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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Jul 08. 2021

많은 것을 신기해하던 너의 눈빛, 아직 무사하니?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 서른넷 @잠비아 빅토리아 폭포


해가 누울 자리를 고르고 있었다. 하국 오빠와 지석이는 이제 숙소로 돌아가서 쉬자고 했다. 택시 기사와 만나기로 했던 시간도 다 와갔다. 일정 상 우리는 피곤한 게 맞았다. 좋은 긴장감으로 계속 각성돼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가기 싫었다. 너무 아쉬웠다. 여기서 가면 이제 빅토리아 폭포의 '노을 지는'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출국일이 바로 다음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라니……'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찰나, 예지가 "우리 왜 가야 해. 진짜 한 번만 더 보고 가자. 한 번만!"이라고 하며 이미 빨개진 폭포 쪽을 향하고 있었다.


▲ "나는 마지막에 다다라 나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기로 결심했다." - 스코틀랜드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중학생 때부터 느낀 건데 예지랑 다니면 나의 내향성이 조금 극복되는 것 같다. 내가 이상해 보일까 생각만 하고 취하지 못하거나 수줍어서 뒤로 물러나 있으면 예지가 활기를 불어넣고 목소리를 나보다 더 크게 내준다. 그러면 나는 생각이 같으니 따라만 가면 된다. 당당해진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래서 이 친구와 함께 하는 일은 항상 신난다. 이해받으려는 노력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사실 나도 너무나 한번 더 보고 가고 싶었다. 무채색도 무지개가 되는 시간. 저녁놀이 석양에 탈 때 풍경은 연지곤지 화장을 한다. 사진이 제일 잘 나올 때이기도 하다.


"(국립공원) 개장 시간 끝나도 물 안 잠그지? 계속 흐르는 거 맞지?" 하고 농을 치면서 나도 예지를 따라나섰다. 그러자 남자들도 자연스레 따라왔다. 예지를 뒤따라가 본 장관은 한낮에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보던 폭포와는 또 다른 정취를 자아냈다.


문득 아름다운 것을 마주하면 시간을 늘려 멈춘 듯 가까운 것도 먼 곳을 보듯 한숨이 나오고 멍해진다. 동행들은 이곳의 기운을 받아가려는 사람처럼 말이 없어졌다. 나는 그런 그들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가끔 카메라 앞에서 쭈뼛거리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내가 찍고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들의 감격스러운 표정을 보면서 다시금 빅토리아 폭포가 좋아졌다.



아름다운 것들 앞에서 일상을 생각한다.

시작과 끝 그 사이는 모두 일상이 되고 반복된다. 무엇이 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그게 또 일상이 되면 감흥은 사라진다. 시간은 유한하고 일상은 매우 견고하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어제와 다르지 않음을 느끼며 산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 해서 내가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내가 무료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정말로 정말로 간과해서는 안 될 것들이다.


그 견고해진 일상에 편안함을 느꼈으면 좋으련만 나는 내가 점점 기대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아까웠다. 인생의 변곡점을 만들어야겠는데 해야 할 것들의 우선순위가 잡히지 않아 어지러웠다. 산다는 게 무언가 계속 단정 짓는 과정 같았다. 한 사람의 성격을 단정하고 가능성을 단정하고 인생의 과업과 걸어갈 길을 빤하게 정해두는 것 같았다. 내 삶의 주인은 나인데 어느 시점부터 주도권을 빼앗긴 듯했다. 스스로 인생을 컨트롤할 수 있는 여지는 없는 걸까? 회사생활을 하며 나의 좋은 점들이 계속 거세되는 것 같았다. 누가 나를 좀 더 기대해 줬으면 좋겠는데, 나 아직 힘이 남았는데, 가진 것들을 다 펼치지도 못 했는데…… 반복하기만 하면 되는 업무들 앞에서 목소리를 줄이고 튀지 않기를 스스로 주문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에서 그 시간을 장악하며 지내지 못하니 점점 무기력해졌다. 그 사이에 좋은 눈빛을 잃어버렸다. 많은 것을 신기해하던 그 눈빛 말이다.


해서 이번 여행은 좋은 눈빛을 찾는 여정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눈빛은 마음과 같은 거라서 마음을 먹는다고 마음대로 좋은 눈빛이 장착되거나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자극적인 곳으로 와야 했나 보다. 잠시 휴가를 가서 재밌게 놀고 쉬는 시간이 아니라 점점 딱딱해지는 나를 깨부수어야 하는 절박한 시간이어야 했다. 편안함은 말 그대로 편하긴 하지만 내가 성장하고 있긴 한 건지 길들여지지 않았는지 계속 날 건드리며 괴롭혔다. 허나, 새로움은 설렘을 가장한 불안함을 주지만 내가 얼마나 도약했고 한계를 넓혔는지 가늠하기를 쉽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자꾸 새로움을, 여행을 꿈꾸게 되나 보다.


이병률 작가의 책 「내 옆에 있는 사람」에는 '눈빛'에 관한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가 나에게 도달하는 순간, 눈빛은 살아나게 된다.
자신의 인생에 겉돌지 않겠다는 다짐은 눈빛을 살아나게 하니까.
생의 애착을 담은 눈빛은 명료한 빛과도 같아서
절망 속에서도 우리를 연명하게 한다.



아직도 많은 것이 신기해서 정말이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좋은 눈빛들을 챙겨 폭포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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