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이 강해야 할 이유

슈퍼맨 - 제임스 건

by 김지민




슈퍼


이번 슈퍼맨 영화는 잭 스나이더의 <맨 오브 스틸>보다 경쾌하다. 제임스 건의 스타일도 한몫했겠지만, 이번에 등장한 슈퍼맨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강력한 힘이 있던 헨리 카벨의 슈퍼맨과는 다르다. 데이비드 코런스웻의 슈퍼맨은 ‘슈퍼’보다는 ‘맨’이다. 강력한 도덕적 구원자라기보다는 선한 인간이 고군분투하는 모습과 가깝다. 제임스 건은 어째서 이런 슈퍼맨을 등장시켰을까. 기존의 슈퍼맨과 다른 이미지를 제시해야 할 상황 때문일까. 단순히 잭 스나이더의 슈퍼맨 이미지와 반대되기 위해 이러한 이미지를 채택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의 슈퍼맨은 지금 시대에서 뚜렷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Super의 어원은 라틴어 뜻인 “넘는”, “초월하는”, “뛰어난”이라는 뜻을 갖는다. 슈퍼맨은 단순하게 말하면 초월하는 사람, 즉 초인(超人)인 것이다. 그러한 초인은 범인(凡人)들과는 다르게 해낼 수 있는 일들이 많고 다른 누구보다 강하다. 이 영화 <슈퍼맨> 또한 슈퍼맨의 초인적인 능력들이 등장한다. 하기야 그럴 것이 애초에 슈퍼히어로 장르에서는 주인공들의 초능력들이 당연히 등장하지 않겠는가. 하늘을 나는 능력, 악당들을 압도하는 슈퍼파워, 신비로운 마법, 엄청난 지능…. 이 모든 요소가 슈퍼히어로들을 돋보이게 만들고 그들을 동경하게 한다. 그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대신 해결해 주는, 초월적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이 슈퍼맨은 영화 첫 장면부터 악당에게 패배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자신이 패배했음을 알리고 피를 흘린 채 크립토라는 강아지의 도움으로 자신의 기지로 복귀한다. 슈퍼맨의 로봇들은 그에게 체력을 더 회복할 것을 권하지만 그는 아직 전투 중이라며 당장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돌아가 적에게 도전하는 것이다.


초반의 모습만으로 이번 슈퍼맨이 결코 단독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초인이 아님은 모두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단지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정치적 문제에 손을 뻗었고 여론은 그의 독단적인 행위에 대해 비판한다. 그의 여자친구인 로이스 레인조차 슈퍼맨의 행동은 충동적이었다며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어떤 정치적 공작이든 간에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는 히어로다.





초인은 없다 그러면 다음은?


이 영화 내내 슈퍼맨은 혼자서 적들을 물리치지 못한다. 그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로이스 레인의 도움을 받아 렉스 루터의 주머니 우주에서 탈출하기도 한다. 언뜻 봐도 그가 정말로 ‘슈퍼’맨인지는 조금 의심이 가기도 한다. 원래의 슈퍼맨이란 압도적인 힘으로 적들을 단번에 제압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슈퍼맨의 이미지가 전환된 것은 현재의 맥락에 비추어볼 때 이는 어떤 의미로 우리에게 받아들여질까? 이제 우리 사회는 더 이상은 독단적인 엘리트, 초인, 강력한 인물을 원하지 않는 것일까?

그보다는 엘리트에 대한 환상이 이미 지나가버린 사유의 결과가 되어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누군가 영웅처럼 나타나서 시스템 전체를 바꿀 수는 없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선 영웅이라는 초인이 체제를 변환시키고 더 나은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역사적으로 대부분 그 영웅의 다음 세대로 인한 몰락을 지켜보았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본다면 조선의 왕들은 하나같이 성군 그 다음 세대에서 폭군이 등장하는 구조를 반복했다. 왕정만 그러한가. 경영도 마찬가지다. 재벌 1세대들은 압도적인 능력으로 기업을 세웠지만, 다음으로 갈수록 쇠락하지 않는가? 시간이 지날수록 영원한 것에 대한 환상은 스스로 환상이라 자수하고만다.





영웅은 영원하지 않다. 이는 시리즈들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전작을 이기는 후속작은 없다고 하던가. <다크나이트>라는 대표적인 예시를 제외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전작을 이기는 후속작은 드물다. <스타워즈>는 오리지널 에피소드 후에 나온 시리즈들은 전반적으로 아쉽다는 평을 듣기도 하고, 어떤 드라마도 시즌제로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전작과의 비교를 피하기 힘들다. 영웅도 마찬가지다. 영웅도 영원할 수는 없다. 전지전능하고 무결한 영웅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맨 오브 스틸>의 슈퍼맨도 전지전능하긴 하지만 그도 여러 고비를 겪었다. 이번 슈퍼맨은 그러한 전지전능한 설정을 최대한 느슨하게 끌고 간 채 초인에 대한 환상보다는 현실적으로 선한 인간상을 보여주었다. 전작에서 탈피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인지 아니면 지금 시대상에 따른 흐름의 일환이기 때문인지 제임스 건은 좀 더 현실적 면모의 슈퍼맨을 택했다. 그는 자신의 슈퍼파워로 선을 행한 것이 아니다. 선을 선택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쓴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적의 힘을 가진 초인이 아니라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번 슈퍼맨이 ‘슈퍼’가 아니라 ‘맨’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영화의 슈퍼맨은 사람들에게 초인이라는 이유로 막대한 책임을 요구받고, 외계인이라는 이유로 인간사에 간섭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동시에 외부인으로 배척당했다. 나름 인간을 대표하고 있는 악당인 렉스 루터의 관점으로 본다면 슈퍼맨은 외부인이고 인간이 아니다. 그런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 사회에서 군림하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혐오했다. 하지만 슈퍼맨은 마지막에 자신도 한 인간임을 주장한다. 아침에 일어나 고민하고 매일 같이 삶에 대해 고뇌한다. 그는 비록 자신의 원래 부모가 보낸 메시지에 담긴 자신이 지구에 온 진짜 목적을 듣고 무너지지만, 결국 자신의 인간 부모를 선택했고 인간으로 살아가길 선택했다. 원래부터 그가 부모가 보낸 메시지에 훼손된 부분을 자기의 방식대로 해석해서 선을 선택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누군가의 지시대로 선을 이행한 것이 아니다. 선이란 선택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는 우리의 유전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슈퍼맨의 유전자가 비록 멸망한 크립토 행성을 재건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지하 하렘을 만들 것이라는 그의 오명)고 하더라도 선택하는 것은 결국 슈퍼맨이다. 이번 슈퍼맨은 이런 의미에서 강력함을 보여준다. ‘슈퍼’의 의미는 자신의 선택을 나타내는 것이고 ‘맨’은 그 사이에서 고뇌하는 자아다. 이는 단순히 슈퍼맨의 힘이 약해졌으니 세상을 구하려면 다른 이들(로이스 레인이나 저스티스 갱)과 함께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초인이 무언가를 계속해서 지켜나가야 한다면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 이는 비단 초인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