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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GOING HOME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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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Apr 15. 2023

두려움을 놓아주다.

채우기 시리즈 12

혹시 물에 빠져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에 갑자기 빠지게 되면, 극심한 공포를 느껴 팔다리를 마구 버둥거린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발이 닫지 않는 그 깊은 물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면, 일단 온몸에 힘을 빼야 한다고 합니다.


팔다리에 힘을 빼고, 하늘을 향해 편히 누운 자세여야 자연스럽게 물 위로 떠오를 수 있다고 하는데요.


감히 예측도, 통제할 수도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이 제 삶에 마구 휘몰아치던 당시, 저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물에 빠져 팔다리를 마구 휘젓는 사람처럼, 온 힘을 다해,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애썼는데요.


결과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탈진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외부 이슈로, 수업이 취소되던 날



처음엔 엄청난 분노가 올라왔습니다.



어떻게든 수업을 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상황에 대해 학교 측에 항의도 해보고, 제 수업을 듣는 아이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 화도 내며, 이곳저곳에 제 울분을 마구 표출했는데요.



그러나 이 마저도 오래가지 못했어요.



이미 저는 오랜 시간 과하게 제 정신과 체력의 에너지를 소진시킨 상태였던지라, 집에 돌아오니, 심한 몸살이 났기 때문입니다.


밤새 끙끙 앓다가, 조금 정신이 들게 되자, 저는 비로소 인정하게 됩니다.


“아, 내가 애초에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고 애를 썼구나.”


“아무리 노력을 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거야.”


“엄한데 에너지를 썼네.”



그리곤, 도대체 왜? 내가 개입할 수 없는 이 상황 속에서 애를 썼나 곰곰이 되짚어 봤는데요.



저는 수업을 진행하는 내내 결과가 너무 두려웠어요.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으로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는 들을 수 없는 유익한 삶의 이야기들을 전해주는 멋진 외부 강사이자, 삶의 멘토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제 수업에서 이탈하거나 프로젝트 실행과정을 어려워할 때마다,


다른 강사라면, 더 쉽고 재밌게 진행했을 수 도 있었을 텐데,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 끊임없이 아이들의 눈치를 봤고,


나중엔 수업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전부 제 탓으로 돌리기까지 했던 것이었죠.


하지만, 타인의 기대나 평가, 그리고 현재 저에게 일어나는 휘몰아치는 이 상황이,


애초에 제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음을 인정하게 되자,


저는 이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


이로 인해 결과를 두려워하며 더 노력해야 한다며 저 자신을 몰아붙이던 마음을 비로소 내려놓게 됩니다.


그리곤, 이렇게 생각했어요.



“좋은 선생님이 되지 못해도 상관없어.”


“더 이상, 아이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칠지 걱정하면서 전전긍긍하지 않을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당일에 가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거야. 그게 다야.”



라고 말이지요.


이렇게 결심을 하게 되자, 오히려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졌습니다.


뒤늦게 제 소식을 들은 제 주변 동료 강사들이나, 가족들이 저에게 괜찮냐고 물었습니다.


어떤 이는 제 상황에 저처럼 불같이 분노했지요.


하지만, 저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어요.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저 전부 바라보고 받아들이겠다고


그리고 지금 생각해 봤자, 내 몸과 마음만 아프니, 그때 가서 생각하겠다고


만약 학교 측에서 수업을 아이들이 정말 진행할 의지가 없다고 하면, 저는 그걸 그냥 받아들이고 인정하겠다고 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때 저는 처음으로 놓아버린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놓아버린다는 건,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더 이상 애쓰지 않고, 그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지요.


어차피 될 일은 될 테니, 미리 걱정하지 않는 마음 가짐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저를 괴롭히던 마음을 모두 내려놓은 상태로 저는 다시 아이들을 만나러 가게 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항상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 한 주도 무탈하고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김고래 드림.



지금 발행하고 있는 채우기 시리즈의 앞전 이야기인 "비우기 시리즈"를 최근부터 영상 에세이 형태로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혹시 긴긴밤 제 이야기가 생각나신다면, 언제든 편하게 들러주세요.


https://youtu.be/EDRe2cKxd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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