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사랑

화양연화(花樣年華) – 왕가위

by 김지민




타이밍과 어긋남


“난처한 순간이다. 여자는 수줍게 고개를 숙인 채 남자에게 기회를 주지만 남자는 다가설 용기가 없고 여자는 뒤돌아선다.”


영화의 첫 번째로 드러나는 문구부터 소려진(장만옥)과 주모운(양조위)의 결말을 암시한다. 만남과 어긋남. 이 두 사람의 관계의 작은 역사를 그려낸 왕가위의 <화양연화>는 난처한 순간의 사랑을 절묘한 어긋남으로 나타낸다.


소려진과 주모운. 이 두 사람은 사실 소려진이 방을 먼저 구했기 때문에 주모운이 들어갈 일이 없이 그저 지나가는 관계였을 수도 있었지만, 결국엔 같은 건물로 이사를 오게 된다. 같은 날에 이사했기에 서로의 짐들이 엇갈리는 일도 있었고 둘은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인사를 건넨다. 같은 장소지만 엇갈리고 지나가는 일이 많았고 제대로 마주한 순간은 비가 왔을 때 같은 타이밍에 집에 들어가던 순간이었다. 마주칠 일 없어 보이는 이 관계가 어떤 식으로 마주치게 될지를 기대하는 것도 이 영화의 주목할 점들 중 하나다. 사실 우리가 사랑에 관해 말할 때 사랑이 시작되는 타이밍에 대해 논하는 것은 중요하다. 어떻게 사랑이 시작되었는가. 주체와 주체는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될 수 있었을까. 만남의 순간은 사랑의 과정과 결과들을 짚고 있을 때 다시 추적하게 되고 그 과정은 한없이 낭만적으로 포장될 때가 있다. 애틋했지만 비참해져버린 사랑의 결말일수록 그 사랑의 시작에 주목하게 되고, 그 무너진 수미상관의 불균형이 그 사랑을 더욱 낭만적이고 유일하게 만든다.


화양연화란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시절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영화는 왕가위의 영화 중에서 꽤나 얌전한 편에 속한다. <중경삼림>이나 <아비정전>, <해피투게더> 같은 영화에서의 화려한 카메라 전환이나 역동적인 이미지들을 최대한 자제하며 화양연화는 절제된 미를 보여준다. 서사적인 부분에서도 다른 면모를 보인다. 기존에 다소 가볍게 뜨는 듯한 무게감보다는 절제된 장면들과 음악에 맞춘 진중한 분위기의 이야기다.




주모운과 소려진은 이웃관계다. 이웃관계이기 때문에 서로 주고 받는 일도 많아질 수도 있는 법이다. 주모운이 소려진의 남편에게 밥통을 사줘서 고맙다고 말할 때 소려진의 남편은 이미 주모운의 아내가 밥통값을 냈다고 말해준다. 아내가 말해주지 않았냐고 묻자 주모운은 아내가 야근이 잦아서 보기 힘들다고 하자 소려진의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이 호텔 일이 바쁠 것이라 말한다. 이 시점부터 주모운의 부인과 소려진의 남편은 만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그 둘의 관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사실상 주모운과 소려진의 필연적인 만남을 위해 벌어진 하나의 계기에 불과하다. 그들의 사랑이 유일하게 보이는 이유는 둘의 부인과 남편이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 배경만으로는 그들의 사랑이 각별해졌다고 보기엔 어렵다.


그들의 사랑이 시작된 순간은 두 사람의 상대들이 거짓말을 하는 순간부터였을까. 주모운의 부인은 야근이 잦은 편이지만 어느 날 거짓말로 야근을 한다고 한 뒤 남편 몰래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 결국엔 소려진은 주모운의 아내와 남편이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 속에서도 직접적으로 주모운의 아내가 소려진의 남편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신 아내야. 아내한테 아직 얘기 안 했어? 그럼 앞으로 다시 찾아오지 마.”





