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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Jul 07. 2021

당신들 경찰서에 좀 가야겠다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 서른 @나미비아 룬두

이날 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나미비아 큰손한테 렌터카를 반납하는 거였다. 차량 반납을 위해 세 가지를 준비해야 했다.

    첫째, 추가금액 1700 나미비아 달러 준비.
    둘째, 주유소에 들려 디젤 가득 채워두기.
    셋째, 세차하기. (세차는 우리 양심상 해두고 싶은 것이었다.)


우리는 이 세 가지를 하기 위해 룬두에 일찍 도착해 있었다. 잠비아 리빙스턴으로 넘어가는 인터케이프 버스는 저녁 10시 20분 출발이고 차량 반납을 맡아줄 기사는 저녁 9시 만나기로 했다. 이를 다 처리하는데 6~7시간이 여유가 있었다.

일단 부족한 나미비아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환전을 했다. 그리고 그 돈으로 KFC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역시 배를 채우고 콜라로 목을 축이니 기운이 났다. 오래간만에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도 생기가 나게 했다. 스카이다이빙 숍 이후로 인터넷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는데, 와이파이가 되니 내가 알던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게 좋았다. 우리는 계속 뭉쳐 다니다가도 와이파이만 잘 터지면 순식간에 개인적인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은 늘 제한돼 있어서 꽤 달콤했다.


와이파이 타임


이제 차로 룬두를 좀 둘러보기로 했다. 세차 가능한 주유소를 알아두는 게 목표였다. 룬두의 첫인상은 어수선해 보였다. 가난한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룬두 중심가로 들어가니 쇼핑몰이 잘 정리돼 있고 패션센스가 좋은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하얗고 빨갛게, 진하고 강렬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너무 멋져 보였다. 옷가게에 걸린 옷들은 매력적이지 않았는데 이 지역 사람들이 입으니 무척 세련돼 보였다.


계속해서 이동하는데 꽤 복잡한 길목이 나왔다. 차량이 엉키는 것 같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남자가 다가와 차 창문을 두드렸다. 창문을 내리니 그 남자는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잠깐 경찰서에 들르자고 했다. 나는 워낙 의심과 불안이 많아, 그 신분증이 진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기꾼들이 동양인을 알아보고 들러붙었구나. 기부(Donation)를 빌미로, 주차장에서 돈 내라고 했던 사람들을 만났을 때처럼 무시하고 지나가자.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경찰이라고 밝힌 남자의 태도가 지속적이고 강경했다. 렌터카 때문에 신고(Report)가 들어와서 룬두 경찰들이 우리를 계속 추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별 일이 다 생기는구나. 경찰서를 가다니 진짜 이번 여행 왜 이렇게 힘들까.'


나는 전도연 주연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이 떠오르면서 해외 경찰서에 구금되는 건 아닌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미비아에는 한국대사관도 없는데 어떡하면 좋을까. 걱정이 먹구름처럼 몰려왔다.


그러자 하국 오빠가 분위기를 바꿨다.

"야, 여기 진짜 뭐냐. 진짜 재밌다. 점점 재밌어지네."


출처 : 영화 <주토피아>


결국 우리는 그 남자의 차를 따라 나미비아 룬두 경찰서에 가게 되었다. 진짜 경찰서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분은 경찰이 맞았다. 그 경찰을 따라 경찰서에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깊숙이 들어가니 집무실이 나왔다. 서류가 가득 쌓여 있는 그 방에 경찰서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 서장은 다소 초조해하는 우리에게 일단 안심하라고 했다. 여기까지 들어오는 것은 무서웠는데 그 서장의 인상을 보니 겁이 좀 누그러졌다. 렌터카 문제로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다. 서장은 렌터카 주인인 큰손한테 전화를 걸어 신고 내역을 확인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는 우리에게 사실관계에 대해 물었다. 이때 예지가 나섰다. 우리가 큰손과 주고받은 문자를 보여주며 "오늘 밤 9시에 룬두에서 차량을 반납하고, 기사에게 전달할 1700 나미비아 달러도 준비해뒀다"라고 말했다. 문자가 증거가 돼서 서장의 신뢰를 얻었다. 서장은 큰손에게 다시 전화를 했고 합의점을 우리에게 전달했다. 큰손이 보낸 기사가 아닌 경찰들에게 차량을 맡기라는 것이었다. 큰손이 차량 기사를 룬두에 보내지 못한 것인지, 우리가 잠비아까지 차량을 가지고 갈 거라 의심한 것인지…… 큰손은 우리를 정신적으로 괴롭게 했다.

