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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Jul 09. 2021

아프리카 여행, 잊지 못할 순간 BEST 10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 서른여덟

[장면 하나] 1:9로 펼쳐졌던 땅과 하늘의 비율

처음 나미비아에 도착해서 공항에 빠져나왔던 순간을 기억한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수평선과 지평선을 봤지만 이곳은 하늘이 온통 다인 것 같았다. 땅과 하늘의 비율이 무려 1:9로 나뉘어 있었다. 그즈음 한국은 미세먼지가 사회적 이슈였는데 해외로 나가면서 기대한 것 중에는 맑은 공기도 있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큰 하늘을 보게 되니 본 적도 없는 이곳의 하늘을 내내 그리워한 기분이 들었다.




[장면 둘] 세시림 가는 밤길(처음 본 은하수와 길을 막던 물 웅덩이)

해가 진 뒤 빈트후크에서 세시림으로 이동하던 날을 기억한다. 초행길인데 어두운 비포장 도로를 달리고 있으니 '한국에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하고 걱정도 됐었다. 그렇게 위축돼 있는데 창밖을 보니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있었다. 이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은하수를 보았다. 영화관 1000개를 합쳐둔 상영관의 관객이 된 것 같았다. 이 길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도로를 막고 있던 큰 물 웅덩이 었다. 하국 오빠의 지시와 지석이의 운전 실력으로, 단번에 이곳을 통과했다. 차가 흙탕물로 뒤덮였는데 다들 유쾌해했다.

렌터카 위로 별무리가 덮여 있던 하늘과 길을 막던 물 웅덩이 통과했던 일 때문에 '세시림 가는 밤길'이 앞으로도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다.




[장면 셋] 우리를 도와주었던 나미비아 사람들

낯선 이를 잘 알지 못하면 경계해야 할 뿐이다. 길 위에서 만난 나미비아 사람들을 대부분 경계하는 마음으로 만났다. 어두울 때 만나서 더 그랬다. 하지만 경계한 마음이 무색하도록 이들은 친절하게 우릴 도와줬다. 세시림 가던 길 가게에서 길과 숙소를 알아봐 준 부녀자들, 세시림 캠핑장에 입장할 수 있게 도와준 할아버지 관리인, 역시 세시림 캠핑장에서 텐트를 구해준 아저씨, 레스토랑에서 불을 빌려주던 사람들, 에토샤 국립공원 가는 길에서 길을 안내해준 트럭 운전사.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고 신경 써 준 그들에게 감사하다.




[장면 넷] 사막에서 나오는 길에 개인 하늘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 나미브 사막으로 향했던 날이다. 날이 흐려 상상하던 사막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중국의 황사 바람 실사판을 보러 온 것 같았다. 아쉽지만 가이드와 약속한 시간이 있어 가이드 차량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하늘이 조금씩 개이고 있었다. 해가 비치니 내가 꿈꿔왔던 사막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났다. 모래의 고운 결이 다 느껴졌다. 마지막에 본 사막의 아름다운 결이 생각난다.




[장면 다섯] 희망이라 불렀던 길

세시림에서 스바코프문트로 가는 길은 360도 아무것도 펼쳐져 있지 않고 우리 차량만이 존재하곤 했다. 운전석 전면에는 태양이 있었는데 그 빛을 보며 따라가면 스바코프문트가 나오는 거였다. 나는 그 빛이 희망 같았다. 그래서 그날 내내 스바코프문트 가는 길을 '희망으로 가는 길'이라 명했다. 그 길 위에서 동행들과 자신의 꿈에 대해 말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그런 질문들을 좋아한다. 360도 아무것도 펼쳐져있지 않은 땅처럼 아무 편견이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꿈에 대해 말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장면 여섯] 스바코프문트의 노을

스바코프문트는 너무 아름다운 걸 보면 자꾸만 한숨이 나온다는 걸 알려준 장소다. 한숨이라는 게 상황이 답답하고 부정적인 기운이 돌 때 하는 행동인 줄 알았다. 그런데 너무나 아름다운 걸 보면 그걸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어서 크게 숨을 내뱉는 행위라는 걸 이곳에서 알게 됐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스바코프문트의 붉은 노을이 아름다웠다.




[장면 일곱] 누군가 우리를 도와주는 것 같았던 에토샤 국립공원 가는 길

에토샤 국립공원 가는 길, 우리는 또 밤에 달리고 있었다. 한가운데서 길이 막혀 더 이상 진입할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봐도 관리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끝났다고 선언한 순간 어둠 속에서 라이트 하나가 생겼다. 트럭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길도 찾고 그날 밤 묵을 숙소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렇게 상황을 풀어간 게 단순히 행운이 아니라 누군가 우리를 도와주고 있을 수 있겠단 생각이 처음 들었다. 이때의 경험은 내가 종교에 관심을 갖는데 영향을 주게 되었다.




[장면 여덟] 야간 게임 드라이빙, 평화로운 코끼리 가족

에토샤 국립공원 내 야간 게임 드라이빙을 할 때이다. 코끼리 가족이 워터홀에서 물을 먹고 있는 장면을 봤다. 코끼리 가족 위로는 달 하나와 별무리가 있었다. 카메라로 한 프레임에 담지는 못했지만 그 장면이 더없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동화 같은 순간이었다.




[장면 아홉] 바쁘게 먹는 라면

야간 게임 드라이빙을 마치고 체온이 가장 많이 떨어졌을 때 라면을 먹었던 게 생각난다. 은박지로 냄비를 만들고, 종이 그릇을 장작으로 태우고, 부채질을 해야만 끓여지는 라면이었다. 가진 재료를 모두 투입해서 쉬지 않고 움직이며 먹어서 재밌었다. 몸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라면을 이렇게 먹을 수 있다는 게 한가득 추억이 되었다.




[장면 열] 빅토리아 폭포, 아이처럼 뛰어놀았던.

빅토리아 폭포에 다다르자 어마어마한 물줄기 소리가 들었다. 그때부터 흥분 상태였다. 물줄기에서 되튄 수증기를 비처럼 맞으며 빅토리아 폭포 공원을 뛰어다녔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 순간을 잊지 말자!"라고 외쳤다. 잊을 수 없는 인생의 한 순간이 되었다.



인생은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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