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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Jul 07. 2021

국경을 잘 넘을 수 있을까?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 서른하나 @나미비아 룬두-잠비아 리빙스턴


경찰서에서 나와 곧장 간 곳은 룬두 시내에 위치한 대형마트였다. 이곳에서 밤새 타게 될 버스에서 먹을 식량을 샀다. 룬두에서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마치고 이제 국경을 넘는 버스만 타면 되는 일이었다. 인터케이프 버스를 타기까지 약 네 시간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시간을 때우러 다시 KFC로 향했다. 성인 4명이서 치킨 윙 5개를 시켜놓고 자리를 차지했다. 이곳에서 인터넷도 하고 사진도 공유하고 일기도 쓰고 말라리아 약도 함께 먹었다.



버스 시간은 저녁 10시 20분! 우리는 버스 출발 1시간 전에 인터케이프 버스 터미널을 향했다.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위험할 것을 대비해 택시를 잡았다. 낮에 터미널이 어딘지, 가는데 얼마나 걸리는지를 미리 알아두어 택시를 타도 시간과 거리를 예측할 수 있었다. 금세 터미널에 도착했다. 혹시나 해서 아주 일찍 도착해 있었다. 인터케이프 버스 터미널은 딱히 터미널이랄 것도 없이 주유소가 주이고 그 주변에 여러 상점들이 모여 있는 장소였다. 관찰을 잘하는 하국 오빠는 주유소가 곧 이들의 '만남의 장소'라는 것을 파악했다. 우리나라의 휴게소처럼 상점이 주이고 주유소가 주차장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는 게 아니라, 주유소가 주이고 그 외부에 터미널과 휴게소가 부수적으로 딸린 느낌이었다.


터미널에는 우리 말고도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그중에 잔뜩 취해 무리를 지어 다니는 남자들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들은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술 취한 말투로 우리에게 빈정거리고 있었다. 모두 놀랐겠지만 나는 또 조금 더 놀랐다. 하국 오빠와 지석이가 있더라도 무서움이 가시지 않았다. 온갖 중요한 물품은 다 들고 있어 잃을 게 많았고 수적으로도 밀렸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보기에도 그들은 어리고 철이 없어 보였지만 이곳은 외국이니까 속수무책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하고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애를 먹고 있는데 곁에 앉아 있던 흑인 할머니가, 그 남자 무리에게 무어라 말했다. 그러자 그들이 빈정거리던 웃음을 지우고 행동가짐을 자제하는 것 같았다. 이후에도 계속 우리 주변을 맴돌았지만 그 흑인 할머니가 그들을 견제해 주셨다. 이방인을 겁주는 현지인과 이방인을 도우려는 현지인이 공존하고 있었는데, 도와주려는 현지인이 이긴 것 같았다. 그 할머니를 제외한 모두가 무심한 표정으로 있었는데 그 할머니만이 우리 일에 관여해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나는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그 할머니한테 심리적으로 의지했다. 


그 남자 무리가 지나가고 버스 시간이었던 저녁 10시 20분이 되었다. 그런데 버스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밤 10시가 넘었고 룬두에서는 숙소도 잡지 않았는데 버스가 오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또 그 할머니께 여쭤봤다. 인터케이프 버스 타려고 하는데 여기로 오는 거 맞냐고. 그 할머니는 기다리면 올 거라고 대답해주셨다. 그 분만 믿고 무작정 기다렸다. 그러자 인터케이프 버스 한 대가 왔다. 허나 우리가 탈 버스는 아니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또 기다리라고 주문했다. 그러자 정시보다 한 시간 늦게, 잠비아 리빙스턴으로 가는 버스가 왔다. 다행이다. 버스가 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지, 늦는 건 아무렴 괜찮았다.



얼른 인터케이프 버스 앞으로 달려갔다. 기사가 명단을 가지고 와서 우리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그리고 짐에 태그를 붙여 짐칸에 실었다. 짐칸은 캠핑카처럼 버스 뒤에 고리를 걸어 연결하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최악만 생각하는지, 버스로 이동하다가 나중에 이 짐칸만 사라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버스 승객 리스트와 여권을 확인하고 짐마다 태그를 다는 모습에,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게 일반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 리무진 버스에는 적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승객 개개인이 악의가 없더라도 가방이 비슷해서 다른 가방을 가져가는 사람도 생길 수 있으니 말이다. 한국은 치안이 좋아서일까? 물론 우리나라에서 버스를 탈 때 짐을 잃어버린 기억은 한 번도 없지만 짐마다 태그를 달아주는 게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가 배정됐다. 두 사람은 같이 앉고 나머지 두 사람은 따로 앉아야 했다. 원래 더 좋은 자리였던 하국 오빠가, 내게 자리를 양보해 예지와 내가 나란히 앉고 남자 두 명은 따로따로 앉아 가게 되었다. 이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었지만 하국 오빠한테는 엄청난 비극이었다. 하국 오빠는 옆 자리 여자분이 고구마 무스를 계속 먹어서 냄새 때문에 괴로웠다고 했다. 영화 「꾸빼 씨의 행복여행」에서 꾸빼 씨가 10번째 행복이라 말했던, 그 고구마 스튜였다.


비행기도 아닌 버스 뒤편에 화장실이 있다. 국경을 버스로 이동하는 나라의 버스는 이런 것이다.


