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여행 이야기 서른셋 @잠비아 빅토리아 폭포
빅토리아 폭포는 1855년 영국의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 당시 영국 여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폭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네 번째로 긴 잠베지강 중류에 위치한 이 폭포는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이다. 세계 3대 폭포인 이과수 폭포(브라질-파라과이-아르헨티나), 나이아가라 폭포(미국-캐나다), 빅토리아 폭포(잠비아-짐바브웨)는 신기하게도 모두 국경 지역에 위치한다. 폭포가 주는 교집합은 국경을 마주댄 나라들에 모두 경제적 이득을 주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여행자들에겐 여러 나라를 둘러야 폭포를 온전히 보고 오는 게 되니 이는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그래서 각 나라가 주는 뷰(View) 차이를 숙지하고 가는 것이 세계 3대 폭포를 즐기는 묘안일 것이다. 우리는 잠비아 단수 비자만 구매해 잠비아 쪽 빅토리아 폭포만 보기로 했다. 모두 보면 좋겠지만 짧은 일정을 고려한 것이었다.
시간이 없다. 들뜬 마음으로 폭포 옆 산책로 구석구석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폭포는 우리나라 장마철의 계곡물을 떠올리게 했다. 무엇이든 삼킬 듯 화를 내는 듯한 물줄기와 압도적인 물의 낙하 소리가 그랬다. 하늘에선 소나기 같은 것이 내렸다. 거대한 물줄기가 절벽 아래에서 되튀며 만든 수증기였다. 맑은 날씨에, 수증기가 공중을 차지하니 무지개가 떴다. 이곳 원주민인 콜로로 족은 빅토리아 폭포를 들어 모시오아툰야(Mosi-Oa-Tunya, 천둥 치는 연기)'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는 다소 무례하게 지어진 영국 여왕 이름 '빅토리아'보다 이 폭포를 더 잘 설명해주는 듯했다. 역시 주인이 지은 이름은 다르다.
압도적인 장관 앞에, 감탄 잘하는 사람들과 다니니 들뜬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곳은 신의 영역, 찬란했다. 물들의 아우성, 흥이 났다. 입술에서 계속 노래가 흘러나왔다.
"찬란 찬란 찬란되네~ 잔에 담긴 위스키처럼~"
언젠가 사람들과 이상형을 묻는 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키가 크고 작고, 피부가 하얗고 까맣고, 어떤 일을 하고, 관심사가 어떻고'라고 말하는 자리에서, 한 남자가 "같이 비를 맞아줄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자기는 비 맞는 것을 좋아해서 같이 비 맞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 처음 봤다'라고 어물쩡 넘겨버렸는데 속으로 무척 시(詩)적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때 이후로 비를 맞는 것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참고로 얘기하면 나는 '로망은 로망이지'하고 끝내버리는 사람이 아니다. 로망이 있으면 설렐 수 있으니까, "로망은 삶을 기대할 재미를 주지!" 하고 그것을 품고 간직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도 생활 속에서 대뜸 비를 맞고 다닌 적은 없었다. 갑자기 비가 내린다면 젖으면 안 될 것들을 생각하며 가방을 안고 머리를 숙여 비를 피해 다니기 바빴다. 그리고 왜 항상 가방에 우산을 챙겨 다닌 건지, 쓸데없이 대비를 잘했다.
그런데 이날 제대로 비 맞을 일이 생긴 것이다. 우리는 한국에서 색깔별로 맞춰간 우비를 꺼내 들었다. 폭포를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는 여러 군데였는데, 어떤 곳은 유난히 더 많은 비(!)가 내렸다. 우리는 소리를 지르면서 아이처럼 방방 뛰어다녔다. 지나가는 외국인이 있으면 더 소리 지르면서 다가갔다. 그리고 그냥 다 같이 얼싸안고 뛰어버렸다. 이곳에서는 물줄기와 소리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게 너무 재밌었다, 정신을 놔 버릴 수 있는 게. 번지점프 사이트를 찾다가 영업시간이 지난 걸 알고는 더 여러 번 이곳을 찾았다.
무엇도 시큰둥하게 반응하지 않을, 흥도 감상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비를 맞아서 더 신났던 것 같다. 나의 로망은 싱겁게 지나가지 않았다. 비 맞으며 지나가는 다리에서 외쳤다.
"우리 이 순간을 잊지 말고 살자!"
[돌발상황 #20] 아프리카 여행에서 역시나 큰 이벤트로 자리하고 있었던 번지점프. 번지점프 사이트를 찾았지만 영업시간이 지났다는 걸 알게 됐다. 계획했던 번지점프를 할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