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한 나에게
시간은 정신없이 가는데도 새로움이 없다.
흐르면서도 한결같기도 한 시간의 속성이 부딪히기 때문일 터.
시간을 잘라 공간을 만들어 잠시 깃들고 싶다,
찬찬히 내 나이를 익히고 나의 삶을 돌아보고 꿈꾸는 삶에 용기를 주면서.
괜찮아... 할 수 있을 거야... 설혹 못한다 해도 상관없지…... 이루어지지 않은 꿈도 나쁘지 않아.
고단한 몸을 달래고 지친 마음을 다독이고 싶다.
위로의 시간이 절실했으나 시간과 줄다리기하면서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새해 나에게 통 큰 선물을 줬다: 밥벌이는 삼일만, 삼일만 하자. 주말 이틀간은 언제나처럼, 집안일과 농부 노릇으로 밭에서 얼굴 태우며 지낼 거다. 그리고 시간이 멈춘 척하는 공간이 마련될 나머지 이틀, 매주 이틀은 내게 준 선물이다. 오늘 처음 그 시간을 맞아 가슴 두근거리며 보내고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생각이란 걸 하고 살자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살기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궁금한 것 있으면 구글이 다 찾아줘, 많이 없어서 그렇지 돈만 있으면 성가시고 귀찮은 일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어, 그리고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시간을 말끔히 죽여 없앨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바쁘기까지 하잖아? 일하면 월급 나오니 생각 없이 살 오만 오천 가지의 이유가 있다.
그렇게 내가 시간을 살아내는 것인지, 시간에 업혀 삶을 주마간산하듯 스치는지 알 수 없는 때, 이틀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시간의 등에서 슬며시 내려 본다. 이제 스스로 이 시간을 뚜벅뚜벅 걸어서 몸으로 느끼며 살아 보고자 한다.
인생이 좀 보이는 나이다. 살아있는 것은 반드시 죽고, 죽어가는 것은 반드시 살아있다는 걸 안다. 이만큼 살아보면 삶과 죽음의 시간이 중첩됨을 물리적으로도 느낄 때이기도 하다. 나는 죽어가는 살아있는 것이고, 살아있는 죽어가는 존재다. 그래서 인생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고 아름답다. 우리 모두는 존재함이 전제인 이 거대한 우주에, 한정판인 ‘나’를 남긴다. 그 삶의 자취가 희미할지라도, 혹은 희미하기에 더 소중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
하여간 이틀의 선물은 탁월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