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내기도 허무하다니까. 꼴 사납고 웃겨.
예쁜 것들은 항상 기어이 깨지고야 마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한꺼번에 온다지.
나 같은 프리랜서에게 이런 불황에도
일이 정신없이 몰아친다는 건 엄청난 복이자 행운이야.
당연히 나는 일을 마다할 입장이 아니고,
그저 감사합니다. 예예 분부대로 합죠ㅡ
나는야ㅡ 더러운 베개 커버를 기워 입은 도비.
근데 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더라고.
감사는 하지. 덮어놓고 감사해야지.
다들 울상인데, 난 짬 내서 울 시간도 없으니까.
마치 이런 거야.
핸드 크림을 바르려다 양 조절을 못하고 잔뜩 짜버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옆에 나눠 바를 사람은 없고.
되는 대로 찹찹—
여기저기 온몸에 다 발랐어도 흡수는커녕 손만 미끌거려.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는 기분.
손을 비눗물로 씻어야 하나,
휴지나 손수건에 박박 닦아야 하나
같은 고민을 얕게 하고 있는데
타이밍이 또 기가 막혀.
마침 지나가는 다섯 살배기 어린애가
“이모, 저 뚜껑 좀 열어 주세요.”
하고 돌려서 여는 음료 병을 건넨 거지.
근데 이걸 어쩌나!
핸드크림으로 범벅이 된 손이,
되는 대로 미끌거려서 어른인 나도 별 수 없지.
노력이 무색하게 손이 빙글 헛도는데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그 애를 외면할 수가 없어서,
결국 급한 대로 가장 아끼는 티셔츠에
손을 벅벅 문질러 닦고
뚜껑을 보기 좋게 열어 주려고 했는데.
지나가던 누군가가 답답하단 듯
“그거 하나 못 열어요? 바보도 아니고.”
동시에 홱 낚아채.
내가 기분 나쁠 틈도 안 주고
뚜껑은 맥없이 너무 쉽게 열려 버렸네. 하하.
다섯 살 꼬맹이는 그저 좋아하며
“감사합니다”
꾸벅 귀여운 목례를 하며 휙 떠나버리고.
이런 식의 허무함은 어떻게 달래야 하나.
아니, 잠깐만.
이깟 일에 허무하다고 말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이건 핸드크림 양 조절을 못한 내 잘못일까?
아니면 하필 그 타이밍에 뚜껑을 열어 달라 부탁한
고 녀석 잘못인가.
혹은 병을 낚아채 간 낯선 사람?
아니면 상황이 여의치 못함을 설명하며
에둘러 거절하지 못하고,
아끼는 옷에 아마도 지워지지 않을
흉한 얼룩을 옴팡 만들어 버린 나인가?
결론은 여기서도
난 잘잘못을 따지고 드네.
비유가 장황했다.
사실은 며칠 전에 모란디 컬러 오일 파스텔을
며칠간 고심하다 중국에서 주문했는데.
저 따위로 (사진처럼) 온 것에 허무함 반,
중국 배송이 그럼 그렇지, 뭘 믿은 거야.
하며 과거의 나를 흠씬 패주고 싶은 마음 반.
그냥 더 꼼꼼히 찾아 보고
곱절로 비싸더라도 한국서 살 걸, 싶은 후회 반.
절망스럽기 그지없다.
내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데.
요즘 들어 더욱 사람이 어렵고,
알수록 모르겠다.
그래서 더 일에 몰두하고
혼자 술도 많이 마셨다.
어쩜 밥보다 더 많이 먹은 것 같네.
그냥. 하다 하다
이제는 집에 나를 가둬버린 거지.
그나마 나는 이게 마음이 편해요.
근데 진짜 귀신같은 타이밍에.
5월 중순 무렵 주문하고
목이 빠져라 기다린 신비복숭아가
드디어 배송이 왔다대?
일 때문에 밤을 자꾸 새서
체력이 자꾸 바닥을 기니까
기분도 따라 가나 싶어서
큰맘 먹고 시작한 운동에
갈비뼈 미세골절을 얻었단 사실에ㅡ
허망하기 짝이 없음
자세가 삐딱하니 소화도 잘 안 되고
그게 스택이 쌓여 요즘 내 컨디션은
수류탄 맞은 웰컴 투 동막골 옥수수 창고라고.
딱히 잘못은 없지만
괜히 얄미운 배송 상자를 우악스럽게 찢어내고
복숭아 아무거나 주워 대충 잠옷에 슥슥 닦아
한 입 베어 물었는데—말해 뭐 해.
새콤달콤 맛도 있더라.
그 한 입에 나쁜 기분을
잠시나마 잊을 만큼.
뭐가 이래. 어이가 없으려니까.
세상이 왜 날 자꾸 들었다 놨다 해.
어이가 없어서 선 채로 펑펑 울었음.
하나만 하자고, 하나만.
나 정신 없어. 진짜로.
아람|writing from the undertow.
© Written by Aram.thewave,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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