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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아란 Jan 18. 2021

반짝반짝 저녁식탁

경건한 밥의 결속력

광택이 나는 구릿빛 포장을 벗깁니다. 매끈하게 여며진 얇은 속지도 한 꺼풀 더 벗겨냅니다. 마침내 하얗게 빛나는 단단한 속살이 드러나는 군요. 지난 명절에 시댁 어른께 얻어온 양파를 손질하는 중입니다. 아기 주먹만큼 자그마하지만 칼로 자른 면에서 뽀얀 과즙이 흐를 듯 맺히며 싱싱함을 자랑합니다. 아삭아삭 썰리는 소리에 홀려 두툼한 가운데 조각을 그대로 입에 넣어 봅니다. 알싸하면서도 달큼한 맛이 불꽃놀이처럼 입안에서 터지네요. 오늘 저녁엔 이 양파를 듬뿍 넣고 버섯을 볶을 겁니다. 색깔별로 파프리카도 썰어 두었습니다.


남편은 늘 허겁지겁 저녁밥을 찾습니다.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가 고파질 때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기라도 하는 건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하는 소리가 “다녀왔습니다배고파” 예요.


시장함이 더해져, 마주한 정겨움을 보태 우리 둘 저녁식사는 늘 소란스럽고 오래 걸립니다. 잘 먹는다고 해도 집밥이라는 게 반찬 몇 가지가 전부이니, 식후 산책 한 번 만에 남편은 냉장고를 연 채 반쯤 안에 들어간 모양새로 붙어서서 포도를 뜯어먹거나 찬물을 들이킵니다. 다음 날 아침이면 또 상추쌈을 이만큼 싸서 먹고 나가겠지요.


가족이 집을 나서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식탁을 거쳐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가족이 둘러 모여 밥을 먹었고, 질거나 되더라도, 찬이 푸지거나 날계란에 간장을 비비더라도 모두 같은 밥을 나눠 먹었습니다. 개다리소반에서나 대리석 식탁에서나, 함께 먹는 식구 수가 세 명에서 넷, 다섯으로 늘다가, 다시 셋이나 둘로 줄더라도 우리는 함께 모여 밥 먹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똥을 누는 동안 우리는 참말로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되어갔던 것이지요.


그러다 점점 아침을 거른 채 출근하기 바빠지면서, 밖에서 밥을 사 먹으며 야근하거나 데이트 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집에 와도 식탁에 앉는 일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뱃속, 뼈 속까지 쫀쫀하게 짜여져 있던 식구의 의리가 느슨해지기도 했던 겁니다. 한창 때의 아버지는 주말에도 회사 팀원들과 식구가 되고, 일 욕심 많은 딸은 사내 식당에서 하루 세끼를 해결하며 일이랑 결혼을 하고, 매너 좋은 아들도 어느 집 예쁜 아가씨와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그녀의 오빠’가 되어갑니다.


한 가족이 같은 밥을 먹는 일은 매일 매일 반복되고 오래되었으면서도 몇 번을 대수롭지 않게 놓치게 되면 금새 뱃속에 서로 다른 음식이 쌓이고 서로 다른 영양소가 흡수되어 서로 다른 입맛과 서로 다른 식견까지 갖게 되는 모양입니다. 지나고 보면 우리는 식탁 가운데 찌개냄비에 모두의 숟가락을 담가 먹었을 때 가족으로써 가장 단합할 수 있었습니다. 사고뭉치 남동생이라도 기다렸다 같이 우산을 쓰고 와야 했고, 도통 말이 안 통하는 아부지라도 미워할 수는 없었던 진한 의리가 그때는 금강석처럼 견고했습니다. 매일 저녁 식탁에 둘러 앉아 보석 같은 가족애를 삼키고 마시고 저장하는 일이 뜸해지면서 가족에게는 각자 비밀이 생겨나고 언니가 성가셔지고 할아버지를 창피하게 여기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가족보다 더 소중한 자신만의 다이아몬드를 조금씩 만들어 가기도 하는 거겠지요.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우리 가족과 다른 밥을 먹기 시작했더랬습니다. 대학교 근처 입에 맞는 식당 아줌마를 ‘이모’라 부르면서 재료도 조리법도 다른 서울 음식을 먹어야 했던 거죠. 일년 중 겨우 며칠 고향 집에 내려와 가족과 함께 밥을 먹을 때면, 나를 뺀 식구들은 먼저 번보다 더 통통해진 미나리 이야기, 지난 주 외할머니가 양념한 장어구이 이야기 등을 나눌 동안 나만 혼자 ‘엄마 해물탕이 좀 짜졌구나’ 생각하며 앉아있게 됩니다.


다시 직장생활 십 년간 숱한 밥집과 나홀로 밥상을 맴돌다 어느 날 아직 부산 사투리를 못 고친 한 남자를 만나 크림 스파게티를 나눠 먹었고, 지난 주말엔 한정식, 이번 주말엔 삼겹살 하면서 자주 같이 밥을 먹다가, 지금은 매일 식탁에 마주 앉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잡곡밥을 먹고, 같은 미역국과 같은 콩나물무침을 먹습니다. 같은 영양분을 섭취하고 같은 면역력을 길러가고 같은 시간대 배고픔을 느끼며 아마도 방귀 냄새까지 닮아가며 살고 있습니다. 경건한 밥의 결속력이 다이아몬드처럼 굳건해지고 있는 것이지요. 내가 어려서 우리 가족들과 그러했던 것처럼요.


다이아몬드에 ‘4C(Clarity 투명도, Color 색깔, Cut 연마, Carat Weight 무게)가 중요한 것처럼 빛나는 저녁 식탁에 모인 나의 가족도 진실로써 투명하게 서로를 대한다면, 다양한 색을 인정하고 배려하며, 자신도 남도 돋보일 수 있도록 애쓴다면, 그리고 그 소중함의 무게를 무엇보다 진중하게 여긴다면 가족의 가치는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반짝거릴 것입니다.


노릇노릇 대파 익어가는 냄새가 거실까지 번질 때쯤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겠지요. 그 예상처럼 우리가 서로에게 기쁨이 되고 격려가 되고, 때론 짐이 되더라도 반드시 위안과 희망이 될 것임을 믿습니다. 집이라는 이름의, 가족이란 이름의 저녁 식탁에 감사한 마음으로 매일 함께 할 수 있다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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