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아주다 Jul 09. 2021

일상으로의 초대

아프리카 여행 그 후 이야기 서른아홉 @한국

서울에서 아침,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행 가서 내내 각성돼 있었기 때문에 일상에 돌아온 날도 마치 여행하는 것 같았다. 다만 조식을 먹지 못 했고 늘 차 안을 꽉 채우던 동행들 없이 나 혼자 운전해 출근하고 있었다. 360도로 쫙 펼쳐졌던 비포장 도로는 서울에선 매끈하게 다져져 먼지 날릴 일은 없었지만 양 옆 빌딩들로 인해 하늘이 제 가진 것보다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도 기분만은 굉장히 상기되어 있었다. 불안했던 여행을 마치고 와서이기도 하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일상으로도 이어진 것이다.

늘 여행을 장기로 가서 돌아갈 회사가 있는 채로 여행해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어 금의환향하는 것 같았다. 휴가 후 회사 분들에게 여행 선물을 나눠드리는 게 난 왜 그렇게 쑥스러웠는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내 업무를 대신해주신 분들 책상에 쪽지와 작은 선물을 놓아드렸다.

강렬했던 11일간의 휴가, 너무 큰 걸 보고 와서 뭔가 크게 바뀌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바뀐 건 이 정도였다. 평소 차 타고 지나가던 도로 공사 구간이 조금 정리되어 있었고 회사 상사 분의 머리가 커트되었으며 나의 옛 동아리 후배가 회사에 입사해 있었다.



이를 제외하곤 크게 달라진 건 없었지만 나는 미세하게 변해 있었다. 그 세 가지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첫째, 세상은 넓고 또 넓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후발 여행을 이어간 아프리카 여행 동행들이 계속 여행 사진을 보내주었다. 케냐, 탄자니아 사진을 보내줬을 때는 '여전히 사파리고 여전히 아프리카네' 하며 압도적인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이집트 사진을 보내줬을 때는 그곳에 있는 그들이 부러워져 속상할 지경이었다. 이집트 피라미드나 아부심벨 신전은 얼마나 웅장했던지 사람이 만든 문명이 사람을 우습게 만드는 것 같았다. 특히 내 곁에 섰을 때 컸던 사람들이 피라미드의 돌무더기 하나보다도 작아서 '피라미드는 도대체 얼마나 큰 것인가, 실제로 보면 무슨 느낌이 날까' 상상하게 만들었다. 그걸 보면서 한 대륙의 대자연과 문화를 흠뻑 느끼기 위해서는 대륙마다 두 달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나는 아프리카의 발톱만 보고 왔다는 것이! 그렇다면 다른 대륙은 얼마나 대자연이며 얼마나 넓을까. 여행은 가면 갈수록 더 궁금하고 새 지평이 열리는 것 같다. 이곳을 가봤으니 '이만하면 됐다' 하는 게 아니라 안 가본 '거긴 어떨까'하며 '세상 넓음'을 체감하게 됐다. 이 아프리카 여행은 후에 다른 대자연 여행을 불러일으켰다.


둘째, 종교에 관심이 생겼다.

관심이 생긴 이유는 두려움의 크기를 줄여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지독히도 부러워서, 또 아름다움을 마주할 때 감사할 대상이 있었으면 해서였다. 대자연이 불러일으키는 경외심, 우주적인 느낌을 평상시에도 받고 싶었는데 그것의 답이 '신의 존재를 느끼며 사는 것'이라고 생각에 도달했다.

여행 출국 날에 새벽예배를 갔다 온 하국 오빠를 기억한다. 그때 여행 준비를 더 하지 않고 교회를 다녀왔다는 말에 정말 놀랐었다. 하국 오빠는 기내 안에서도 달랐다. 미니 성경을 꺼내 들어 줄도 긋고 메모를 했다. 이렇게 신실한 신자라니. 운동만 할 것 같이 생겼는데(?!) 내내 그 작은 성경을 들고 골몰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예전이랑은 다르다며 새 사람이 됐다고 했다. 여행지에서는 또 어땠는가 하면 캠핑 사이트에서 십자가를 발견하고 감격했다. 시시때때로 하나님을 소환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며 감탄할 때도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외쳤고 우리가 백방으로 노력했는데도 길을 잃고 다시 길을 찾았을 때도 "간증 거리가 넘친다"라고 했다. 보통 비신자 앞에서 종교 얘기를 잘하지 않지 않나? 나와 사고 체계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신앙인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본 느낌이었다. 그런데 궁금했다. 무엇이 이렇게 키가 큰 사람으로 하여금 머리를 조아리고 손을 모으게 만들었을까? 무엇 때문에 신을 자신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걸까?

