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런아란 Dec 01. 2021

마흔다섯


삶이 허리까지 왔다.


삶이 겨우 발바닥이나 간지럽힐 때는 웃음이 자주 나와 부모를 기쁘게 하였다. 야린 살에 닿는 이물감이 낯설어 울기도 자주 울었으나 그 또한 부모의 감격이었다. 밀물처럼 새 날의 물이 울컥 나를 적실 때마다 나는 조금씩 아프고 보채다 다음날이면 이내 보얀 낯으로 한 뼘 더 생 쪽으로 나아갔다 한다. 기억 못할 때의 일이다.


기억이 시작되는 부터라면 종아리께는 왔을 때일 것이다. 찰박찰박 뛸 때마다 경쾌한 물소리가 났다. 물방울이 튀어 얼굴까지 닿는 것도 좋았다. 얼굴로 삶의 감촉을 미리 맛보는 일은 가슴 설렜다. 그래서인지 나는 자주 뛰었다. 걷는다는 것이 자꾸만 그래졌다. 뒤쳐져 뭉그적대는 시간을 재촉해 불러 젖혀야 했다. 더 앞에는 뭐가 있을까. 온몸이 잠길 쯤엔 뭘 더 할 수 있을까. 숨 막힐 듯 생에게 안긴 기분은 얼마나 충만할까. 그 기대로 뛰다 보니 생이 사타구니까지 차오른 줄도 몰랐다.


생은 공연히 일렁거렸다. 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으나 나는 자주 얼굴이 달아올랐다. 다소 무거워진 걸음에 잘게 뛸 수는 없고 크게 디디느라 다리를 넓게 벌렸으니 내 안의 깊고 보드라운 곳까지 건드릴 만하였다. 황급히 허벅지를 모아 꼬았으나 그럴수록 생은 더 깊이 빨려 올라갈 따름이었다. 아랫배가 뜨거워지고 온몸에 힘이 빠지는 듯도, 구석구석 힘이 차오른 듯도 하였다. 새 생이 잉태되는 순간이었다.


배가 불러올수록 나는 내 안의 물과 함께 둥실거렸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황홀한 판타지를 살 수 있었다.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생기를 재확산한 나의 쓸모가 증명되었으니. 생의 후사를 수태함으로써 나는 비로소 생의 정실로 인정받고 엉덩이까지 떠받친 보살핌을 받았다. 마침내 어린 생이 내 좁은 산도를 빠져 나왔을 때 나는 잠시 혼절하였다가 이내 몸을 곧추세워 다시 걸음을 시작했다.


새로 걸음마를 배우는 듯하였다. 요추 다섯 개가 조금씩 다 이지러졌지만 조심스레 한 발씩 내디뎠다. 이제 이 방법이 몸에 좀 익는가 했더니 어느덧 생이 허리까지 차오른 지점까지 와버린 것이다.


한쪽 무릎을 들어올리는 데만도 힘이 든다. 어디론가 쓸려갈까 두렵다. 내키는 대로 포르르 쫓아가 호기심과 사명감을 만족시킨 뒤 총총 제자리로 돌아오던 일도 전처럼 하기 어렵다. 그 때문에 몸보다 마음이 무겁다. 겁쟁이가 된 것만 같다.


중심을 잃고 쓰러지거든 최대한 벌떡 일어난다 해도 넘어졌던 그 자리에 다시 설 순 없으리라. 짜고 걸쭉한 물도 퍽이나 마셔야 할 테지. 눈으로 코로 귀로 들어간 것을 닦아내고 토해내고 풀어내도 나는 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 용케 내 손을 잡아준다 해도, 값비싼 보조기 덕을 조금 본다 해도 뭐가 있을지 모를 저 너머 지평선에 가 닿는 일은 온전히 나의 몫이므로 나는 만전을 기해 가다 서다 한다.  앞서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시간의 뒤통수가 태연해 공연히 서럽다.


원래가 물이 배꼽쯤을 넘어서면 균형을 잡을 수 없다는데. 그때부터는 순리에 맞춰 생에 몸을 맡기고 유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던데. 나를 만드신 어버이가 배꼽 점을 찍어 그 일리를 이르고자 하였으나, 아아 아버지! 나는 아직도 내 다리로 내 원대로 걸어나가고 싶나이다. 쓰러져 허우적대는 나를 어머니가 또 일으켜 주실 것을 믿나이다.


그 고집을 부리느라 기진맥진 복근운동을 한다. 애걸하는 자세로 한 쪽 무릎을 꿇고 리버스 런지도 한다. 무릎 하나, 발바닥 하나만 지구에 대고 내 무게만큼의 중력을 끌어올린다. 한 점 배꼽 주변으로 선을 그린다. 그림 같은 여섯 면까지는 아니더라도 크게 둘이나 네 개의 네모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기어코 써낸 각서를 보여드리고 나는 코어 근육에 힘 실어 한 걸음씩 내딛는다. 물길에 떠밀려 다니는 짓은 배꼽 주변에 이 황칠조차 못할 때에나 하고 싶다.


그러나 언젠가는 해야 할 일. 자유의지를 내려놓고, 허술한 존엄성마저 내려놓고 물길 따라 쓸려 다니는 순한 물고기가 되리니. 떼 지은 나와 우리의 와글거리는 물장구가 조물주의 발끝을 간질여 웃게 해드리길. 기억나지 않는 어린 날에 내가 젊은 부부에게 그러하였듯, 마지막 얼마 간의 기억 못할 시간은 그분께 어여쁜 움직임으로만 반짝이길 소망한다.


아직은 디딘 곳 조개 껍질에 발을 베고, 온몸으로 용쓰느라 며칠씩 앓고, 속절없이 움푹 패인 곳에서 정신 잃고 헤매가며 내 마음 가자는 대로 걷는다. 밤마다 다리가 아프다.


아가미 생길 자리에 반듯반듯 주름이 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글 쓸 나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