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책을 '읽어야' 하는가?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읽고

by 아라운

텍스트란 무엇인가. 시신경이 감지하는 것은 흰 바탕에 그려진 검은 영역들의 조합에 불과하다. 그것을 보고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대뇌의 역할이다. 그렇다면 이 중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가 일반적인 '읽기'에 해당한다는데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읽기가 대뇌의 활동이라면, 수많은 시냅스로 연결된 신경세포들이 순수한 텍스트 그 자체만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대뇌의 의미 해석 과정에는 개인의 배경지식, 사회문화적 요인 등이 개입하게 된다. 이와 같은 독서에 요구되는 정보는 텍스트이기 이전에 생각의 언어로 개인과 사회 속에 녹아들어 있다. 저자는 이 생각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독서에 요구되는 이러한 맥락이 곧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이고, 독서를 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맥락을 읽어내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기에 '읽기'에 반드시 책을 펼쳐보는 행위가 요구되지 않음을 주장한다.

이 책의 놀라운 점은 텍스트와 맥락이 분리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 있다. 즉, 텍스트를 전혀 읽지 않아도 맥락이 전달된다면 책의 역할을 다한다는, 다시 말해 독서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는 것은(또는 얻으려고 하는 것은), 텍스트의 내용이 아니라,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 사이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맥락이다. 저자는 오히려 텍스트의 내용에만 집착하면 이러한 맥락을 오히려 잃게 될 수 있으므로 과도한 독서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텍스트란, 생각의 언어인 맥락을 드러내고 우리가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트리거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가깝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텍스트를 인식하지 않더라도 사유를 통해 책의 문화적 위치와 함의를 읽어낼 수 있다면, 그것 역시 독서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서는 비독서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단, 이때의 비독서는 책이라는 개념 전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망막에 실제 텍스트의 상이 맺히지 않더라도,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도서관에 책을 꽂아놓는 정도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책의 용어를 빌리자면, 실제 책의 존재는 내면의 책을 매개하는 존재일 뿐이며, 이 내면의 책은 각자의 내면의 도서관에 소장되며 이 도서관 역시 개인이 속한 문화나 집단이 공유하는 더 큰 도서관의 일부이다. 따라서 우리가 책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실제 책 그 자체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이 상징하거나 함의하는 무언가를 언급하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비독서의 논리'가 왜 오직 책과 같은 텍스트를 활용하는 매체에서만 유효한지 고찰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독서는 태생적으로 대뇌의 고도의 추상화 과정을 거치는 작업인 반면, 영화나 음악 같은 예술은 감각기관의 직접적인 지각을 수반하는 완결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텍스트는 그 자체로 아무런 형상이 없다. 검은 글자라는 기호를 보고 머릿속에서 이미지와 의미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맥락'이 개입할 여백이 극대화된다. 따라서 실제 텍스트를 통과하지 않더라도 그 맥락의 그물망, 다시 말해 내면의 도서관에 접속하는 것만으로 '읽기'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영화나 가사가 없는 음악은 다르다. 영화를 유튜브 요약본으로 보는 것을 '영화 감상'이라 칭하는 것은 비약이다. 영화는 영상의 미장센, 편집의 호흡, 사운드의 질감 등 시청각적 자극이 뇌의 해석 이전에 감각기관에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경험이다. 음악 역시 어떤 음악의 주제나 역사적 배경을 지식으로 아는 것과, 수십 대의 악기가 뿜어내는 다양한 음색과 음높이를 고막을 통해 느끼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활동이다. 즉, 시각과 청각이 주도하는 예술은 그 감각적 체험 자체가 작품의 완결성을 이루기에, 맥락만으로 이를 대체하려는 시도는 '경험'을 '정보'로 격하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따라서 저자가 제안한 역설적 독서법은 오직 기호의 해석에 의존하는 '책'이라는 매체만의 고유한 특권이자, 텍스트가 가진 추상성이 허용하는 논리적 유희라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역설적인 점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책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은 읽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이 책의 함의를 깨닫고 책장을 덮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이 세상의 수많은 다른 책을 독서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