자리에 앉자 버스가 저녁 내내 달렸다. 창밖에는 불빛이 하나도 없어서 오히려 창에 비친 내 얼굴만 보였다. 날이 밝자 주변이 드러났다. 뺨이 뜨거울 정도로 햇볕이 강렬해 버스 내부는 점점 가열되고 있었다. 어서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예상 도착 시간이 지나도 차가 멈추지 않았다.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도착은 언제 하는가?' 하고 있는데 지석이는 맵스미(MAPS.ME) 어플을 통해 현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역시 똑똑해!' 사실 예지랑 나는 잠비아 수도가 어딘지도 모르고 출발했다. 그런데 지석이가 지도를 보여주며 우리가 어딘지 알려주고 몇 시쯤 도착 예정인 것까지 다 알려주었다.


목표나 목적지가 없으면 인생이든 여행이든 조금 힘이 든다.
하지만 내가 가는 길이 어딘지, 나는 어디쯤 왔는지 알면
기다리는 게 무엇이 대수랴.


잠시 뒤 국경 지역에 도착했다. 짐을 두고 버스에서 모든 승객들이 내렸다. 출입국 사무소에는 국경 지역이라 군인들이 많았다. 나는 또 괜스레 위축됐지만 대위 출신 하국 오빠는 동료들 만나듯 제복을 살피는 모양이었다. 나미비아 사무소에서 심사를 마치고 잠비아 국경까지는 걸어서 이동했다. 북한과 통일되지 못한 한반도인으로서 국경을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는 게 조금 신기했다. 잠비아 사무소에서는 잠비아 단수 비자를 샀고, 그제야 버스를 다시 탈 수 있었다. 버스에 오르기 전에 버스 뒤에 짐칸이 아직도 매달려 있는지 살폈다. 그런데 짐칸이 국경을 넘으면서 사라졌다. 갸우뚱 의심이 됐지만 다시 길을 이어갔다. 조금 더 달려 드디어 리빙스턴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려는데 입구 앞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승객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알고 보니 택시 기사들이었는데 저 인파를 뚫고 버스에서 어떻게 내리지 할 정도로 갈급하게 손님을 구하고 있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구하는 것처럼 갈급했다. 그 장면이 너무도 강렬해 사진을 찍지 않았는데도 뇌리에 남았다. 짐을 찾으려 버스 주변을 서성일 때도 택시 기사들이 엄청 곁에 달라붙었다. 사람이 너무 많으니 버스 기사가 애써 나눠준 태그를 확인도 하지 않고 짐을 승객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택시 기사들의 호객 행위를 모른 척하랴, 짐 찾으랴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우리 짐이 나왔다. 다행히 중간에 없어진 짐은 없었다.


역할 분담이 제대로 되어 있다. 몇몇은 길을 찾고 나는 이들을 촬영했다.


우리는 호객 행위하는 잠비아 사람들을 피해 한산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제야 지석이와 예지가 스마트폰을 꺼내 지도를 보며, 미리 예약한 잠비아 숙소 위치를 확인했다. 처음엔 이 도시가 낯설어 몰랐는데 숙소는 걸어가도 될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하마터면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택시를 타고 갈 뻔했다. 우리는 모든 짐을 들고 숙소까지 걸어갔다. 이때 나는 죽는 줄 알았다. 카메라 같은 것들 때문에 내 짐이 나를 짓누를 만큼 많았는데 동행들이 혹시나 날 도와줄까 봐, 이 정도는 거뜬한 척 무진 씩씩하게 걸었다. 거기에 길 찾는 동행들 뒷모습이 멋져서 사진도 찍었다.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을 관찰하며 따라만 다녔는데 숙소에 도착했다. 레스토랑과 숙소가 같이 있는 곳이었는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국경을 이동하는 날이라 잔뜩 긴장해 있었는데 예약한 숙소에 도착하니 안심이 되었다. 우리는 체크인을 하고 씻었다. 신기한 게 샤워만 하면 수면과 상관없이 피로가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곤 숙소 내에서 함께 운영되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 현지 음식을 먹어본 일은 없지만 음식에 실패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유럽에서는 가끔 입맛에 맞지 않는 서양 음식을 먹는 경우가 있었는데 아프리카에서 먹은 서양 음식은 실패한 적이 없었다.


반나절 동안 국경 이동을 한 날이다. 렌터카를 이용해서 국경을 넘어가려던 초기 계획은 나미비아에 도착하자마자 수정됐었다. 장시간 이동하기 위해 미리 터미널에 가보는 등 시행착오를 줄이려 애썼다. 그러나 밤에 버스가 제시간에 오지 않아 염려됐고, 대기하면서 현지 청년들의 이유 없는 빈정거림을 듣기도 했다. 버스는 예정 시간을 훨씬 넘겨 잠비아 리빙스턴에 도착했으나 큰 탈 없이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다행한 일이었다.



[돌발상황 #18] 인터케이프 버스 터미널에서 젊은 남자 취객들에 둘러싸였다.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할머니의 제지로 그들에게 벗어날 수 있었다.


[돌발상황 #19] 인터케이프 버스가 제 시간이 오지 않았다. 아무런 알림 없이 한 시간을 더 기다렸고 결국 우리가 기다리던 버스를 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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