불륜


영화에서 그들의(주모운과 소려진의 상대방들) 불륜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주모운과 소려진의 만남이다. 이들을 불륜이라 하지 않는 점은 그들이 이미 불륜을 당한 피해자였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이 둘은 각자의 상대가 불륜을 했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다. 그들 사랑의 시작이 각자의 상대방들이 사랑을 시작한 덕분이라는 점이 둘의 사랑을 더욱 기묘하게 만든다. 사실상 이것은 유일성을 획득하기도 한다. 일반적 형태의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의외성에서 각별하다. 그들은 각자의 상대가 왜 불륜을 시작했을지 가늠해보는 과정에서 오히려 그들조차도 서로에게 빠져든다. 같이 밥을 먹는 시간이 많아졌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들도 똑같이 불륜을 시작하고 있었다. 서로의 남편과 아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얘기하고 각자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공유하면서 말이다. 사랑의 계기가 시작되기 위해선 둘 간의 유사점이 교차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사랑의 계기는 서로가 상대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유일성은 여기에 있다. 사랑의 순간이 사랑을 배신당한 덕분이라는 기묘한 구조다.


그들은 그들의 남편과 아내가 출장을 갔을 때 상대방의 불륜을 확신했음을 깨닫자 적극적으로 만난다. 단순히 둘이서 상실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서 만났다기보다 오히려 사랑을 시작하고 싶은 모습이 역력하다. 주모운이 아픈 상태에서 참깨죽만 먹겠다고 고집하자 소려진은 그를 위해 기꺼이 참깨죽을 만든다. 작업실을 구하고 주모운이 아플 때 몰래 찾아간 소려진은 불륜을 한 그들과 본인들이 다르다고 하지만 자연스럽게 내일 또 만나자 약속한다.





이쯤에서 다시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난처한 순간. 여자는 기회를 줬지만 남자는 다가설 용기가 없다. 영화에선 오히려 여자인 소려진이 난감해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고 주모운은 적극적으로 소려진에게 다가간다. 영화는 단순히 이 둘의 관계를 첫 장면의 문구를 배신하면서 뒤집은 것일까?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몇 가지 지점에서 사실 소려진은 자신의 외로움을 내내 보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국수를 사러 가는 길임에도 예쁘게 차려입었던 점, 서로의 상대가 어떻게 만남을 시작했을지 둘이 연기를 하는 지점에서 주모운에게 유혹하는 눈빛을 자연스럽게 보낸 점. 그녀의 미묘한 모습은 주모운을 밀어낸다기보다는 오히려 주모운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역설적으로 그녀는 주모운을 밀어내고 있지만 그의 소설을 읽어주거나 참깨죽을 몰래 만들어주고 신경 쓰고 있다. 사실상 그녀는 남자(주모운)에게 자꾸만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주모운은 적극적인 태도로 그녀와 같이 있고 싶어하지만 정작 상대를 버리고 같이 새롭게 출발하자고 제안하지는 않는다. 주모운은 소려진이 오해 받지 않기 위해 작업실을 구하고 그녀에게 몰래 오라 제안하지만 정작 소려진과의 관계를 소극적으로 해소한 셈이다. 영화의 첫 문장처럼 오히려 망설인 인물은 주모운이다. 자신이 원래 꿈꾸고 있던 소설가의 꿈을 이룰 때는 소려진 덕분에 적극적으로 밀고 들어갔지만 정작 용기 있게 소려진에게 같이 가자고 말하진 못한다.





