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비아로 국경을 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도시 룬두. 그곳을 향하는 길에는 관광지가 아닌 나미비아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소 몰이꾼, 초가집 짓고 사는 모습, 정리가 안 된 거리, 물건이 오고 가는 장터, 화려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아이, 어른 등이 꾸밈없이 드러났다.
잠비아로 가면 바로 빅토리아 폭포에 들릴 것이고, 빅토리아 폭포에 들리면 나를 마지막까지 떨게 하는 번지점프를 해야 한다. 한국에서 이 동행들을 처음 만났을 때 이미 '가위바위보'로 번지점프에 뛰어내릴 순서를 정해두었었다. 나는 스카이다이빙은 해보고 싶었지만 번지점프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분위기에 휩쓸려 번지점프를 해야 하고 이미 출발도 전에 내 번지 순서가 정해지게 되었다. 나도 상황에 닥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고 나면 아드레날린이 치솟을 것 같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심리가 발동해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그래도 심히 걱정됐다. 이건 스카이다이빙과 다르게 내 의지로 뛰어내려야 하는 일인데, 발이 묶인 채 점프대에 선 것을 상상하자니 미칠 것 같았다.
이 세 명과 여행하며 알게 된 건 내가 "무섭다"는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는 거였다. 내가 말하면서도 "또 무섭다고 그러네. 그만 말해야지" 할 정도였다.
평생 죽음을 연구했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모든 두려움의 근원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큰 것일까? 그런데 또 번지점프는 무서운 게 맞는데, 이 세 사람은 왜 나보다 두려움을 말하지 않을까?
하국 오빠는 군인이었어서 담력을 쌓을 경험이 많았고 지석이는 계속 말로든 행동으로든 용감함을 보여줬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예지는 왜 이렇게 담대할까? 얘는 왜 이렇게 겁이 없는 거야? 소복하게 다져진 마음이 궁금해 물었다.
"예지야, 너는 (번지점프) 안 무서워?"
그러자 예지가 한 번도 못 들어본 말을 했다.
"나는 그분과 함께 하니까!"
다음에 내가 한 말은 소리 내서 한 말인지 아니면 내가 속으로 한 말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분명 속으로든 밖으로든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나는 뭐냐? 나는 왜 혼자 다니냐? 내가 더 불안한데 난 왜 혼자 다녀?"
동행이 세 명이나 같이 다니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지하철에 타는 것처럼 갑자기 혼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벙쪄 있는데 예지가 말을 이었다.
"그분은 네 머리카락까지 세고 계셔."
"내 머리카락까지? 내 머리카락은 왜?"
'그분'이 무엇을 말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신, 절대자, 하나님을 말하는 거였다. 원래 이렇게 종교 얘기를 직접적으로 하는 친구가 아닌데, 내가 너무 불안한 가운데 자기는 그분과 함께 한다고 하니까 그게 부러워졌다. 속으로 말했다. '나도 네 옆에 있는데 그분은 나랑은 함께 하지 않는 거야?' 외국인이 한국 사람들이 우리나라라고 말할 때 '우리'에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것 같아 소외감을 느낀다고 하던데 그게 지금은 꼭 내 얘기 같았다.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도 아닌, 그 전, 전, 저~~~언에 있는 신이 정말 있다고 믿고 그게 믿어지는 걸까? 믿어지면 믿어져서 마음에 확신 같은 게 있나? 그런 확신이 생기면 요동치는 마음이 잠재워지나? 사실 아프리카 여행을 오기 전부터 '심장이 나댄다'라고 느낄 정도로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 나였다. 그래서 여행 오기 전에 커피도 잘 마시지 못하고 여러모로 신경이 쓰여 살도 빠졌었다. 여행을 하면서는 이 자극적인 경험을 반드시 통과하고 싶으면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이렇게 내 마음이 요동치는데 조금 불안해도 금방 중심을 잡는 친구를 보니까 '신? 절대자? 진짜 뭐가 있긴 있나 보다' 하고 가뭇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 신이라는 게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내가 이 넓은 아프리카에 와서, 대지를 차로 이동하며 계획대로 되는 일이 적고, 위험한 걸 알면서도 호기심 때문에 자꾸 도전하고, 계속해서 흔들리는 마음을 잠재우기가 힘든데 '일상에서처럼 힘들 때 부모님께 전화를 할 수 있나, 언니한테 의지를 할 수 있나, 핸드폰으로 도와달라고 연락을 할 수가 있나, 인터넷 검색을 할 수가 있나' 일상에서 마음을 다스렸던 방법으로는 이곳에서 통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내가 의지하는 부모님도, 언니도 결국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프리카 땅에서 날 도와줄 수 없는, 한계가 있는 인간.
그런데 어떤 기운 같은 게 신이라면, 모든 걸 관장하는 절대자가 있다면 말 그대로 절대자니까, 사람처럼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여기에도 있으니까 '내가 소원하는 일을 좀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신'의 존재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분과 함께 하니까!" 그 말이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며 룬두에 도착했다. 관광지가 아니라 생(生) 리얼(Real) 나미비아였다. 선팅이 하나도 돼 있지 않은 우리 렌터카에 이 지역 사람들의 시선이 꽂혔다. 그 시선에는 성인 남성들의 눈도 있었고 신발이 없는 가난한 아이들의 눈도 있었다. 처음 방문하는 곳이라 적응도 안 되는데 차 속도는 줄어들고 현지인들과의 거리는 가까워져 또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짐을 빼고 차에서 내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니! 나의 겁은 무한대. 두려움의 크기를 줄이는 방법은 무얼까.
용감해지려고 아프리카에 왔는데 되려 나의 약한 부분을 더 많이 알게 된 느낌이었다. 이렇게 약한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