경찰 조사를 마치고 차량에 디젤을 가득 채워야 한다는 이유로, 차량을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차량 반납 약속 시간을 정하고 경찰서 바깥으로 나왔다.


다 지나고 나니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됐다. 저녁 9시까지 기다렸다가 혹시나 기사를 못 만나면 차량 반납도 못 하고, 그다음 장소로 이동도 못 할 수 있는 터였다. 우리가 하려고 했던 차량 세차도 경찰서에 다녀오는 바람에 시간이 부족해 그냥 하지 않기로 했다. 차라리 잘됐다. 기름만 채워서 경찰에 인계하면 되니 말이다.


'그래, 다행이다.'


경찰서에 나와 바로 가본 곳은 인터케이프 버스터미널이었다. 그 정류장 위치를 모르고 있으면 저녁에 택시를 이용해 갔을 때 빙 둘러서 가거나 돈이 엄청 많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길 영상을 찍으며, 경찰서에서 KFC를 지나 터미널까지 가는 시간을 쟀다. 6분 정도가 걸린다는 것을 확인했다. 돌발상황이 많다 보니 그 상황에 적응하고 점점 더 꼼꼼해지고 있었다. 다음엔 주유소로 가서 기름을 가득 채우고 다시 경찰서에 돌아왔다.

차에서 여행 짐을 다 빼고 경찰 서장이 차량을 점검해보는 것을 기다렸다. 그러다 경찰서에 공작새가 출입한 것을 보게 되었다. 비둘기, 참새, 까치가 아니라 공작새였다! 역시 아프리카는 스케일이 남달랐다.



경찰에게 기사에게 주기로 했던 1700 나미비아 달러를 주고 나니 차량 반납 처리가 됐다. 우리는 그새 현지 경찰과 친해져서, 여기서 터미널까지 택시비는 얼마 정도 나오는지, 마켓은 어디 있는지도 물어봤다. 그러곤 모든 짐을 챙겨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들고 다녔던 공동 물품들은 경찰서 앞 쓰레기통에 모두 버렸다. 그러면서 남은 나미비아 맥주 한 병을 나눠 마셨다. 일명 경찰서 결의! 각자 한 마디씩 남겼다.


"오늘을 기약하며…… 한국에서도 경찰서 안 가는데."

"지석아, 오늘 기억나니?"

"Cheers!"

"아따, (고)되다."



상황이 끝나고 나니 웃음이 터졌다. '무슨 남의 나라 경찰서까지 와 보나' 하는 너털웃음이었다. 나는 그제야 다시 안심할 수 있었다.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룬두로 올 때 돌발상황이 생길까 봐 일부러 일찍 왔는데, 경찰서에 들려서 그 여유로운 시간을 알차게(!!!)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감사했다. 이 사람들과 함께여서 감사했다. 나는 모험을 하고 싶어 하면서 잘 놀라는 스타일, 호기심이랑 겁이 싱크가 안 맞는 타입이다. 아마 동행들이 곁에 없었다면 여러 돌발상황들에 침착하지 못하고 '재밌다'며 가볍게 털지도 못했을 것이다. 쫄보 가슴도 쫄보 가슴이지만 더 심각한 건 아프리칸 영어가 잘 들리지 않았다. 예지랑 지석이가 아니었다면 경찰서에서 우리 입장을 잘 소명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그래서 함께 다니는 예지와 지석이의 언어 능력과 침착함, 하국 오빠의 단순함과 유쾌함에 감사했다. 이 사람들이 없었다면…… '으, 상상도 하기 싫다.'



[돌발상황 #17] 거리에서 우리를 추적하고 있던 경찰이 잠시 경찰서에 들르자고 했다. 그 사람이 경찰인지, 사기꾼인지 몰랐지만 일단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 사람은 진짜 경찰이었고 경찰서에서 렌터카 관련 조사를 받게 되었다. 경찰 서장의 중재로 큰 문제없이 렌터카를 반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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