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타인을 받아들일 준비
제가 24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무용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평소 저는 춤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는데요. 아니, 더 정확하게는 춤을 춰본 적도 없고, 혹시나 뻣뻣한 몸이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 관심이 있어도 없는 척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못해본 점프나, 다리를 찢으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스스로의 모습을 종종 상상하곤 했죠. 그리고 현실의 나와는 다른 무용수들의 아름다운 몸을 동경했습니다.
학과 졸업작품이 끝나고 나니, 바빴던 일상에 약간의 여유가 생기게 되었는데요. 마침 소규모 무용단에서 진행하는 즉흥 무용 클래스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 클래스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었고, 저는 용기 내어 신청을 했습니다.
수업에서는 유연한 몸을 위한 스트레칭이나 특정 동작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가장 먼저 자신의 몸에 있는 관절, 뼈마디, 근육들이 섬세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는데요. 눈을 감고, 자신이 안정감을 느끼는 위치에 서서 차분히 음악에 맞춰 자신이 가진 몸의 연결, 그로 인해 만들어질 수 있는 다양한 공간들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후에는 2명이 짝을 지어 이 과정을 함께 했습니다. 한 명은 안내자의 관점에서 상대방이 혼자서 움직이고, 자신의 공간을 자각하는 과정이 낯설지 않게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몸에 특정 부위에 힘이 들어가지 않게 관찰해주죠.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사람은 눈을 감은 상태로, 자신의 몸을 관찰하는 이의 안내에 따라 몸 감각에 온전히 집중했습니다.
몇 주간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개인의 몸이 가진 공간에 대해 집중하는 시간을 충분히 거친 뒤 배운 것은, 타인과 함께 춤을 출 때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태도였습니다.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적게는 2명, 많게는 4명 정도 그룹을 지어 서로가 가진 공간을 탐색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요. 공동 작업에 있어서 몇 가지 주의해야 하는 사항이 있었습니다.
우선 혼자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자신의 몸이 가진 공간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몸동작을 끊임없이 바꿔가며 공간을 만들어줘야 했습니다.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동작이 완전히 마무리될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주어야 했습니다.
또한 상대방에게 몸을 기댈 경우 무리하게 올라가거나 체중을 싣지 않게 조절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내 감정이 신나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그걸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 의사를 존중해 주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몇 번에 걸친 연습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나서야,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던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즉흥 춤을 추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같은 음악을 듣고 있었지만, 누군가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힙합 리듬을 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우아한 발레를 연상시키는 동작을 하며 각자의 움직임을 가졌습니다. 누구도 서로가 다름에 대해 지적하지 않았고, 서로의 몸을 존중해주어 다치는 사람 없이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출 수 있었습니다.
저는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 아래 몸을 온전히 느꼈던 순간을 저의 20대를 통틀어 가장 따뜻했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난 이후에도 무용단에 계셨던 선생님들과 인연을 이어나가며, 꾸준히 제 몸이 가진 공간과 타인의 몸이 가진 공간에 대해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해 저는 옷을 만드는 일과 춤을 추는 일이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둘 다 사람의 신체가 가진 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일이고, 그 과정에는 충분한 대화와 존중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무용 연습실 밖을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종종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왜 우리의 삶은 춤을 출 때 배웠던, 서로의 삶이 가진 공간을 배려하고 존중하지 못할까?" 하고 말이지요.
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는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고, 이와 연계된 다양한 체험 상품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두”라는 단어만 해도 공공영역부터 일반 상업 영역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죠. 또한 패션 뷰티 업계에서는 “나다움, 바디 포지티브”라는 키워드가 등장해, 개인의 신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하는 움직임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와 반대로 현실에서는 NO ____ ZONE이나, ____ 충처럼 특정 집단이나 세대에 대한 혐오가 끊이질 않습니다. 이 문제들을 간단하게 개인이나 특청 계층만의 태도나 노력의 문제로 치부하기도 하고요.
또한 자신의 몸과 노화의 과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취지의 광고와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도 사회가 선호하는 이미지(동안 외모와, 굴곡진 S라인, 나이에 비해 잘 관리된 체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양성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아닌, 함께 춤을 출 때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작게는 개개인, 크게는 특정 세대나 집단이 살아온 특성들을 서로가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며 충분히 관찰하고, 인정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죠.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특정 이슈를 개인의 문제로만 규정짓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가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하에 구성원 간에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오늘의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번 메일은 따로 질문을 만들지 않고, 당신의 삶과 사회 문제에 관한 자유로운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이로써 총 5번의 걸친 몸 감각에 대한 이야기가 이번 메일로 마무리되었는데요. 이후에 두 번 정도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 소개하는 메일을 보내드리고자 합니다.
그럼, 언제든 괜찮으니 편하게 이야기 들려주세요.
김고래 드림.
*이 이야기는 제가 운영 중인 PROJECT_ON_ZONE의 지난 이메일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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