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수 있는 사람은 받아본 사람이다

'가장 좋은 것'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by 알아주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내어주는 사람은

이미 그걸 받아봤던 사람이다.

받아보니 좋은 기분이 들어

누군가에게 전할 줄 알게 되거나

의식할 새 없이 이미 내재돼

타인에게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포옹을 자주 하는 사람은

포옹을 받아봤던 사람이고


"천천히 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천천히 해"라는 말을 들어봤던 사람이다.


꽃다발을 전하는 사람은

꽃 사는 이의 마음을 받아본 사람이고

그 수고까지 가늠해 본 사람이다.


"잘한다"라는 칭찬의 말을 하는 사람은

"잘한다"는 말로 오래 뿌듯해해 봤던 사람이고

결과 전의 노력까지 결을 따라 투시해 본 사람이다.


함께 하는 일에서 크레딧(Credit)을 일일이 챙기는 사람은

비교적 작은 역할을 맡고 있을 때 샤라웃(Shout Out)을 받아본 사람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서브이고 싶지 않다는 걸 낮은 위치에서 이해한 셈이다.


퇴사할 때 부러 아쉬움의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이해관계를 떠난 인사를 받아봤던 사람이다.

흔히들 갖고 있는 결혼식 로망처럼

일터에서의 우정이나 끝맺음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간편식과 배달 음식이 발달한 시대에

손님을 초대해 집밥을 대접하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정성스러운 식사를 받아본 사람이다.

그것으로 힘을 내본 사람이다.


도와주는 사람은

도움 받아 넘어온 길을 기억하는 사람이고


용서할 용기를 내는 사람은

“그럴 수도 있다”라는 너그러움에

콧등이 시큰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줄 수 있게 된 건 이미 받아봤기 때문이다.

줄 수 있는 사람은 받아본 사람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만은 아니다.



받아본 적 없는 것을

건넬 줄 아는 사람도 있다.

자기 자신이 가장 받고 싶었던

인정, 존중, 사랑, 친절, 대접, 선물의 한 처음이 되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좋다고 믿는 걸 최초로 시도하는 사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기에 좋은 것을 내어주는 사람은 위대하다.



더 나아가

받아봤던 것 중에 좋지 않은 것을

물려주지 않는 사람은 경이를 불러 일으킨다.

악습을 물려받았으나 그 습의 영향은 자신을 마지막으로 삼는 사람,

어린 날 받은 부당함을 후배에게, 부사수에게, 이등병에게,

며느리에게, 자녀에게 앙갚음하지 않는 사람.

구태연연을 끊고 새 길에 터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시대의 필요를 감각하며 살고 처신한다.



내가 받아봐서 좋았던 것들과

받지 못해 추구했던 것들

받지 않았으면 했던 것들을 헤아려 본다.

나는 무엇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인가?




[작가의 말]

성인이 돼서 알게 됐어요.

제가 자라면서 ‘포옹’을 많이 받진 못했다는 사실을요.

반면에 집밥이나 뒷바라지로는 더할 나위 없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포옹에 어색해하는 어른이 돼버렸지만

주변을 무심히 챙겨주는 사람도 되었어요.


맞아요, 이 글은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이 받아보지 못했던 것들과 많이 받아봤던 것들을 하나씩 세워보다 쓰게 됐어요.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한국 인천


또 어떤 것은 책에서 읽고 제가 받아보고 싶었던 것들을 따로 생각해 본 것들이에요.

특히 김소영 작가의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의 이 구절.

그런 생각을 떨치게 된 건 한 어린이 덕분이다. 어머니는 아이가 신발을 갈아 신거나 급식을 먹을 때 느린 편이라 선생님이나 친구들한테 싫은 소리를 자주 듣는다고 하셨다. 그 뒤로 나는 그 어린이뿐 아니라 다른 어린이들에게도 자주 "천천히 해"라고 말하게 됐다. 생각해 보니 나도 어렸을 때 빨리 하라는 말만 들은 것 같았다. 누가 천천히 하라고 했으면 조금은 안심이 됐을 텐데. 그런데 내가 어떻게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해냈을까?

사실 "천천히 해"는 내가 아는 가장 '맺힌 데 없는' 선배가 자주 하는 말이다. 퇴근길에 비가 오면 그 선배는 사무실에서 지하철역까지 꼭 후배들을 차로 데려다주었는데, 우리가 차에 탈 때도 내릴 때도 늘 그렇게 말했다. "천천히 해." 나는 그 말이 좋았다. 덕분에 차를 얻어 타는 게 미안하지 않고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선배는 그런 말을 듣고 자라서 좋은 사람이 되었나 보구나 싶었다. 나중에 내가 "천천히 해"라고 말하고 보니 나도 그런 말을 들어 본 사람이었다. 꼭 인생 초기에 자리 잡힌 대로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작가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재직하던 시절, 가장 맺힌 데가 없는 선배가 해주는 말이 “천천히 해”였고

그 말이 좋아 본인에게도 남에게도 자주 하는 말이 “천천히 해”가 되었다고 해요.


저도 이 책을 읽고 나니 “천천히 해”라는 말을, 김소영 작가님 못지않게 듣고 싶어 했더라고요.

빨리빨리 채근하는 말을 많이 들었기에 초조해했던 적이 많았거든요. 그럼 일은 빨리 되기는커녕 되돌아가서 두 번 일해야 할 때가 많았죠. 그렇기에 오히려 남들에겐 "천천히 해"하고 자주 해주는 말이 되었어요.


자신이 받아본 적 없는 것을

남들에게 해주는 사람은 위대하다고 생각했어요, 늘!


이런 생각은 은연중에 흘러나왔어요.

따로 운영하는 한 유튜브 채널에서 위와 같은 맥락의 댓글을 달았으니까요.

‘무언가 줄 수 있는 사람은 받아본 사람이다.

그런데 받아본 적 없는 것을 주는 사람은

더 대단하다’


이 댓글에는 무려 1,700명이 공감해 주셨어요.



여러분은 많이 받아 봤기에 남들에게 자연스럽게 줄 수 있는 게 무엇인가요?

혹은 받아보지 못했기에 다른 사람에겐 꼭 전해주고 싶은 것은요?


저는 받아도 봤지만 부족했다고 여기기에 '축복의 말'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인생마다 듣고 싶어 하는 말, 본인도 본인임을 알아채지 못했던 특징을 발견해서

말로 쏟아내 주는 것이죠.

담백하게 진심만을 담아서-징그럽지 않게 감정을 덜어-

그 사람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말을 남기고 싶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엄한 곳에서 인정받느라 애쓰지 않았으면 해요.


좋아하는 시인-나태주의 시집 제목을 얘기하고 글을 마쳐야겠네요.

<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주고 싶다>




▶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은요.

작사가, 인터뷰어, 카피라이터, 시인, 작가, 콘텐츠 크리에이터, 포토그래퍼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또...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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