여기선 소려진 또한 불륜을 하고 있는 남편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기 위한 구분법으로 인해 주모운이 망설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려진의 그러한 부분은 최소한의 양심의 선을 긋고 얻은 일말의 도덕적 위안이다. 도덕적으로 어긋난 상대에게 할 수 있는 품위 있는 복수는 자신의 도덕적 품위를 잃지 않는 것뿐이다. 그녀가 주모운과 만나며 계속해서 상황을 연기하고 불륜에 관하여 상담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주모운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를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이유, 근본적으로는 불륜 때문에 시작한 관계지만 또 다른 불륜으로 빠지지 않을 이유다. 하지만 그녀가 주모운을 원하지 않고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위들, 자꾸만 주모운과 함께 연기하고 그에게 위로를 받고 있는 행동은 그녀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야말로 그들은 난처한 사랑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화양연화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라캉은 불륜을 하고 있던 남자가 정작 그 내연녀와 같이 생활을 함께 하게 된다면 아내와 내연녀 둘 다 떠난다는 역설을 이야기한 바가 있다. 남자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내연녀와의 결혼이 아니라 미묘하게 긴장된 형태인 불륜인 것이다. 주모운과 소려진의 사랑도 이와 같은 구조라고 볼 수 있을까. 사실상 그들의 결말을 생각해볼 때 그들은 정말로 서로 만나기를 원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집주인에게 의심받는 말을 듣고 난 후 소려진은 주모운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주모운은 소려진이 그들과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소려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그녀의 남편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그 자신이 떠나고자 한다. 하지만 소려진은 정말로 자신의 남편을 떠날 수 없었을까. 주모운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정말로 모르고 있었을까. 그들은 이미 각자의 상대가 저질렀던 불륜을 동일한 형식으로 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의 남편과 아내를 연기하면서 그 형식을 이어나가고 있었을 뿐이다.





프로이트가 말한 것처럼 꿈이 위장된 욕망의 성취라고 한다면 그들은 현실에서 위장된 성취를 도모하려 했던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또다시 연기 상황으로 그들의 상황을 각자의 남편과 아내로 빗대 연기하면서 주모운이 떠나자 소류진은 눈물을 흘린다. 소류진이 울자 주모운은 돌아오며 말한다. “울지 말아요. 바보같이 왜 그래요 진짜도 아닌데.” 이로써 소류진의 경우는 불륜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 또한 진심이며 주모운과 헤어지지 않고 싶다는 것 또한 진심이었다. 그러나 이 상황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다. 가장 아름다고 찬란한 시절. 화양연화는 그들의 이별로 인해 성립되고 완성될 수 있었다. 마지막에 주모운이 비로소 용기를 내고 같이 떠나자고 제안하지만 타이밍은 늦어버렸다. 아니다. 타이밍은 늦어야만 했고 어긋나야만 했다. 그녀는 남편을 떠날 수 없었다. 그녀는 떠나고 싶었지만 같이 가자는 말은 그녀의 입에서 나올 수 없었다.





주모운이 마지막에 나무에 대고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 이유는 무엇일까. 은밀하게 은폐되어야 할 사랑일수록 그 사랑은 강력한 전시성을 띤다. 그러니까 사랑이 성립되기 위해선 사랑의 주체들로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들의 사랑을 누군가는 알아줘야만 한다. 정신분석학적 용어로는 그 알아주는 대상은 대타자일 것이다.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을 때 옛날 사람들이 나무에 구멍을 낸 다음 비밀을 털어놓고 진흙으로 막은 이유. 그러한 고생스러운 일을 한 이유는 사실상 그 비밀은 어딘가로든 알려져야만 한다는 역설을 담고 있다. 비밀은 누군가에게 들키기 싫은 것이지만 정작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알아야만 그 비밀은 비밀로 유지될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소류진이 주모운에게 전화를 걸고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만으로 우회적으로 충족될 수 있다는 것. 상대가 알아차렸건 알아차리지 못했건. 말하고 싶은 욕망과 말하고 싶지 않은 욕망 그 양립 불가능한 경계에서 비밀은 대타자로 표출되어 버린다. 그들의 사랑 또한 나무에 묻하고 그 비밀은 영화를 보는 관객이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의 사랑이 화양연화가 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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