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기 시리즈 12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에 갑자기 빠지게 되면, 극심한 공포를 느껴 팔다리를 마구 버둥거린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발이 닫지 않는 그 깊은 물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면, 일단 온몸에 힘을 빼야 한다고 합니다.
팔다리에 힘을 빼고, 하늘을 향해 편히 누운 자세여야 자연스럽게 물 위로 떠오를 수 있다고 하는데요.
감히 예측도, 통제할 수도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이 제 삶에 마구 휘몰아치던 당시, 저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물에 빠져 팔다리를 마구 휘젓는 사람처럼, 온 힘을 다해,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애썼는데요.
결과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탈진이었습니다.
처음엔 엄청난 분노가 올라왔습니다.
어떻게든 수업을 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상황에 대해 학교 측에 항의도 해보고, 제 수업을 듣는 아이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 화도 내며, 이곳저곳에 제 울분을 마구 표출했는데요.
그러나 이 마저도 오래가지 못했어요.
이미 저는 오랜 시간 과하게 제 정신과 체력의 에너지를 소진시킨 상태였던지라, 집에 돌아오니, 심한 몸살이 났기 때문입니다.
밤새 끙끙 앓다가, 조금 정신이 들게 되자, 저는 비로소 인정하게 됩니다.
“아, 내가 애초에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고 애를 썼구나.”
“아무리 노력을 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거야.”
“엄한데 에너지를 썼네.”
그리곤, 도대체 왜? 내가 개입할 수 없는 이 상황 속에서 애를 썼나 곰곰이 되짚어 봤는데요.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으로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는 들을 수 없는 유익한 삶의 이야기들을 전해주는 멋진 외부 강사이자, 삶의 멘토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제 수업에서 이탈하거나 프로젝트 실행과정을 어려워할 때마다,
다른 강사라면, 더 쉽고 재밌게 진행했을 수 도 있었을 텐데,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 끊임없이 아이들의 눈치를 봤고,
나중엔 수업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전부 제 탓으로 돌리기까지 했던 것이었죠.
하지만, 타인의 기대나 평가, 그리고 현재 저에게 일어나는 휘몰아치는 이 상황이,
애초에 제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음을 인정하게 되자,
저는 이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
이로 인해 결과를 두려워하며 더 노력해야 한다며 저 자신을 몰아붙이던 마음을 비로소 내려놓게 됩니다.
그리곤, 이렇게 생각했어요.
라고 말이지요.
이렇게 결심을 하게 되자, 오히려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졌습니다.
뒤늦게 제 소식을 들은 제 주변 동료 강사들이나, 가족들이 저에게 괜찮냐고 물었습니다.
어떤 이는 제 상황에 저처럼 불같이 분노했지요.
하지만, 저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어요.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저 전부 바라보고 받아들이겠다고
그리고 지금 생각해 봤자, 내 몸과 마음만 아프니, 그때 가서 생각하겠다고
만약 학교 측에서 수업을 아이들이 정말 진행할 의지가 없다고 하면, 저는 그걸 그냥 받아들이고 인정하겠다고 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놓아버린다는 건,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더 이상 애쓰지 않고, 그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지요.
어차피 될 일은 될 테니, 미리 걱정하지 않는 마음 가짐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저를 괴롭히던 마음을 모두 내려놓은 상태로 저는 다시 아이들을 만나러 가게 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항상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 한 주도 무탈하고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김고래 드림.
지금 발행하고 있는 채우기 시리즈의 앞전 이야기인 "비우기 시리즈"를 최근부터 영상 에세이 형태로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혹시 긴긴밤 제 이야기가 생각나신다면, 언제든 편하게 들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