하국 오빠가 신을 증거 하는 말을 자주 하니 예지도 조금씩 종교 얘기를 하곤 했다. 예지가 신앙을 갖고 있단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내게 직접적으로 종교에 대해 얘기한 적은 별로 없었다. 내가 비신자로서 교인들을 존중하는 것처럼 예지도 교인으로서 비신자인 나를 존중해주었던 것 같다. 아예 둘이 만났을 때 그건 화두 거리가 아니었다. 중학교 때 하교하는 동선에서 잠시 예지가 다니는 교회에 들렀을 때도 나는 교회 내에 비치된 통기타 소리에만 관심이 쏠려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여행을 하면서 내가 아무리 마음이 심약하더라도, 무서워해야 마땅할 때도 예지는 담대해서 몹시 부러웠다. 나는 불안함이 잠재워지지 않아서 아프리카는 다시 안 오고 싶다는 생각을 내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격이나 성정의 차이가 다가 아닌 것 같았다. 예지가 나보다 여행 경험이 많다고 해도 아프리카 대륙 여행은 우리 모두 처음이 아닌가. 어떻게 이런 상황들에 평정심을 유지하는지 궁금했다. 예지의 한 마디 "그 분과 함께 하니까!"가 나를 흔들었다. 나는 혼자 다녀서 벌벌 떨고 있는데 이 친구는 누군가와 동행하고 있다고 했다. '믿을 구석이 있구나. 그래서 이렇게 처음 맞는 상황에서도 겁이 덜하구나.'

게다가 하국 오빠가 '쿵!' 하면 예지가 '짝!' 하며 신에 대해 은유적으로 말할 때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었다. 정말 신이 있나? 혹시 신이 있다면 나도 이 정도쯤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국에 돌아와서 '신이 있는 건지'에 대한 질문이 휘몰아쳤던 것 같다. 그 전에는 내가 무신론자인지, 유신론자인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할 정도로 이 부분에 대해 사유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교회랑 성당이 뭐가 다른지, 신의 명칭이 하나님/하느님이 따로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아예 종교에 대해 생각하며 산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 번 궁금해지니 내 주변을 배회하고 있던 종교적인 힌트들이 수집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내가 회사에서 담당하던 콘텐츠 중에 NGC 종교 다큐 「모건 프리먼의 스토리 오브 갓」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여행 가기 바로 직전에 이 다큐를 서비스 하고 갔다. 서비스 전 콘텐츠 검수를 하며 처음-중간-끝을 보는데 자막 글귀들이 와닿아 '이거 나중에 한 번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세상의 모든 종교를 언급하며 종교적 삶의 의미를 통찰하는 내용이었다. 종교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인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내용이 많아 괜찮아 보였다.


