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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아란 Dec 10. 2021

달리기


오늘은 진짜 길을 달려보았습니다. 트레이드 밀 위에서는 오락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땅은 기계처럼 단조롭지 않았습니다. 반반하고 널찍한 아파트 단지 안이었음에도 어떤 길은 좁았고 어떤 길은 급하게 꺾였고, 보폭이 멈칫 쪼그라들 만한 오르막이 나왔다가 우다다다 중력이 줄어드는 구간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차가운 밤 공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마스크 속 한 주먹 거리의 미지근한 공기만을 코로 마시고 뱉어도 되었습니다. 한 바퀴를 돌자 심장에서 더 많은 공기를 보내 달라는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손가락이 더듬더듬 마스크를 끌어내렸고, 가끔 멀리 보이는 교복 차림의 학생이나 이어폰을 귀에 꽂고 퇴근 중인 이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더 빨리 달려나가기도 해야 했습니다. 집에서 뜨신 밥을 먹고 둘째 아이와 기차 놀이나 하다 내려온 나는 갑자기 온몸을 가득 채운 찬 공기 때문에 얼이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콧속을 지나 눈알과 귀 안에까지 얼음 막대기가 쑤셔 대는 듯했으니까요. 등에는 땀이 흘러서 아우터를 벗는다, 허리에 묶는다 소란스러웠지마는 이마가 쨍하고 귀가 시려서 다시 후드 가디건을 풀어 모자만 뒤집어 쓰고 소매를 끈 삼아 흘러내리지 않게 동였습니다. 아파트 열 바퀴 뛰다 걷다 한 이력치고는 굉장히 부산스러웠던 삼십 분이었던 거죠.


죽겠다가, 살겠다가, 살만 하니 또 뛰어보다가, 아까보다 더 빨리 걷기로 바꿨다가, 놀이터 부녀가 계속 그 자리에 있었으므로 그 구간만큼은 그들 시야에 잡히지 않을 때까지 뛰었습니다. 짧은 오르막이니 힘내 보자 했다가, 귀한 내리막이니 쉬지 말자 했다가, 기도가 따가워서 속도를 줄였는데 뛸 때보다 숨이 더 가빠서 더 많은 찬바람을 들이켜야 했습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다 보면 모과나무가 또 지나가고, 아우성 치던 몸이 가을 정경을 훑습니다. 아름다운 밤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나를 감탄하다가 또 뒤꿈치에 힘이 들어가 땅을 박차고 뛰쳐나갑니다. 잠깐 사이 일희일비가 100배 속으로 펼쳐지는 삶의 축약판 같습니다, 이 달리기라는 것은.


누군가 생태주의를 위해 어떤 실천을 하느냐 묻더군요. 여기에 가장 중요한 답을 적습니다.

"운동을 합니다."


가치관을 지키는 데는 체력이 필요합니다. 추상 같은 목구멍 포도청의 불호령에 무릎 꿇지 않을 정도의 살림도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적당한 안녕 속에서도 농담을 나누거나, 위로를 주고받거나,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는 일은 반드시 근력을 필요로 합니다. 요추 4번과 5번 사이에서 삐져 나온 디스크가 하반신 신경을 건드리고, 인격적 소양까지 갉아먹던 경험은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귀한 내 새끼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은, 내 눈이 안 아플 때나 쓸 수 있는 것이더군요. 이제 나는 의젓한 엄마 노릇을 위해서라도 건강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오늘 어치의 운동은 내일에는 할 수 없습니다. 이 달달한 성취감은 내 돈 주고 반지 하나 사 끼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단단하게 쌓아 올린 자긍심은 매번의 도전에서 위력을 발휘합니다. 하여 나는 글도, 친절도, 이타심과 유머도 강한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움직이세요. 충분히 건강하셔서 이 생을 음미하세요. 그럴 자격 있습니다. 그럴 의무도 있습니다. 살아 좋은 날입니다. 젊은 상주의 손을 붙잡고 참한 위로의 말을 고르느라 애가 나는 것을 보면. 그 팔뚝에 찬 삼베 완장이 마치 벌 받는 이의 화인처럼 보이는 걸 보면.


귀한 삶을 누리는 당신. 귀인은 길 위에 있습니다. 걸으세요. 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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