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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Jul 09. 2021

신이시여, 한 말씀만 하소서

아프리카 여행 그 후 이야기 마흔하나 @한국

여행을 다녀와서 종교적인 질문이 폭발하고 말았다. 믿을 수는 없지만 '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 아프리카를 다녀오자마자 미디어 회사에서 서비스하고 갔던 NGC 다큐 「모건 프리먼의 스토리 오브 갓」을 챙겨서 봤다. 크리스천 친구, 친한 직장 상사분들에게 종교적인 부분에서 미심쩍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머리로 궁금하긴 했지만 '기적 같은, 이상한 일들'을 믿어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따로 종교를 가지진 않고 평소대로 지냈다. 뉴스에서 보도된 범법을 저지른 종교인을 보며 그들과 같은 소속이 되기 싫다는 마음도 나를 가만있게 했다. 에잇, 종교적인 질문이 더 생기더라도 그만하기로 했다. 그냥 그대로 지내면 이상한 일을 믿어야하지도, 욕 먹는 종교인과 같은 그룹에 속하지도 않을 터였다.



그러다 한날은 한강에 자전거를 타러 갔다. 최신 인기가요를 전체 선택해서 듣는데 가수 비와이(BeWhy)가 그 당시 쇼미더머니에서 부른 노래가 내 플레이리스트를 장악하고 있었다. 「forever」, 「Day Day」 같은 곡들이었다. 하필이면 그가 우승을 해버렸다. '뭐야, 종교 얘기잖아. 아, 더 이상 안되겠다.' 내가 궁금하니까 자꾸 이런 것들만 보이고 들린다고 생각했다. 종교적으로 예민해져 있었다.


바로 다음날 신앙심이 깊은 친구에게 요즘 종교에 관심이 생겼다는 걸 알렸다. 그러자 평소에 약속 잡기가 힘들었던 그 친구가 바로 그날 저녁 나를 만나주었다. 내가 궁금증을 쏟아내자 친구는 '모태 신앙인으로서 비신자가 스스로 신에 대해 궁금해 했다는게 대단하다'며 나의 여러 의문들을 잘 듣고 대답해주었다. 약간 어린 아이 보듯 귀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친구를 통해서 내가 알게 된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 내가 무신론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이 정말 있어?"라는 내 질문에 친구가 되물었다. "그럼 신이 없다는 증거는 뭐야?" 나는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게, 친구야. 신이 없다는 증거는 뭘까나?'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일이다. 평소 내가 유신론자인지 무신론자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설명할 수 없었다.


둘,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없는 주파수의 소리가 있듯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게 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기적'이라고들 하지 않을까. 인과 관계가 분명치 않는데 사실이 되었으니 그걸 말로 표현하기 위해 '기적'이라는 단어를 만들었을 것이다.


친구와의 오랜 대화 후 나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로 끝내긴 했지만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적절한 답을 다 해주는 친구가 되려 신기했다. 이런 의문들이 다 머릿속에 정리돼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오래 알던, 이상할 리 없는 친구가 확신을 갖고 대답을 해주니 '신이 있다고' 믿는 그 친구가 부러웠다. 나도 절대자에게 의지를 하고 싶은데 이상한 일들을 이해하고 믿을 자신이 없었다.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됐다는 단군신화를, 알에서 사람이 나온 박혁거세 신화를 실제로 믿는다면 그건 어리석은 행동일테니 말이다. (물론 이게 적절한 비유가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성경에 나오는 일들이 신화처럼 느껴졌다.) 친구는 처음엔 의심하는 게 당연하다며 주말에 교회를 한 번 나와보라고 제안했다. "그래, 그러자!" 교회를 가보기로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프리카 여행을 같이 갔던 예지가 내가 처음 교회가는 날에 와 주었다. 예지는 일(비행)을 마치자마자 캐리어를 끌고 자기가 다니는 교회도 아닌 내가 가보기로 한 교회를 와 주었다. 내가 교회 문화에 어색해 할까봐 챙겨주러 온 것이다. 평소 얼굴 보기가 힘든 친구는 바로 만날 수 있었고, 예지는 먼 길을 달려 나와 함께해주었다. 나와 이 두 친구는 모두 중학교 때 같은 반이어서 서로 잘 아는 친구들이었는데 내게 '무엇을 일깨워주려고 다들 노력해주고 있는걸까' 싶었다.


