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이면 긴장을 풀고 좀 흐트러져도 되련만 우리는 굳이 부지런을 떨어서 일찍 일어났다. 늦게 자도 일찍 일어나지만 일찍 잤으니 일찍 일어났다. 아침에 빅토리아 폭포에서 하는 번지점프를 시도해보기로 한 것이다.
역시나 어제 택시 기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녀의 차를 타고 번지점프 사이트로 출발했다. 매우 이른 아침이어서 번지점프 관계자를 픽업해 가느라 잠비아 시내를 둘렀다. 번지점프 관계자가 차 가까이에 왔고 번지점프에 쓰일 줄을 챙겨 차에 타려 했다. 택시에 여분의 좌석이 없자 그는 자연스럽게 트렁크에 올라 누웠다. 예상 밖의 전개였다. 형식은 신경 쓰지 않는 게 쿨해 보이기도 하고 자유로워 보이기도 했다.
나는 생각보다 떨리지 않았지만 왠지 사진/영상 촬영이 다 귀찮아졌다. 그런데 예지가 지치지 않고 우리의 모습을 또 다 카메라로 담고 있었다. 나도 어디 가서 촬영 많이 하는 걸로 빠지지 않는데 예지의 에너지가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나보다 더 많이 찍는 애는 네가 처음이야'
동행들이 자꾸 내가 겁나서 말이 없어졌다고 하고 지금 많이 떨리는지도 물어봤다. 나는 진심으로 생각보다 그렇게 떨리진 않았다. 사실 번지점프는 분위기에 휩쓸려서 한다고 했지만 내 안에서 동의를 얻진 못했던 액티비티였다. 그래서 '내가 설마 그걸 하겠나, 겁나서 결국엔 못 뛰어내리거나 안 뛰어내릴 거야'라고 생각해서 담담했다. 진짜 담담했는데 다들 내 말을 믿지 않아서 다소 억울했다. 그런데 카메라가 귀찮고 자꾸 혼잣말을 하는 걸 보니 겁이 났던 것 같다, 내가 진짜로 도전할까 봐. 가끔은 스트레스가 머리보다 몸에서 더 반응하지 않는가. 갑자기 욕도 했다. '미친놈아, 이걸 왜 해!!!'
택시가 빅토리아 폭포에 도착했고, 트렁크에 구겨져 있던 번지점프 담당자가 다른 지프차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곳부터는 지프차를 타고 번지점프 사이트로 이동했다. 그런데 그 사이트는 빅토리아 폭포의 뒤편 외진 곳이었다. 일단 뷰에 실망했다. 전날은 생동감 넘치는 폭포를 봤는데 이곳은 물살이 초라해 보였다. 번지점프하는 장면을 모두 촬영하려 했는데, 이곳은 우리가 상상했던 배경이 아니었다. 그리고 담당자가 어깨에 메고 있던 번지점프 줄을 꺼냈는데 그 줄에 생명을 맡기기에 신뢰가 가지 않았다.
우리는 결국 이곳에서 번지점프를 하지 않겠다고 하고 다시 지프차에 탔다. 그러자 담당자는 다른 번지점프 사이트로 이끌었다. 그곳은 잠비아-짐바브웨 사이에 위치한 다리(브릿지)였다. 우리는 잠비아 단수비자만 받고 짐바브웨 비자를 받지 않아서 이 다리에 가볼 수 있을 거라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번지점프를 이유로 담당자는 우리가 이 다리를 건너볼 수 있게 허용했다.
다리를 지나며 아래를 훔쳐보았다. 나는 자꾸만 엉덩이는 뒤로 빼고 강을 빼꼼히 쳐다보게 되었다. 이 다리 위로 트럭이 지나가면 다리가 덜덜 흔들렸다. 여기서 도대체 어떻게 뛴단 말인가. 물살이 너무 세서 물이 분노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중이염을 앓아서 물을 늘 피해 다녔다. 수술을 두 번 했는데도 낫지 않아서 평생 귀에 물이 들어가는 건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빠지면 귀는커녕 목숨도 부지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 번지점프 사이트에는 관계자가 한 명 정도만 있었다. 우리가 너무 이른 아침에 도착해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았던 것이다. 관계자는 조금 더 기다려야 번지점프를 할 수 있다고 알려 왔다. 그러나 만약 기다려서 하게 되면 예지와 나의 출국 비행기 시간에 빠듯해져 일정에 지장이 생길 것 같았다. 아…… 나는 '어쩔 수 없이' 번지점프를 못 하게 되었다.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빅토리아 폭포에서 하는 번지점프는 무려 111M로 세계에서 손에 꼽힐 만한 점프대 높이를 자랑한다. 아프리카 동행들이 처음 모였을 때 가위바위보를 해서 번지점프 뛰는 순서를 정할 정도로 이 여행에서 의미를 둔 액티비티였다. 남자분들, 특히 지석이가 꼭 해보고 싶다고 소원한 곳이기도 했다. 나와 예지는 '어쩔 수 없이' 못 하지만 남자들은 이 경험을 꼭 해보고 왔으면 했다. '이곳에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다시 올 수 있기나 할까?' 하고 생각해봤을 때 우리 모두 재방문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나와 예지는 "우리 출국은 신경 쓰지 말고 꼭 뛰고 오라"고 했다. 그런데 하국 오빠와 지석이의 생각은 달랐다. "그래도 우리 다 마지막인데 너네 가는 길 봐야지" 하며 도전을 접고, 우리를 배웅하기로 했다.
나는 여행지에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돈이든 시간이든 상관하지 않고 꼭 하고 오는 스타일이라 나머지 동행들이 이 액티비티에 도전하지 않은 게 너무 아쉬웠다. 예지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우린 진짜 괜찮은데…… 두 사람이 번지점프 꼭 했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여행지에서 남자들이 반복적으로 보여준 행동은 상대를 배려하는 것, 함께에 의미를 둔 것이었다. 목적지향적인 나에게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미루고 같이 움직이는 것에 더 의미를 두는 이들의 행동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아쉽기도 했지만 감동적이기도 했다.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게 했다. 나는 그동안 함께하는 것을 등한시해서 개인적으로든 회사에서든 외로움을 타지 않았나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함께 한다는 것은 이렇게 좋은 것인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 다 무서워서 내 뒤로 숨은 것 아닌가'하는 의혹도 들었다. 다들 나보고 "혜원이 겁먹었다"라고 놀렸지만 자기들도 무서웠는데, 나를 놀리면서 긴장을 푼 것 아닌가 생각했다. '다들 나 때문에 살은 줄 아쇼!'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 표정이 환해지고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돌아가는 길에 원숭이가 있었는데 다시 사진/영상을 촬영할 맛도 났다. 짐바브웨에서 잠비아로 넘어가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가장 기대했던 순간은 시답게 맞이하고 또 맘 놓고 있으면 환희를 주는, 여행이 가르친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그동안 내 계획대로 여행이, 인생이 풀리지 않아서 잔뜩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런데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건 이렇게 좋은 일이었다. 웃음이 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