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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Jul 08. 2021

최고의 팀의 조건, 우리는 안전하고 서로 이어져 있다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 서른다섯 @잠비아 리빙스턴


빅토리아 폭포 국립공원을 빠져나왔다. 택시 기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차에서는 여전히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지치지도 않고 또 몸을 흔들었다. 그녀가 피식 웃었다. 해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리빙스턴 시내로 들어섰다. 택시 기사에게 양해를 구해 시내 마트와 주류 가게에서 잠깐 차를 멈추었다. 저녁에 먹을 라면, 통조림, 과일 등을 공동경비로 샀다. 주류는 하국 오빠가 기분을 냈다. 우리 만남의 시작과 끝, 하국 오빠가 크게 한 턱씩 쏜 셈이 됐다. '오빠, 잘 먹겠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각자 방에서 씻고 다시 모여, 마지막 저녁을 같이 하기로 했다.



이즈음 아프리카, 남미 쪽에서 지카 바이러스로 사망 사고가 많아 우리에게 모기가 참 무서운 존재였다. 나미비아에서 잠비아 쪽으로 올라오니 모기 개체수가 무척 많아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숙소 침대에도 모기장이 옵션이 아니라 필수로 설치돼 있었다. 우리는 모기에 물릴 것을 우려해 수시로 소스라치게 몸을 떨었고 방에도 모기약을 대대적으로 뿌렸다. 또 출발 전 의약품 담당이었던, 예지가 모기 기피제 스티커를 하나씩 손목에 붙여 주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모기를 30마리째 잡고 있던 남자 방으로 헤쳐 모였다. 좀 전에 사 온 음식과 그간의 식재료들을 모두 한 데 모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각자 할 분량의 일을 찾아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틈새 노트북을 켜 동행들의 사진을 모두 내 외장하드에 백업하고 있었다. 예지와 나는 다음 날 한국으로, 하국 오빠와 지석이는 나머지 아프리카 여정을 지속할 참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 남자의 개인 사진도 같이 백업했다. 워낙 데이터를 중요시하는 내가, 두 남자가 여행 중 핸드폰을 도난당하더라도 여행 전반부 사진은 보관해 주겠다고 했다. 또 모두 한국에 돌아오면 각자의 외장하드에 잘 정리된 사진첩을 공유해 주기로 했다. 난 안심이 되었다.

모두 각자의 도리를 다 하고 탁자에 둘러앉았다. 하국 오빠가 늘 그랬듯 으레 군인처럼 "총 인원 보고 4명, 모두 아픈 데 없고?"로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밀가루풀 냄새가 나는 아프리카 표 라면과 시큼한 과일, 긴장을 풀어주는 맥주와 보드카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인상 깊었고 너무 좋았고 고마웠고 함께 해서 행복했다는 이야기를 나눌 참이었다.



우분투 팀은 참 잘 모였다. 개개인의 성격과 장단점이 모두 달랐다. 그래서 서로의 부족한 점을 상쇄시키며 각자가 잘하는 것만 하면 여행이 진행되었다. 못 하는 것은 뒤로 물러나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채워주는 상대가 있기에 눈치 보지 않아도 됐다.


이를테면 하국 오빠는 세세한 예약, 계획을 부담스러워했다. 대신에 나는 비행기 표, 비자 구입 등을 동행들 것까지 같이 처리했다. 지석이는 만남 첫 문자부터 엑셀로 계획표를 만들어 내게 보내왔을 정도로 계획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 셋 모두의 계획을 대신했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사진 촬영에 대한 센스가 부족하다. 예지랑 내가 지석이를 대신해 갖가지 카메라로 모든 순간을 찍어 주었다. 예지와 나는 운전을 못 하거나 미숙하고 캠핑을 해보지 못했다. 하국 오빠는 군인이었어서 이런 부분에 경험이 많고 직접 할 수도 다른 사람에게 행동지침을 일러 줄 수도 있다. 지석이는 모든 일에서 첫 번째로 하는 것을 자처하지만 하국 오빠의 말도 잘 따른다. 나는 돌발상황이 오면 멘붕이 오는데 하국 오빠는 상황을 정리해 우선순위를 정한다. 또 나는 길치인데 나머지 세 명은 지도를 잘 봐서 내가 따라다니기만 해도 된다. 하국 오빠와 나는 돈 계산,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데 이 부분은 예지와 지석이가 나눠 처리해 준다. 나는 To do list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개인주의적인 면도 많았는데 하국 오빠와 예지와 지석이가 먼저 양보해주고 '함께'의 가치를 알려주었다.


만약 부족한 점을 용납하지 않는 사이었다면 어땠을까? 지석이가 운전을 하는데 사진 촬영에도 욕심이 있었더라면 자기가 운전만 하느라 사진으로 담지 못한 순간들에 불만을 가졌을 수도 있다. 만약 나와 하국 오빠가 영어에 자신이 없는데 예지와 지석이가 '왜 우리만 갈등 상황에 직접 나서야 하냐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면 서로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래에 바퀴 빠진 차량을 밀고 있을 때 "너는 왜 사진만 찍고 있냐고, 와서 같이 밀어"라는 말을 내게 했다면 난 눈치 보느라 그 많은 자연스러운 장면들을 담지 못했을 것이고, 잠을 줄여 밤새 별 사진을 찍었더라도 이를 공유하지 않고 혼자 간직하고 싶었을 것 같다.


