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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Jul 10. 2021

20대 마지막 선물, 세례식!

아프리카 여행 그 후 이야기 마흔셋 @한국

이제 일요일에도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종교는 해결하지 못한 문제로 남아 있었다.

'신은 있는 것 같은데 믿음은 없다.
교회냐, 성당이냐? 개신교냐, 천주교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곳이어도 안 되고 어느 곳이어도 상관 없다.
어차피 같은 신일테니'


그러다 우연히 성당에서 청년 밴드 하시는 분을 소개 받았다. '교회인지, 성당인지' 선택의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풀렸다. 음악이었다. 종교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을 때도 '만약에, 만약에 내가 종교를 가지게 된다면 음악을 통해서 받아들이지 않을까'하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역시나였다. 무언가를 믿고 시작하는 건 어려웠지만 좋은 음악을 연속해서 듣는 건 쉬웠다. 종교 이전에 늘 내 곁에서 위로를 주던 것은 음악이었어서, 이 밴드를 매개로 성당에 꾸준하게 다녀보게 되었다. 도대체 성당을 다니는 건지 기타를 치러 다니는 건지 모르게 일요일에 새로운 습관을 들였다. 그러면서 예비자 교리 과정도 정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교리 공부를 하면서도 부족한 인간인지라 내가 처음에 '신화처럼' 느꼈던 일들을 모두 다 이해하진 못했다. 아직도 '사람이 140살 넘게 살고, 바다가 갈라지고, 주님의 옷자락을 잡은 사람이 병이 나았다'는 성경 속 여러 사건들이 온전히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다. 성경의 설화자가 잘못 기입해놓은 건데 몇 천년 이후의 사람들이 철썩같이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부드럽고 사랑 가득한 말들에 불신의 옹성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속았다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신앙을 받아들일 공간이 생겼다는 뜻이다.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내세가 어떤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냥 내 마음이 동하는 것들부터 친해져 보기로 했다. 중고등학교 때 시험을 보는데 순서대로 풀다가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잠시 별표 쳐 두고 쉬운 문제부터 풀곤 했다. 종교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는 믿기 힘든 것들을 구구절절 따지고 싶지가 않았다. 다만 신의 섭리가 알고 싶어졌다.


내가 신앙을 가지고 싶은 이유를 다시 떠올려본다. 첫째, 인생이 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 여행으로든 인생으로든 수긍이 가기 때문이다. 둘째, 아무것도 인간의 힘으로 되는 일이 없을 때 말 그대로 기적을 바라는데, 기적처럼 초자연적인 힘을 내는 분께 기대고 싶기 때문이다. 기적이 아니면 안 될 때 오직 신만 바라보면서 든든한 심리적 안전지대를 가졌으면 했다. 그러면 '나 좀 덜 흔들리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아프리카 여행에서도 돌발상황이 스무 번이나 있었는데 그 모든 상황들이 자리를 찾아가며 어떻게든 마무리가 되었었다. 돌발상황이 오더라도 의지할 곳이 있었으면 했다.


그냥 놀고 먹고 쉬는 여행은 크게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런 건 나중에 나이가 더 들고도 충분할 것 같았다. 어렵고 힘들고 모험적이어서 완전히 새롭고 그래서 내 세계관에 영향을 주는 여행을 항상 바랐다. 잘 바뀌기 힘든 나 자신을 새로운 곳에 던져두면 부서지고 깎이면서 변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점에서 이 아프리카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아프리카라는 먼 땅까지 가서야 나는 '겨우' 신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아프리카 여행은 내 인생이 내 의지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점을 눈치채게 만드는 돌부리 같은 사건이었다. 여행보다 더 큰 내 인생은 구석구석이 두렵고 불안하고 의미를 모르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사회가 요구한 것을 다 했는데,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왜 일상이 아직도 만족스럽지 않은지…… 삶의 목적을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는 것도
결국 내 삶에 대한 굉장한 의지였던 것 같다.

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인생을 바라보기로 한 것뿐이다.



신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데까지 28년이 걸렸고 세례를 받는 데는 1년 반이 걸렸다.


세례를 받기 전에 스스로 다짐했던 게 몇 가지 있었다.

주님과 약속을 하겠다며 기도했다.

세례 전까지 살을 몇 키로까지 빼겠습니다.

세례 전까지 어떤 걸 마무리하겠습니다.

세례 전까지

세례식까지……

내가 늘 중요한 일을 앞두고 해왔던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다짐들이 대부분 지켜지지 못한 채 세례식을 맞았다. 스스로에게 다소 실망스런 모습으로 성전에 서게 되었다. 교리 공부를 끝냈으니 다짐이 지켜지지 않았더라도 여지 없이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마음이 초라했다. 머리도 조금 아팠다.


