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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아란 Jan 04. 2021

헌 비누 새 비누

충분히 뭉개져야 맞붙는

비누가 작아지면 거품이 잘 나지 않지요. 물 속에 있는 마그네슘, 칼슘과 비누 속에 있는 나트륨의 화합, 뭐 그렇다고 하네요. 것보다 크기가 작아져서 제대로 문지를 수도 없어요.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고 얇아지다 못해 부서지기도 합니다. 수챗구멍으로 흘러가고, 행주 삶는 통에 들어가고, 때론 샤워타올이나 스타킹에 파묻혀 일기를 마감하곤 하지요.


납작해진 비누조각이 천대받을 때쯤 나는 새 비누를 꺼내 붙이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두 덩이를 물에 충분히 불려준 뒤 제법 세게 힘주어 맞붙입니다. 그런 다음 거품이 진득하게 엉길 때까지 거품망에 비벼서 접촉면을 마모시키지요. 무거운 덩이를 위로 두어 밤새 지긋이 눌리도록 놓아두면 대개 다음 날 한 덩이처럼 붙어 있습니다.


처음 사용할 때는 헌 비누 쪽이 먼저 닳도록 문질러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가족 중 나 밖에 없습니다. 다들 통통한 비누 한 장쯤 늘 그 자리에 있는 줄로만 알지요. 누군가 무심히 쓰다가 붙은 부분이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들여다보면 맞붙여 놨던 자리가 충분히 뭉개져 있지 않은 걸 알 수 있죠. 수분이 날아간 헌 비누의 단단함도 그대로, 반듯한 새 비누의 매끈함도 그대로일 때 둘은 서로를 밀어낼 수 밖에 없습니다. 본연의 조직을 일그러뜨리고 상대를 받아들여야만 비로소 완전한 하나로 결합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나는 문득 노자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찰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되 바로 거기가 비어 있어서 그릇을 쓸 수 있다. 문을 내고 창을 뚫어 방을 만들되 바로 거기가 비어 있어서 방을 쓸 수 있다.’ 그 자체로 완전무결하고 아름다운 찰흙 한 덩이가 있은들 일부러 구멍을 뚫고 짓이기지 않고서는 쓸모가 확장될 수 없다는 뜻이지요. 한편 그릇 안의 ‘텅 빔’이란 것을 스스로 포기하고 훼손해야만 무언갈 담는 그릇으로의 가치가 완성된다는 말이기도 할 겁니다.


그 스스로 완벽하고 온전하게 다 찬 것은 아름답지만, 훼손되고 모자라고 비어있는 것은 새로운 쓸모로 나아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앞의 것은 정적이고, 뒤에 것은 동적입니다. 앞의 것은 결과고, 뒤에 것은 과정이지요. 잠재력과 방향성, 그리고 기대감을 갖춘 과정. 유기물의 동력이 발생하는 정반합 투쟁의 구간. 실패와 실수가 거듭되는, 다소 어수선한 미완의 단계 말입니다.


새 것은 새 것대로, 헌 것은 헌 것대로 서로 본연의 모습을 일그러뜨리며 내어준 두 장의 비누가 하나처럼 붙었습니다. 손 씻는 시간이 길어진 요즘 시국에 더더욱 제 쓸모를 끝까지 다 할 것입니다. 단단함을 내어주고 거품으로 산화하여 때와 세균을 한 몸처럼 끌어안고 하수구 속으로 사라지는 일. 그렇게 비누는 반듯함에서 일그러짐으로, 단단함에서 무름으로, 있음에서 없음으로 힘차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힘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유의미하게 변신하는 것입니다.


똘똘하던 삼십 대가 맥없이 사라지는 것을 아쉽게 바라보고 선 마흔 넷의 나는 아직도 새로운 십 년과 자연스레 결합하지 못했나 봅니다. 이음새를 못 찾을 정도로 한 몸인 듯 연결돼 쓸모를 이어나가지 못한 채 겉돌고 부서지는 신세를 한탄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참 전에 지나가버린 찬란했던 영광을 그 상태 그대로 욕심 내는 것은 꼬투리 잡기용 투정이겠지요. 십 년 전 최신 인기 곡도 지금 와 들으면 어설픈 면이 없잖아 있듯 현재에 맞춰 편집하는 용기가 필요한데 말입니다. 뜻있는 부분은 살리되 이제 와 적용하기 어려운 것은 과감히 손댈 수 있어야 생명력이 연장될 수 있습니다.


이미 다가온 새 시간, 그러니까 오롯한 새 비누와는 달리 십 년치 더 낡아진 나의 새 시대를 전에 비해 박력 없고 열의 없다 자조하는 것도 문제겠지요. 지금 주어진 이 시간은 성장하고 우왕좌왕했던 모든 시간들의 단단한 누적이며, 예전에 비해 굼뜬 듯 보이는 이 속도야말로 내 나이에 잘 맞춰가는 안전한 박자이자, 앞으로 다가올 십 년, 또 십 년들 중에서 가장 재기 발랄한 속도임을 기쁘게 여겨야겠습니다. 그렇게 지나간 시간과 새 시간이 지혜롭게 편집되고 교감하고 융합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이 풍성하고 향기롭게 거품일기를 바랍니다.


다시금 커지고 단단해진 비누가 파이팅 하기 좋은 때입니다. 두 딸의 엄마로도, 몇 년 차 작가로도, 바이러스와 맞서 이길 힘으로서도 모두, 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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