행하게 만들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됩니다.


이때 질문이 행복했던 기억이 먼저가 아니라, 불행했던 기억부터 물어봤던 이유는 안타깝게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 과정에서 진심으로 행복했던 기억이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반대로 그럼 불행했던 게 언제 냐고 물어보게 된 거지요. 



그랬더니, 



저는 관찰을 통해 알고 깨달은 것들을, 조직이 겪고 있는 문제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공유하고 싶었는데,


여러 이권상의 문제로 인해, 외부로 공유할 수 없었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저한테는 너무 괴로운 일이었더라고요. 



그 당시에 제가 했던 일들이 단순 제품 기획측면에 머물렀다기보다는, 실질적으로 큰 액수의 자금을 운용하는 영역과 밀접하다 보니, 기업 구조 분석이나, 내부적으로 진행되는 컨설팅에 더 가까웠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가장 잘하는 게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하고, 그에 대해 실질적인 솔루션을 제안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는데요. 



다만,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가 제안한 솔루션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안 되고 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일 중요한 건,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마음이었어요. 



여러 풍파와 조직 내의 이권다툼으로 인해, 상호 간에 불신과 두려움이 커진 상황에서, 조직 구성원들에게 어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인사이트나, 솔루션을 제안하고 또 그걸 받아들이는 일은 사실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문제의 원인을 인정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구성원들이 되었을 때 이 이야기를 했어야 했던 거였지요. 


저는 이들의 마음을 먼저 돌보지 않고, 그냥 객관적인 상황의 경중을 우선시하며, 인사이트를 공유하려 했으니, 이게 굉장한 내부 저항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저는 이점을 정말 반성했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저는 깨닫게 됩니다. 



저는 수익을 내고 대외적인 성과를 내는 걸 즐거워했던 게 아니라,



제가 관찰하는 과정에서 알고 깨달은 것들을 그냥, 사람들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쓸 수 있게 공유하는 일에서 기쁨과 환희를 느낀다는 걸 말이지요. 



이 행위 자체가 저한테는 정말 저를 살아있게 만드는 일중에 하나였는데,



다만 제가 즐거운 일과, 이를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들로 인해 직장 생활이 불행했던 것이었죠. 




그래서 다시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럼 누구에게 내가 알고 깨달은 것들을 공유했을 때, 가장 도움이 될까?"



비록 과정은 정말 힘들었지만, 제가 이렇게 기업이라는 현실적인 이익집단내에서 어떤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고, 이걸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간,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긴 고민 끝에, 상대적으로 성인에 비해 아직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중시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제 노하우를 공유해 보기로 결심을 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저의 마음이 이렇게 설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 딱 맞는 일자리가 등장하게 됩니다.



바로 전국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업가 정신”이라는 수업을 진행할, 프리랜서 강사들을 모집하는 공고였는데요. 



이 기업가 정신이라는 건, 공교육이 가르치지 못한,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대안 교육의 형태로 현재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게 바로 제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도전하게 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저는 다음 주에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무탈하고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김고래 드림.



지금 발행하고 있는 채우기 시리즈의 앞전 이야기인 "비우기 시리즈"를 최근부터 영상 에세이 형태로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혹시 긴긴밤 제 이야기가 생각나신다면, 언제든 편하게 들러주세요.



[고잉홈 ep 6.] 어두운 숲길 앞에서 눈을 뜨다.


https://youtu.be/FBZytpy5l9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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