그런데 세례식 날,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축하를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의미있게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축하받을 일인가 얼떨떨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나를 기억해주셨다.


이 세례식에서 배운 게 하나 있다. 사랑의 새 의미다.

사랑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거다.

인정 받고 사랑 받는데 늘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용한 나를 견딜 수 없었다.

늘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 자신을 바라봤다.

그런데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나는 다짐이나 조건을 달지 않아도 '나, 이 모습 그대로' 소중했다.

'있다'는 존재감 자체로도 충분했다.

내 모습을 부정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오히려 내 부족함을 채울 동력을 주었다.

마음의 봄이 왔고 회복이 시작되었다.

자격을 운운할 것 없이 이런 나도 '거저' 사랑받을 수 있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다.

다음은 내가 세례받고 난 직후 쓴 글이다.


마음은 콩알만하면서 품으려는 세상은 왜 이리 큰 걸까

원하는 걸 얻어도, 혹은 얻지 못한 미련으로
잘 만족하지 못하는.
사랑을 들어도
사랑 받을 자격 없다고 손사래 치는.
기합 가득 주고 살아도
어차피 다 영원하지 않은 것.
허무함으로 수렴돼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우선순위가 서지 않았는데
반석 위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서
평생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들을 들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동서남북 가리지 않고 원의 지름 크기로 흔들린다면 어떤 이는 중심에 무엇이 있어 반지름의 크기로 흔들리다 바로 서는 것 같았다. 진짜 절대자라는 게 있는 걸까? 사막을 다녀와서 이 가뭇한 궁금증이 씨앗이 되었다. 똑똑한 사람들이 왜 저런 걸 믿는지, 그 좋은 멜로디로 대중가요를 안 만들고 왜 찬송가를 만드는지 물음표가 이어졌다. 내 근본이 궁금한 것도 아니고 천국 가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나도 그만 무서워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지내고 싶었다. 지진난 땅에 건물을 세울 순 없으니까.

신, 바라는 것이 많은 상태로 알아봤지만
그에 제일 많이 알게 된 건 그냥 '사랑'뿐인 것 같다.

성경은 현대에 쓰이지도 않는 단어들, 어려운 지명이 왕창 나오는 베스트셀러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엄청 사랑의 말들이 많은 책이었다. 이 전화번호부 같은 책이 이런 내용이었다니…….

사람을 바뀌게 하는 건
특히 나처럼 감성적인 사람을 바뀌게 하는 건 격려, 사랑뿐인 것 같다.
그런데 그 사랑이라는 건 아주 완곡하고 인내심이 깊어서
주변을 둘러둘러 있다 내 가장 가운데로 들어와 마음 속에 꼬여있던 것들을 하나씩 풀어 주었다.

세상은 강해지라고 하는데
마음껏 연약해질 수 있는 곳을 찾아서 편안하다.

의미를 찾지 못해 공허해 했던 마음이 조금씩 채워지는 듯하다. 내면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건 진즉 머리로 알고 있었는데 그 내면을 좋은 것들로 채우는 건 너무너무 어려웠다. 자신감을 가지라고 해서 자신 있어 지는 것은 아니듯이. 희망을 가지라고 해서 희망이 생기는 것이 아니듯이.

20대 내내 불안해하고 자책하면서, 나를 사랑하는 길은 멀었지만 이제야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게 감이 잡힌다. 타인에게 함부로 않듯 뾰족하고 못생긴 말들을 안으로도 조심하게 됐다. 멀리 여행을 가야만 느낄 수 있었던, 행복의 세세한 결이 가까운 삶에서도 살아난다. 감사해서 감사한다고 말하면서도 기쁨은 없었는데 지금은 감사할 때 슬몃 기쁘다. 표정이 살아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어둔 길을 지날 때 덜 무섭다. 그 분과 함께하니까!

나에게도 중심이 생겼다.
교회랑 성당을 다 다녀보느라 1년 반만의 일이다. 마음이 옹색해 잘 삐지고 부끄럼이 많아 숨바꼭질을 잘하는, 부족한 사람…….
새로운 챕터에서는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 아름다운 사람이면 더욱 좋겠다.
세례를 받았다.

깊은 대화를 나눴던 친구들, 내 궁금증 폭발 잠재워준 봉사자 분들에게 감사하다.
'나랑 친한 애들 중에 왜 이렇게 크리스천이 많지? 저 분들은 거기서 뭘 배우길래 위아래 소외되는 사람 없이 다 챙기실까?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낀 건 저 인디가수가 처음이다'라고 생각하게 만든, 모범이 된 신앙인들도 모두 감사하다.

그리고 저를 불러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요!
「돌아온 탕자(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1668)」 -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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