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 더 벤치 - 오쿠야마 요시유키
또 일본 영화다. 올해(2025)만 재밌게 본 일본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새해가 오기 전에 지금까지 봤던 영화들을 급하게 생각하고 정리해 봐야겠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 글은 새해가 되어서야 발행이 될 것이다...
재개봉을 한 영화도 많았고 그리 좋지는 않은 영화들도 더러 있었던 것 같다. 최근에는 <대홍수>라는 영화가 논란인가 보다. 사람들이 서로 간에 의견을 대립시키고 서로를 물어뜯기 바쁜 것도 같다.
영화를 안 본 입장에서 뭐라 할 말은 없지만 허지웅의 말이 조금 마음에 걸린다. 한때 영화 평론의 일을 했던 사람이 말하기에는 조금 낯설기도 하고 그리 괜찮은 온도의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여하튼 간에 사람들이 서로를 귀담아듣지 못하는 세태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지 않았나 싶다. 나조차도 주변 사람들과 계속해서 같은 말을 하는데도 서로가 서로를 못 알아들을 때가 많다. 최근 저스디스라는 래퍼는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영어 제목인 <LIT : Lost In Translation>을 내지 않았던가. 사람들은 그의 기획 의도가 어찌 되었든 간에 힙합 쪽에서의 모든 현상들을 <LIT>이라고 밈을 만들기도 했다. 사실 이런 오독의 현상 자체가 모두 저스디스의 의도였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뜬금없는 영상에서 저스디스의 <LIT>과 관련된 밈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이는 나에게는 소소하게 재미있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타자와의 관계가 무한한 거리만큼 멀어지고 있다는 예감을 불러일으키는 전조처럼 들기도 한다. 레비나스의 개념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무겁고도 진중한 그 얼굴(타자의 얼굴)이 나도 부담스럽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서로가 얼굴과 얼굴로 마주 보지 못하고 인터넷상에서 거친 말들을 상대 앞에 그대로 던져버린다. 그것은 비도덕적이라 하기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더 이상 타자를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 때문에 나오는 역설은 아닐까.
<엣 더 벤치>는 적어도 같은 공간에서 타자와 타자가 서로 말을 건넨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각자 다른 에피소드가 같은 장소인 벤치에서 이루어진다. 그 이야기들은 대부분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타자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풋풋하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남녀도 있고 남자 때문에 집을 나간 철부지 언니를 보러 온 누이의 이야기도 있다. 다른 어딘가도 아닌 조그마한 벤치에서. 중간에는 아예 미지의 타자인 외계인이 등장하기도 한다(?). 영화를 같이 봤던 지인은 그 장면에서 헛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아마 옥에 티라고 할 정도로 영화의 아쉬운 장면이었나 보다. 나 또한 그때는 이상한 장면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감독 나름의 진지한 위트가 아니었나 싶다. 서로가 서로에게 외국인인 만큼 누군가는 누군가를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처럼 느낄 때가 있지 않을까. 분명히 같은 언어를 쓰는데도 그 사람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 사람은 외계인 취급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거리가 일반적인 사람들 기준에서 기이하게 멀어 보이면 사회는 그 사람을 격리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푸코는 이를 두고 이미 광인이 있던 장소가 정신병원으로 이동하던 그 시기로 지금의 상황에 대한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을 수도 있겠다.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이 있다. 초밥과 관련된 에피소드였는데 두 연인 중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초밥으로 대신해서 말을 하는 것이다. 이 무슨 우스꽝스럽고 귀여운 에피소드였나 싶다. 하지만 우리가 만약에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거라면 아예 외국어로 말하거나 아니면 공통으로 알고 있는 사물로 말을 대신해서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직접적으로 말해봤자 상대의 기분만 상하고 혹은 상대가 못 알아들어 내 기분이 상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짐작의 여지만 조금 남겨놓은 채 후련하게 초밥으로 말을 내질러버리는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도통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조금은 내 말이 이해가 갈 수 있다. 내가 앞에서 쓴 문단은 일종의 영화에 대한 번역이다. 번역은 물론 위험한 작업이다. 원문을 본 이들은 누군가의 번역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번역본을 보기보단 차라리 원문을 보겠다고 할 수도 있겠다. 번역가도 난감하다. 나름의 전달을 위해서 번역을 해보았지만 그 과정에선 반드시 손실이 발생한다.
때문에 이 영화는 우리의 잠재된 무의식이 현상적으로 나타난 것이라 하겠다.... 너무나 허세적인 표현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영화들이 우리의 무의식을 은근하게 떠밀어 보는 것 같다. 물론 이때의 영화는 어디까지나 좋은 영화다(무엇이 좋은 영화인가에 대한 문제는 미뤄두기로 하자). 영화가 발생시킨 무의식은 언제나 우리를 잠기게 만든다.
항상 같은 말을 하고 살아감에도 같은 지역의 사람들, 같은 나라의 사람들, 하물며 같은 지구라는 땅덩어리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손실된 언어로만 말을 건넬 때가 있다. 이미 그러한 비극을 앞질러서 파악한 학문과 종교, 그리고 어떠한 말씀들은 그들의 제한된 인식을 상기시켜 준다. 제행무상이라든가 아니면 제법무아라든가.. 불교가 서양의 언어로 점철된 철학도 종교도 아닌 그저 붓다의 말씀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신 한 스승님의 말이 떠오른다. 언어는 언제나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는 교훈을 이렇게 적절히 우회시켜서 내게 새겨주신 것일까. 이렇게 다른 언어들끼리 부딪히면 그 의미가 훼손되기 쉬운데 비록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도 그러하겠다.
p.s. 영화를 보고 난 뒤 꽤나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같이 본 지인과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마치고 다른 사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잘못했는지 그는 비아냥거리면서 영화의 대사를 인용했다. 당신도 또 하나의 초밥을 남기지 말라고. 참으로 불쾌했지만 영화를 아는 사람이기에 이 말이 더욱 불쾌했단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