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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Jul 10. 2021

결국 아름다움이 우릴 구원할 거야

아프리카 여행 그 후 이야기 마흔둘 @한국

교회? 성당? 어딜 다닐지 빨리 결정해서 자리 잡고 싶었지만 알면 알수록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단점들이 있었는데 그게 한쪽으로 쏠리지 않아 결정하기를 어렵게 만들었다. 친구가 소개해준 집에서 먼 교회가 아닌 가까운 교회를 다니면서 더 자주 드나들고 싶었지만 백지인 상태에서 좋은 교회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사이비 종교도 많은 지라 내가 괜찮은 교회를 잘 구분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다. 심지어 일반 교회에서 하는 성경에서 나오는 얘기도 나는 믿기 힘들었다. 이를 테면 사람이 140살 넘게 살고 바다가 갈라지고 주님의 옷자락을 잡은 사람이 병이 나았다는 여러 사건들 말이다. 이런 것들도 믿기지가 않는데 어떻게 사이비 종교와 괜찮은 교회를 구별해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전 세계가 연결이 되어 있어 세계 어느 곳에 가도 그날 같은 말씀을 나눈다는 성당은 사이비 종교를 걱정할 겨를 없이 집 가까운 데로 가면 그만이었지만, 성당에서 따로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외로웠고 미사도 제사를 지내는 것 같아 내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또 주변에 천주교인 친구가 많지 않아 물어보기도 힘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 지인들 중에 드러나지 않은 천주교 신자들이 많았다.)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종교적인 방황을 했다. 믿음을 쌓을 만한 터전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에 '절대자에 대해, 신에 대해' 보편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오히려 마음이 끌렸다. 대자연을 신이라고 여긴다거나 종교는 없지만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람들, 이름 모를 신에게 기도한다는 사람들의 말에 그랬다. 또 미국 우주비행사이면서 물리학자이기도 한 에드워드 깁슨(Edward Gibson)이 '신은 패턴이라고 생각한다'는 견해는 일리 있게 들렸다. 에드워드 깁슨과 우주비행을 같이했던 제럴드 카(Gerald Carr)가 '그 패턴에 인격을 준 것이 여러 종교의 신이다'라고 말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 설명은 믿을 수 없는 것들은 믿지 않아도 된다고 해주는 것 같아 차라리 이해하기 쉬웠다. 보편적인 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알기가 쉬웠다.


인간들은 자주 무너졌을 것이다. 자연물에 압도당했기 때문에,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제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때문에, 영원하고 싶기 때문에. 그래서 이렇게 무너질 때마다 혹은 무너질 것을 대비해서 신에게 의지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한 후 결과는 신이 정해주는 대로 겸허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삶을 살아가는데 건강한 방법 같았다. 제 의지로 모두 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건 세상에, 삶에 지는 게 아니었다. 이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분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신을 보편적인 개념으로 접근하다 보니 종교를 정하기는 더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신은 모르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아프리카에 다녀와서 궁금했던 게 한 축으로 신이라면 다른 축으로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삶을 살아가면서 대자연처럼 아름다운 것, 음악처럼 사람처럼 아름다운 것들 가운데 취해 살면 행복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한날은 예술의 전당에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갔다. 애석하게도 고인이 되신 권혁주 바이올리니스트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 합연한 날이었다. 클래식을 잘 알진 못하지만 그저 악기 소리가 좋아서 종종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가곤 했는데, 그날은 입을 벌리고 눈썹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나를 감화시키는 연주를 들었다. 클래식 공연을 보고 처음으로 공연 세트리스트를 찾아서 들어본 것 같다. 자주 그날의 감동을 상기하고 싶었다. 음악은 보이지 않고 모양도 없지만 사람들 마음에 하나하나 심어져 심금을 울리는 듯하다.

이 공연을 계기로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은 점점 깊어졌다.


그즈음 박준 시인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탐독했는데 이 책, '시인의 말'에는 이런 고백이 나온다. '나도 당신처럼 한번 아름다워보자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나 멀리 흘렀다.' 시인의 고백을 듣다 문득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이 하나 둘 이어졌다.



아름다움은
마음에 동그란 파동을 불러일으킨다
계속 둥그렇게 커지며
고요히 번진다

아름다움에 반하면 감화된다
감화된다……
이 말은 '좋은 영향을 받아 생각이나 감정이 바람직하게 변하다'는 뜻이라 한다

아름다움을 불현듯 마주하면
시간을 늘린 듯 시간을 멈춘 듯
가까운 것도 먼 곳을 보듯
별을 헤듯 콩깍지 씌듯
한숨이 나오고 멍해진다

아름다움이 움직이면
찍찍짹짹 질책 않고도
그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이끈다

아름다움을 가까이하면
사람을 포섭 않고도 구애 없이도
그와 함께할 수 있다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그 주변에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들이 생긴다
아무개 제 팔로 테두리를 둘러 지키려 든다, 소중해한다

아름다움에 닮아가면
그러다 덜컥, 아름다운 사람이 되면
그건 영원한 숨결을 간직할 수 있을 거다

나, 살아가는 동안에
몇 번을 더 반해야
아름다운 사람 될거나
당신처럼 아름다워보자고 한 글이 이렇게나 길어졌다


솔직은 신은 잘 모르겠고

어느 책에서 본 이 글귀만 생각났다.

'결국 아름다움이 우릴 구원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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