그런데 각자가 자신이 잘하는 것만 하면 되어서, 여행을 가서도 굳이 눈치를 본다거나 못 하는 것을 애써 잘하려고 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하고 각자 잘한 것은 서로에게 나누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나눴다 하더라도 내가 받은 배려가 많아 도통 아깝지가 않았다. 모두 다른 사람들이 모이더라도 서로의 틈을 채워주고 각자의 빛나는 부분을 존중하면 그 팀은 굉장한 시너지를 내게 된다. 도서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에서도 집단이 성과를 내는 데는 '우리는 안전하고 서로가 이어져 있다'라는 믿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분투 팀에 딱 적용되는 말이었다.



나는 우분투 팀과 함께 생활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최고의 팀이 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첫째, 일단 자신의 강점보다는 부족한 점을 '먼저' 알아야 한다. 부족함을 아는 사람은 부족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다. 강점이 있음에도 겸손하기로 작정한 사람이다. 이 겸손한 사람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알기에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도 완곡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둘째,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보다는 강점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부각하면 그 사람을 위축되게 하지만, 상대의 강점을 알고나면 그 사람이 윤이 난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상대를 이해하고 기다리게 된다. 강점과 부족한 점을 마구 섞어 공평하게 나누려 하지도 않는다. 잘하는 걸 잘하도록 일을 분배할 뿐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팀은 안전하고 서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채우려 애쓰기보다 서로가 채워주는 부분에 감사함을 느낀다.

이것이 반대가 되면 곤란하다. 자신의 부족한 점보다는 강점을 앞세우고 다른 사람의 강점보다 부족함을 먼저 보는 사람은, 교만하기가 쉽다. 자신의 강점으로 상대를 압도할 수 있을 때 혼자 전진하려 하며 부족한 상대에게는 불만을 드러낸다. 결국 완전할 리 없는 개개인 안에는 불안이 쌓인다. 서로의 부족함은 보완될 수 없으며 공유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판단이 쌓일 때 ‘다양성’이라는 가치는 훼손되고 최고의 팀에서도 멀어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용서받아본 경험으로 누군가를 용서하곤 한다. 다양성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부족할 때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많아야, 이 이치를 알 수 있다. 나는 아프리카로 출발할 때는 몰랐다가 여행 도중에 이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동행들의 비행기 티켓팅을 하고 비자를 대신 신청해줄 때는 몰랐다가, 동행들이 사륜구동 차를 운전하고 어두운 곳에서 길을 찾고 경찰서에서 영어로 소명할 때야 알게 되었다. 여행중에 더 열심히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사실도.



각자의 장단점이 겹치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의 차이점이었는데 공통점이어서 좋았던 것도 많았다. 모두 파이팅이 넘쳤다. 까탈스럽게 구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도 대접받길 바라지 않았다. 전날 아무리 늦게 자고 술 한 잔을 했더라도 모두 일찍 일어나 시간 약속을 지켰다. 피곤해도 다 같이 깨어있고 즐거울 때도 다 같이 춤추고 노래했다. 여행에 체력을 쏟아낼 수 있는 흥부자들이었다. 또 오지 여행을 하고 싶은 것도 같았다. 아프리카 여행을 준비했을 때 주변에 아프리카로 여행을 가는 사람이 흔치 않아서 나를 신기하게 보는 사람도, 다소 특이하게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나중에 아프리카에 한 번 더 와보고 싶다느니, 이미 남미 여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여길 왔다느니, 다음에는 아마존을 가자느니, 남극도 가봐야 하는데……"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이 안에서 나는 제일 꿈이 작았는데 그러다 보니 편안했다. 에너지가 비슷한 사람들, 좋은 기운을 주는 사람들, 내 안에 갇히지 않도록 만드는 이 사람들 안에서 내 생각을 말하기가 자유로웠다.


위에서 나의 장점을 말하지 않은 게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내가 이 여행을 기획하고 이 사람들을 하나둘 모은 것이다. 선착순으로 시간 되고 돈 되는 사람을 모은 게 아니다. 내가 사람들을 추리고 공석이 생겼을 때 다시 모았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아무도 도망갈 수 없게 비행기 표를 대신 끊어 버렸고 이 그룹에 '우분투'라는 이름을 붙였다. 처음 만났을 당시 군인이었던 하국 오빠는 여행 전부터 내게 '황 대장'이란 칭호를 주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다 이름을 부르면서 나한테만 '대장'이라 부르는 게 맨 앞에 세워지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는데 이제야 왜 내가 대장이라 불렸는지 알 것 같다. 이렇게 조화를 이루는, 좋은 사람들을 모으는 일을 내가 했기 때문이다. 막상 여행지에 와서는 겁이 많아져서 역할이 축소됐지만 이 여행이 태동하려 할 때 내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는 걸, 여행 마지막 날에는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다.


대자연을 여행하며
우리가 정말 우주 전체의 점만 한 존재임을 알았다
우리는 우주 전체의 점만 한 존재고
아등바등 살아야 점인데
그렇게 점만 하면서
우주 전체에서 유일하고
그래서 아주아주 소중하다
그렇게 점만 해서
무한한 공간에서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먼지 덩어리들이다

나와 당신과 당신과 당신을 모두 합쳐도
이 우주 같은 대자연에서는 여전히 점이겠지만
점만 한 나에게는 점만 한 당신들 덕분에
온 세상이 아낌없이 신기하고 재밌었어요


함께하면서도 이 시간을 그리워하다 마지막 밤이 다 갔다. 다음 날 오전 빅토리아 폭포에서 번지점프하는 것을 다시 시도해보기로 하고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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