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여행 그 후 이야기 마흔셋 @한국
'신은 있는 것 같은데 믿음은 없다.
교회냐, 성당이냐? 개신교냐, 천주교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곳이어도 안 되고 어느 곳이어도 상관 없다.
어차피 같은 신일테니'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는 것도
결국 내 삶에 대한 굉장한 의지였던 것 같다.
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인생을 바라보기로 한 것뿐이다.
마음은 콩알만하면서 품으려는 세상은 왜 이리 큰 걸까
원하는 걸 얻어도, 혹은 얻지 못한 미련으로
잘 만족하지 못하는.
사랑을 들어도
사랑 받을 자격 없다고 손사래 치는.
기합 가득 주고 살아도
어차피 다 영원하지 않은 것.
허무함으로 수렴돼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우선순위가 서지 않았는데
반석 위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서
평생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들을 들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동서남북 가리지 않고 원의 지름 크기로 흔들린다면 어떤 이는 중심에 무엇이 있어 반지름의 크기로 흔들리다 바로 서는 것 같았다. 진짜 절대자라는 게 있는 걸까? 사막을 다녀와서 이 가뭇한 궁금증이 씨앗이 되었다. 똑똑한 사람들이 왜 저런 걸 믿는지, 그 좋은 멜로디로 대중가요를 안 만들고 왜 찬송가를 만드는지 물음표가 이어졌다. 내 근본이 궁금한 것도 아니고 천국 가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나도 그만 무서워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지내고 싶었다. 지진난 땅에 건물을 세울 순 없으니까.
신, 바라는 것이 많은 상태로 알아봤지만
그에 제일 많이 알게 된 건 그냥 '사랑'뿐인 것 같다.
성경은 현대에 쓰이지도 않는 단어들, 어려운 지명이 왕창 나오는 베스트셀러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엄청 사랑의 말들이 많은 책이었다. 이 전화번호부 같은 책이 이런 내용이었다니…….
사람을 바뀌게 하는 건
특히 나처럼 감성적인 사람을 바뀌게 하는 건 격려, 사랑뿐인 것 같다.
그런데 그 사랑이라는 건 아주 완곡하고 인내심이 깊어서
주변을 둘러둘러 있다 내 가장 가운데로 들어와 마음 속에 꼬여있던 것들을 하나씩 풀어 주었다.
세상은 강해지라고 하는데
마음껏 연약해질 수 있는 곳을 찾아서 편안하다.
의미를 찾지 못해 공허해 했던 마음이 조금씩 채워지는 듯하다. 내면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건 진즉 머리로 알고 있었는데 그 내면을 좋은 것들로 채우는 건 너무너무 어려웠다. 자신감을 가지라고 해서 자신 있어 지는 것은 아니듯이. 희망을 가지라고 해서 희망이 생기는 것이 아니듯이.
20대 내내 불안해하고 자책하면서, 나를 사랑하는 길은 멀었지만 이제야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게 감이 잡힌다. 타인에게 함부로 않듯 뾰족하고 못생긴 말들을 안으로도 조심하게 됐다. 멀리 여행을 가야만 느낄 수 있었던, 행복의 세세한 결이 가까운 삶에서도 살아난다. 감사해서 감사한다고 말하면서도 기쁨은 없었는데 지금은 감사할 때 슬몃 기쁘다. 표정이 살아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어둔 길을 지날 때 덜 무섭다. 그 분과 함께하니까!
나에게도 중심이 생겼다.
교회랑 성당을 다 다녀보느라 1년 반만의 일이다. 마음이 옹색해 잘 삐지고 부끄럼이 많아 숨바꼭질을 잘하는, 부족한 사람…….
새로운 챕터에서는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 아름다운 사람이면 더욱 좋겠다.
세례를 받았다.
깊은 대화를 나눴던 친구들, 내 궁금증 폭발 잠재워준 봉사자 분들에게 감사하다.
'나랑 친한 애들 중에 왜 이렇게 크리스천이 많지? 저 분들은 거기서 뭘 배우길래 위아래 소외되는 사람 없이 다 챙기실까?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낀 건 저 인디가수가 처음이다'라고 생각하게 만든, 모범이 된 신앙인들도 모두 감사하다.
그리고 저를 불러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