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利)

- ㅇㅇㅇ ㄱㄹㅈ / 이익의 그림자

by 그레용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해변, 라호이아 코브(la Jolla cove)를 갔던 추억이 떠올라요.

사진을 찍든 말든, 풍성한 풀 위에 가볍게 두발로 서서, 양볼을 오물거리며 식사 중인 다람쥐. 손이 닿을만한 거리에서 다람쥐를 한참동안 바라보며 신기해 했던 경험이요.

맑고 푸른 바닷물이 부서지는 해변에는 수많은 물개들이 한가롭게 자거나 쉬고 있었고, 근처에선 바다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였는데, 각자 다른 존재가 하나의 풍경으로 어우러진 그 모습이 매우 진기했어요.


길가에는 물개 인형이 달린 키링을 파는 가판대가 있었어요. 연세가 있으신 할아버지가 맞아주시며, 플라스틱을 재활용해서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죠. 물개 소리까지 탑재한 인형이 정말 귀엽기도 했지만, 재활용이라는 말에 더욱 사야겠다는 충동이 생겼어요. 고맙게도 친구로부터 선물로 받았죠.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 그곳에 다녀온 친구에게서 한동안 키링 파시던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어요. 우린 슬슬 그 인상 좋던 할아버지가 궁금하고 걱정되었죠. 물개 인형을 만드느라 나오지 못한 타이밍이었던 건지, 아니면 정말 무슨 일이 생기신 건 아닌가 하고요.


여전히 궁금한 물개인형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나는 플라스틱이 물개 인형으로 가치를 이어가는 것 그리고 인간 생(生)의 유한함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플라스틱은 가볍고 강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자동차, 항공기, 의료기기, 전자제품 등 거의 모든 산업의 경량화와 생산비 절감,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 감소로 인류 발전에 많은 역할을 해왔죠.

그렇게 큰 역할을 해 온 만큼 우리가 살아가야 할 터전과 생태계를 위협하게 된 것도 사실이고요.


어떤 것이든 양면성과 장단점이 존재하지만, 문제는 위험해지는 그 과정에 있는 건 아닐까요? 편리함 속에서 그것이 가져올 위험을 깨닫게 되는 순간은 늘 늦는 것 같아요.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한계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또 하나의 한계, '자연'도 인간을 배려해 주지 않는 것 같거든요. 아니면 인간처럼 자연도 어쩔 수 없는 상태이거나요. 자연의 일부인 인간, 내가 지키고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지속가능'을 위한 방법의 하나로, ‘사용 금지’가 아니라, 생산하고 사용한 후 회수하여 재자원화 시키는 순환 구조로의 전환 시스템에 그 해결책이 있다고 해요. 이것이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일이죠.


2022년에는 그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 사건이 있었죠. 스타벅스와 같은 커피숍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전면 금지했던 일이요. 자연을 살리는 일이 인간이 사는 일이라는 인식도 강해지면서 텀블러 사용과 같은 실천은 요즘 더 많이 볼 수가 있는데요. 그럼에도 카페에서의 플라스틱 컵, 빨대 사용 금지는 오래가지 못했죠. 여러 노력이 있었지만 2023년 11월 환경부에서는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 조처의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하고 일회용품 규제를 완화하게 되었어요.


어쩐지 '금지'라는 것 자체는 이미 소용없는 일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인류를 살게 하고 동시에 위협하는 것, 그것은 바로 인류라는 말을 하기도 하죠. 그 이유가 인류의 ‘욕망’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단어의 어감, 표현에 따라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일테지만요. 인류의 지속가능을 생각할 때, 과연 인간의 욕망은 어떤 구조로순환할 수 있을까요? 마치 플라스틱 재활용 시스템처럼 말이죠.


먹고 싶고, 갖고 싶고, 하고 싶은 다양한 욕망으로 얻게 되는 이익은 과연, 모두 다 내 것일 수 있을까요?

이익이란 복잡하고 다양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개인의 이익, 다수의 이익, 공익, 당연하게 추구되어야 하는 이익. 어떤 것이 진정한 의미의 이익일까요?


경제적 이익, 합리성, 기후위기와 자본주의의 모순, 이런 이익의 논리가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의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요? ‘성장률’과 ‘이익’이 헤드라인이 되는 경제 뉴스. 이익 추구가 항상 선일까요?


이익의 그림자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 제게는 무엇보다 기후위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어요.

폭염, 홍수, 산불, 식량 위기. 단기적 이익을 좇는 선택이 장기적 생존을 위협한다는 것을요.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을 말했지만, 21세기의 보이지 않는 손은 오히려 환경 파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고, 마르케스는 '백년의 고독'에서 개인과 집단이 이익에 매몰될 때 어떻게 파국에 이르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데, 결국 문제는 이익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추구하고 분배하느냐가 되는 것, 이익을 다루는 태도에서, 나의 미래와 우리 인류의 다음이 가장 선명히 드러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빛과 함께 생겨나는 그림자, 우리가 빛을 보기 위해 하는 것들은 자연스레 그림자를 생겨나게 하는 것 같아요. 그것은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죠. 그래서 다행일지도 몰라요. 한번쯤 서서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 있을 수 있을테니까요. 욕망과 이익, 그 그림자를 마주하는 자신의 태도야말로 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첫걸음일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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