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픈북

by 아람

더이상 내 안에 있지도 않은 걸

흠이 나도록 박박 긁어 내주면서


내겐 엉망인 이것 뿐이라고,

엉망이야.

엄청 볼품없지?

스스로 잔뜩 깎아 내리며,

헤헤 웃는 사람


그 마음의 가치와 쓸모를 항아리 주인인 내가 아니라

받는 사람에게 맡겨 버리는 사람.


어때? 어떤 맛이었어? 얼마나 맛있었어?

투박하고 서툴러도 마음에 들고 싶었나봐


나를 상처줄까 입을 닫는 상대에게서

시킨 사람도 없는데 있는 대로 눈치를 보며

침묵에게서 번져온 상처를 굳이 사서 받아.


친절과 다정이 담긴 항아리를

구멍이 나도록 바닥까지 박박 긁어

있는 대로 다 퍼주고 나서야 새삼.


나는 내가 비워진 만큼,

꼭 아프고 만다는 걸 알면서

쳇바퀴 돌듯 계속 반복인 걸 보면

미련하기 짝이 없지.


그러니 영원토록 내 영혼은 허기질수밖에.


한두번도 아닌데

적당히 주던지

차라리 안 주고 말던지

상대 마음이야 내 알 바 아냐,

내가 언제 달랬나?

그렇게 뻔뻔히 모른 척 받기만 하던지.


난 셋 중 하나 그 무엇도 잘 안되더라.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배운적이 없는걸 무슨 수로 한담.


악에 받쳐 심술궂게 행동 하다가도

상처받았을 상대를 생각하면

괴롭힌 만큼 견딜 수 없이 괴롭던걸.


근데 내 마지막 한톨까지

싹싹 긁어 내주고 나면 말이지

차라리 주었으니 그걸로 됐다 정도만 하고

그걸로 기쁘면 될 일인데 그것도 못해.


아무리 궁리해도

내가 계산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그 이상을, 혹은 그만큼을

돌려받길 바라는 것 또한 아닌데


텅텅 비어버려 언제 채워질지도 모르는 걸

마지막까지 바닥을 싹싹 긁어서 줬다는 것,

그게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마음인지

그것만 알아주면 뛸 듯이 기쁠텐데


나는 뻔뻔하지도 못해서

이 노력을 비싼 값에 사달라고

생색은 커녕 아까워 하는 것 조차 못해.


그냥 먼저 알아주면 좋을텐데


지금이 아니더라도,

먼 훗날에

내가 알게 모르게 주었던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깨달아줬으면,

그렇게라도 날 기억했으면.

조용히 소원할 뿐인걸.


그땐 고마웠고,

미안했다며 사과하면,

그럼 난 그걸로 되었다,

되려 고맙다며 만족하는 얼굴로

그제서야 돌아서겠지.


근데 또 이 바보는.

상대가 마음을 한 움큼 퍼주면

탈이라도 날까 지레 겁 먹는 사람이야.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해서

나를 괴롭게 할 것이 두려우므로

다 팽개치고 옷장 속에 숨는 미련퉁이.


고작 그정도 인간밖에 안 되면서


당신은,

어차피 모두가 그러했듯

금세 사라질 게 뻔하니까

영원이 아니면 난 필요 없다고

양보하는 척,

그 만큼을 덜어낸 사람을 위하는 척

굳이 마다하고 애써 외면해.


근데 나도 안다?

이게 상대를 상처입히는 일이고

말도 안되는 시험에 빠트리는 일이라는거


근데 내 딴엔

예방주사 같은 걸 놓은 거라며

더 아프기 전에 차라리 잘됐다고 해.


여러모로 미안했어요.


이런 나를 보는 사람들은 나를 착하다고 해.

이 바보들아

착한게 아니라 미련하고 겁이 많은 거야.


어쨌든 마음 열고 다가온 상대한테

상처가 될 걸 저도 알면서

어쩌면 제일 잘 알면서.

무자비하게 휘둘러 버리잖아

겁을 줘서 멀리멀리 내쫓아 버리잖아.


오랜 시간을 기다리다 팔이 아파오는 상대가

기껏 어렵게 내민 손을 거둬 버리면,

괜찮아. 어차피 이럴 줄 알았다며

바닥이나 득득 긁는 처량함이라니


나였어도 역하겠다

나같아도 질리겠어





아람|writing from the undertow.

© Written and drawn by Aram.thewave,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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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the artist’s heart. please respect its ori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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