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은 가지를 거두어 뚜걱뚜걱 썰어 전분을 묻혀 튀겨낸 다음, 간장, 물엿, 마른 고추, 마늘, 파에 슬쩍 볶아내는 중국식 가지볶음을 해야겠다. 빨갛게 된 피망도 몇 개 따서 색깔 맞춤한 가지 튀김이면 더 좋겠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가지는 남편이 정말 좋아하는 채소이기 때문이다. 난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하고 그가 맛있게 먹는 걸 바라만 보아도 좋다. 물론 아이들도 뭐든지 잘 먹어 이쁘다. 옛말에 무논에 물들어가는 것과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 안 했던가. 그래도 아이들은 기꺼운 사랑의 짐이라면, 남편은 인생의 질곡을 함께한, 30년 동지이다. 그 동지의 저녁 허기를 채워줄 약간의 돈이 있다는 것, 그리고 3, 4개월은 먹거리가 풍부한 텃밭이 있다는 건 내게 충분한 행복의 조건이다.
결혼 초, 전기밥솥에 밥하는 것도 도전이었던 나를 위해, 남편은 퇴근해서 집에 오자마자 스테이크를 굽거나 스파게티를 해서 저녁을 차렸다. 아마 그로서는 최선이었겠지만, 음식이 영 입에 안 맞았고 고기도 싫어했던 나는 ‘이대로는 못 살겠다!’ 팔을 걷어붙였다. 아마 그게 결혼하고 육 개월쯤 되던 시점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 음식은 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고 힐링이 되는 나만의 일상이 되었다. 아기가 생기기 전까지는 새벽에 일어나 새우초밥을 만들거나 각종 채소를 다져 넣은 버섯전을 해서 도시락을 싸주기도 했다. 아이들 키우며 공부하고 일을 하다 보니 남편에게 그런 호사가 돌아갈 일은 드물어졌지만, 나는 아직도 30년째 도시락을 싸주고 저녁 어스름엔 따뜻한 밥을 짓는다.
엄마 친구들이 맛있는 거 있으면 남편이 먹을까 봐 숨겨놓았다 아들 준다는 말을 듣고, 아이들 달라할까 봐 이리저리 숨겼다 남편을 주는 내가 이상하게 보이겠다 잠시 생각했다. 나는 가끔 아이들에게 유언을 한다. 내가 남편보다 먼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빠한테 맛있는 거 자주 해줘. 너희들이 못하면 좋은 음식점에 가서 좀 비싸더라도 맛있는 걸 사줘. 아빠는 너희들이 안 해주면 평생 뭐 먹고 싶다 말할 사람 아니라는 걸 알잖아. 맛있는 거 있으면 네 식구들 먹여야겠지만, 조금은 아빠를 줘야겠다 늘 생각하도록 노력해 봐. 아빠는 너희들이 찬밥에 신 김치를 차려줘도 맛있게 먹겠지만, 따뜻한 김이나는 고슬고슬한 현미밥에 그릴에 구운 생선 한토막, 오이냉채, 정갈한 겉절이 한 접시 담아 주면 정말 행복해할 거야. 물론 너희들이 아빠로부터 받은 사랑은 그 정도로 퉁쳐지지 않겠지만 말이야.” 반은 협박인 유언 아닌 유언을 하면, 아이들은 깔깔대며 “그냥 엄마가 오래오래 살아.” 한다.
혼자 남아 재미없는 밥상을 앞에 할 그나, 침대에 모로 누워 책에 눈을 고정한 채 눈물 뚝뚝 흘릴 나를 상상하다가 코가 찡해졌다. 두 상황 다 고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