내 발로 간 교회에서 나의 첫 예배가 시작됐다. 자리에 앉으니 곧 성가대가 성가를 불렀다.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라는 곡이 나왔다. 이 곡은 중학교 때 좋아하던 담임 선생님이 기독교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그 선생님이 좋아서 동아리에 가입했다가 그곳에서 배운 노래였다. 그 노래를 너무나 오랜만에 교회에서 듣게 된 것이다. 갑자기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싶은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나려 했다. 교회에 대한 궁금함과 거부감이 동시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이 많은 데서 울어버리면 부끄러울 것 같아서 참고 참고 참았다. 다행히 진정이 좀 돼서 아무렇지 않은 척 시큰둥한 척을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었다. 설교 말씀은 잘 들리지 않았고 그냥 '내 삶,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싶어서, 교인들을 따라하는 게 어색해서 자꾸만 몸을 비틀거렸다.


예배가 끝나고 친구가 소개해준 교회 사람들과 식사를 같이했다. 처음 교회에 온 지라 많은 사람들이 말도 걸어주고 친절히 대해줬다. 날 도와주는 좋은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조금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지? 처음 본 사람 아닌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시간과 정성을 쏟을 수 있는걸까?' 첫날, 그 후로도 계속 의뭉스러운 마음으로 교회를 다녔다.


어떤 날은 성당을 가봤다. 성당과 교회를 구분하지 못했으므로 검색해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보게 되었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훤히 보이던 건물이 성당이었다는 사실을 같은 동네에서 약 10년을 살고서야 알게 되었다. 성당은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어서 대뜸 혼자 방문했다. 혼자 성당 구석구석을 배회했는데 교회랑은 다르게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멀뚱멀뚱 있다가 미사 시간표를 챙겨보고 그 다음주에 다시 가봤다. 미사 보는 곳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자꾸만 자리에서 일어나고 앞에 나갔다가 돌아와 앉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모두 다 같은 기도문을 읊었다. 일정한 형식을 갖춘 시간이었다. 한 마디로 제사를 지내는 것 같았는데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새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에 조금 적응이 된 모양이었다. 교회랑 성당을 왔다갔다 하며 한 번 더 성당을 가봤더니 예비자 교리 반을 소개시켜주었다. 궁금한 점을 물어보려고 했다가 얼떨결에 예비자 교리 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앞으로 6개월을 더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난 아직 교회를 다닐지, 성당을 다닐지 결정하지도 못했는데 교육이 시작됐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금요일이 되면 평소와는 다른 의미로 좋았다. 금요일 밤이라서 좋은 게 아니라 가려운 곳을 긁어줄 일요일이 왔기에 기대가 됐다. 아직 종교에 대해 풀지 못한 궁금증이 너무 많고 평일 내내 이걸 해결해야 되는데 답을 찾지 못해서, 그 궁금증을 풀러갈 일요일들이었다.


어떤 일요일은 이랬다. 아침 9시에 성당을 가서 예비자 교리를 듣고, 그 다음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그곳에서 나를 담당해주는 분과 성경 공부를 하고 사람을 사귀다, 다시 성당에 가서 저녁 미사를 드렸다. 그렇게 교회와 성당을 비교하고 나에게 맞는 곳을 찾아내느라 일요일 저녁이면 정말 피곤했다. 평일 저녁에도 종교 관련한 책을 읽고 영화를 찾아 봤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종교 개혁을 인터넷 검색해서 찾아 읽었다. '아, 루터는 왜 종교개혁을 해서 내게 선택의 어려움을 주는가? 나는 크리스천이 되고 싶을 뿐이고. 기독교는 원래 하나였는데……'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이유는 잘 알고 있다. 순수한 사람들이 오염에 취약하고 사회초년생이 사회의 부패함에 더 민감한 것과 같은 이치로 발생한 것이다.)


교회와 성당을 왔다갔다하며 무엇을 선택해야할지 혼란스러웠다. 어찌보면 나는 '그곳이 맞다/틀리다'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나에게 맞는 곳을 가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유일신을 믿으면서 서로의 종교에 대해 배타적으로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대단해보였다. 쇼핑할 때 옷가게 점원이 오면 피해 다니고 아무렇게나 내버려두면 자유롭게 옷을 고르는 것처럼, 종교 시설에서도 이리 오라 하면 거리를 두고 가만히 두면 쪼르르 달려가서 궁금한 점을 물어보던 나였다.


그리고 진짜 궁금했던 건 이거다.

정말 신이 있다면 날 언제부터 지켜보고 있었는지,
날 세상에 세운 계획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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