사내에 개신교 모임이 있었는데 그분들을 한 종교로 묶지 않아도 느껴질 만큼 그분들만의 특성이 있었다. 그건 바로 소외된 사람 없이 위아래 사람들에게 모두 잘 대해주는 것이었다. 윗사람한테만 잘해주면 몰랐을 텐데 아랫사람들한테도 잘해주시니 이분들만의 감수성이 있는 것 같았다. 나도 크게 티 내지는 않았지만 이 분들 덕분에 회사 생활 중 마음이 따뜻해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 한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저분들은 교회에서 뭘 배우길래 저런 선한 분위기를 내시는 걸까? 교회 문화는 뭐가 있는 걸까? 나도 끼고 싶은데 종교가 없네.' 이 분들로 인해 사내에 어른다운 어른들이 많았고 또라이 보존 법칙에 의해서 '회사 분들 중 좋은 분들이 많다면 내가 또라이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또 퇴근 후 공연을 많이 보고 다녔는데 그렇게 많이 보러 다니게 된 계기가 된 가수가 있었다. 홍이삭이라는 분이다. 공연을 통해 그 가수가 써 내려간 가사들을 노래로 듣는데 이 가수의 고운 성정이 느껴졌다. 남자가 아름답다고 느껴진 적은 처음인 무대였다. 남자도 남자지만 미디어를 통하지 않고 직접 본 사람 중에 아름답다고 생각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분의 공연이 끝나고 전 곡을 다 찾아들었는데 그중에 CCM도 있었다. 그래서 그 CCM도 들었다. 교회는 안 나가지만 '교회 오빠'는 정말 내 이상형이구나 싶었다. 이 분이 쓴 가사의 뮤즈가 된 사람들도 부러울 지경이었다. 더불어 나도 감추지 말고 이 가사 같은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도 들 정도로 영감을 준 분이었다.

나와 대화가 잘 통하는, 주변 친한 친구들 중에 크리스천이 많다는 것도 있었다. 나는 종교가 없고 신이 있다는 걸 믿지도 못 하겠지만 크리스천 친구들이랑 좋아하는 것이 비슷하다고 느낀 적은 많았다. 그들이 순수하고 맑아서 좋았다. 그래서 그들과 잘 어울렸다.


아프리카를 다녀오지 않았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NGC 종교 다큐, 사내 기독교 모임, 인디 가수, 크리스천 친구들'이 모두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곰곰이 떠올려보면 여행 중에 '무섭다'는 말을 정말 많이 했는데 그게 여행 중에 크게 느꼈던 것이지, 일상생활 속에서 불안함이 없던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할 때도 불안했지만 불안하지 않아도 될 때도
나를 흔들어서라도 불안해했다.
'이 정도론 안 돼, 이 정도론 만족 못 해!' 하면서 말이다.


아프리카에서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면 현실에서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늘 기저에 깔려 있었다. 자아실현을 하지 못했다는 불만이기도 했다. '이 정도가 내가 달려온 날들의 끝일까? 이런 마음과 이런 자존감으로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양육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한 어른의 모습이 아니네. 아, 정말 기대되지 않는다.' 일상은 늘 초조했다. 내가 해야 하지만 아직 알지 못하는 뭔가를 남겨둔 것 같아서였다.


사람들은 알아야 하는 것을 아직 모르는 것 같지만
때로는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 점이 나는 답답했다.


우스갯소리로 늘 하는 말이 있는데, 아프리카가 아니라 강남역에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면 신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고 계속 살았을 것 같다. 다른 나라 대지(大地)에 가서야 겨우 '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까지 갈 수 있었다. 아프리카에서처럼 일상에서도 만만찮게 무서워하고 불안해하는 게 있는데 그 마음을 좀 잠재워 보고 싶어 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셋째, 책으로 남겨야겠다.

아무래도 휴가로 아프리카를 가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 내게 아프리카 여행이 어땠는지 묻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천진하게 눈은 반짝였지만 그 생경함을 제대로 전달하진 못했다. 느낌과 심상은 너무 많았지만 말로는 이 감정을 모두 표현해내지 못할 것 같았다. 좀 더 숙고해서 글로 전달해야만이 가능할 것 같았다. 나조차도 이런 감상들을 꼭 기록하고 정리해두고 싶었다. 에피소드마다 광고 카피처럼 부제가 떠올라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이렇게 책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할 즈음 우연히 본 글귀가 뇌리에 꽂혔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경험을
이야기 형식으로 기록하고 기억할 때 오래간다.
모든 여행은 여행기로 쓰인 뒤에야 아름다워진다.
여행은 이야기다.

- 「여행의 심리학」 저자 김명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여행기를 꼭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에게 내린 숙제였다.


위에서 언급한 이 세 가지는 내 안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켰다. 그 틈을 계속 키우기만 하면 내 안에서 동기부여가 될 만한 것들이었다.




▶ 다음 이야기


◀ 첫 이야기


이전 16화 아프리카 여행, 잊지 못할 순간 BEST 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